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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리멘탈 심리학자 Jun 24. 2022

외국 생활하면 징징이가 되기 쉽다.

징징이에 대한 변명과 위로


유난히 작은 스트레스에도 속에 있는 얘기를 주위 사람에게 다 풀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있다. 주위 사람들은 그들을 처음 대했을 때 인내심을 갖고 정성껏 들어준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지쳐 나가떨어진다. 이러한 행위는 징징거림, 하소연, 신세한탄, 넋두리 혹은 감정 쓰레기통이라는 키워드로 다양하게 불린다.


외국에 나가 살면 징징이들의 이런 성향은 더 심해진다. 외국에서는 아무리 독립적이고 계획에 맞춰 실행하는 사람이라도 자기 계획대로 안 풀리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어려운 일들이 사방 천지에서 일어나고 자신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인적자원은 제한적이고 문화적 배경, 사회 시스템에 대한 지식 또한 제한된다. 고국에서 자신의 능력치가 100이었다면 외국 생활을 하다 보면 그것을 온전히 발휘하기 쉽지 않고 오히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상황에 닥친다. 상황이 이러니 외국 오면 징징이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징징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징징이들 중에는 유독 낯선 환경에 적응이 느린 사람이 많다. 슬로우 스타터라고도 불리는 이런 사람들은 내면적으로 불안이 높을 가능성이 높다. 적응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을 때는 비로소 제 실력을 발휘하지만 그전까지는 한참을 헤맨다. 낯선 환경에서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외국 생활에 대한 적응이야 개개인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니 매뉴얼이 있을 수가 없다. 그런데 누구한테 물어볼 수도 없다. 한국 사람끼리는 자신 나름의 적응 노하우를 쉽게 공유하려 하지 않고 현지인들은 너무 바쁘다. 하기야 그들 입장에서 이민이든 유학이든 외국 와서 이렇게 헤매는 외국인들을 수도 없이 볼 테니 이해는 간다. 징징이들은 자신뿐만 아니라 한국의 가족들도 그들에게 큰 기대를 갖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막상 와서 보니 제대로 되어 가는 것이 하나도 없고 마음은 뛰고 싶은데 뒤로 가는 느낌이다. 분통이 터지는 이 심정을 누구에게 속시원히 얘기하고 싶다. 그런데 운이 좋아 그런 사람을 만났다. 자기도 모르게 자신이 얼마나 고생스러운지 계속 털어놓게 된다.  


그럼 이제 징징이들에게 피해를 본 반대쪽 입장도 살펴봐야 한다. 그들은 외국 와서 어느 정도 적응을 마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처음에는 인내심 있게 들어준다. 그런데 만날 때마다 같은 얘기다. 피곤하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적응이라는 것은 수년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는 것이니 징징이들의 적응 문제가 한순간에 해결될 리가 없다. 적응 문제가 아니더라도 인간사 중대한 문제가 단기간에 해결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징징이 당사자에게는 고군분투겠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지리멸렬한 같은 얘기 일 수밖에 없다. 지난 대화에서 내가 제시한 솔루션을 적용해보지도 않으면서 나한테 왜 그렇게 말은 하는지 모르겠다. 부정적인 기운을 전파해 나까지 기분이 다운되고 엄청나게 기가 빨려 대화나 만남을 피하게 된다. 내 시간도 소중한 것이니 그 시간을 긍정적인 사람들과 기분 좋게 보내고 싶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은 말이다. 징징이들에게 피해를 보았다고 성토하는 사람들조차도 징징이들이 마주한 어려운 상황에 닥치고 보면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자신은 독립적이고 주체적이고 외국 와서 야무지게 하나하나 원하는 바를 이뤄 나갔다는 사람들조차도 계속 인생이 계획대로 술술 풀리는 경우 별로 없다. 자신은 적응이 끝났고 앞으로 잘 나갈 일만 있다고 단언하지만 아무리 대처 능력이 뛰어나도 혼자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많이 일어나게 된다. 그럴 때 본인 입장에서는 스스로 잘 해결하고 있고 주위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감정적인 위로와 지지, 실질적인 도움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겉으로 심하게 징징대지 않았을 뿐이지 주위에 당당하게 민폐 끼치고 있는 것을 본인만 모른다. 진짜로 혼자서 견디는 사람들이 있기는 있다. 그런데 그러한 경우조차 몸에 큰 병이 오고 나서 적당히 주위 사람들에게 어려움을 얘기하며 풀면서 살 걸 하고 후회하는 경우도 많다.  



징징이들 주변에 사람이 많았다는 것은 비록 스트레스에 취약해 징징거려도 그 사람이 기본적으로 다정하고 섬세하게 배려하는 착한 성품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하지만 계속 그렇게 스트레스를 하나하나 말로 풀려고 한다면 결국 주위 사람들은 지쳐 다 나가떨어질 것이다. 게다가 징징이들은 자신의 속마음을 솔직하게 나누는 것이 인간관계의 기본이라고 큰 착각을 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이것은 정말 큰 착각이고 고쳐야 하는 좋지 않은 행동이다. 솔직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스스로 감내하고 해결해야 할 인생의 고난을 남에게 떠넘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징징이들의 징징을 들어주고 위로해준 사람들 또한 배려심 있고 선한 사람일 것이다. 힘든 사람들이 쏟아내는 부정적인 이야기 들어주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도 살다 보면 그 징징이가 될 수 있다. 여태까지 힘든 일을 주위에 민폐 안 끼치고 잘 극복했다고 하지만 앞으로도 그런다는 보장이 있나? 사람 사는 세상 다 거기서 거기다. 누구든 어느 정도는 서로의 용인하에 민폐를 끼치고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주위 사람들이 징징거린다고 하나씩 차단하다 보면 결국 내 주위에도 아무도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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