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려고 하지 않았던 이민의 그림자
이민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현실적인 계획을 가지고 철저히 정착을 준비할 것이다. 인터넷 발달로 인한 수월한 정보 수집 덕분이다. 또한 워킹 홀리데이, 어학연수, 유학 또는 이민 가고 싶은 지역에 직접 방문해 몇 달 살아본 경험으로 이민을 결정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민 후 맞닥뜨리는 현실은 기대와 많이 다를 수 있다. 예비 이민자들은 소수의 성공담 또는 자신의 짧은 경험으로 낙관적인 기대를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과거 아메리칸드림과 같이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성공할 것이라는 기대를 품는 경우가 많다. 막연하게 노동자에 대한 대우와 인건비가 좋아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도 기대한다. 또한 짧게 거주 테스트 또는 학업 목적으로 있었던 경우에도 이민 후에는 다른 세상이 펼쳐질 수 있다. 이전에는 힘들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는 생각에 압박감이 적었고 현지에서 돈을 버는 ‘을’의 입장이 될 때 비로소 문화적응 스트레스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민 전에 꿈꿨던 것들이 환상처럼 느껴져요. 여기 와서 한국에서보다도 더 바쁘고 치열하게 사는 거 같아요. 내가 이러려고 여기까지 와서 고생하나 싶은 생각도 했어요.
사람의 인생이 자신의 계획대로만 풀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애석하게도 현실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기 매우 어렵다. 이민자들이 꿈꿨던 경제적인 기대는 처음부터 비자 문제로 가로막힌다. 영주권 취득은 이민국의 상황과 개인의 능력에 따라 그 난이도가 다르지만, 대체적으로는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영주권 취득이 요구하는 기준에 맞추기 위해 온갖 고생을 하고 치열하게 일해야 한다고 한다.
그렇게 아등바등 비자 문제가 해결되었다 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자리의 취업은 또 다른 산이다. 이민자들은 언어가 완벽하지 않을지라도 현지에서 몸으로 부딪히며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자신이 한국에서 쌓은 기술과 경력이 있어 승산이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실업문제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고 현지인보다 언어능력이 떨어지는 이민자의 경우 그 문이 더 좁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취업이 아예 되지 않은 경우, 기회를 기다리지만 시간은 자꾸 지나가 점점 더 조급해진다.
이렇게 실업 상황이 길어지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성에 차지 않은 일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다. 실제로 호주에서 한국인 이민자의 교육 수준은 현지인보다 높은 편이지만 교육 수준과, 경력에 비해 낮은 취업률을 보인다. 현지 문화를 하나하나 배워나가겠다는 겸손한 자세를 갖고 고생 끝에 드디어 영주권을 취득했지만 그 후에도 자신의 교육과 경력 수준에 한참 못 미치는 일을 하다 보면 ‘내가 이러려고 그 고생을 했나’싶은 회의감에 빠지기 마련이다. 나도 나름 잘 사는 나라인 한국에서 고등 교육을 받은 중산층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이민 후 사회적 계층이 하락한 것 같아 자격지심도 생긴다.
운이 좋아 내가 원하는 자리로 고용되어 경제적 안정을 일단 확보했다 하더라도 현지인들과 같이 일하는 것 또한 결코 쉽지 않은 문제이다.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성인 이민자는 현지인과 가까워질 수 있는 접점이 아무래도 적기 때문이다. 또한 ‘일이 힘든 것은 일자체가 아니라 대부분 인간관계 때문’이라는 말은 이민국에서 적용하기 힘들다. 비즈니스 상황에서 외국인에 대한 배려는 바라기 힘들고 현지인 수준의 업무 강도를 따라가려니 일에 대한 압박감이 상당히 크기 때문이다. 그밖에도 한국보다 비싼 세금, 높은 현지 물가, 렌트비 등을 철저하게 계산하지 못해 돈을 많이 벌더라도 생활이 곤궁하게 느껴지는 경우도 많다.
이렇듯 이민 생활이 너무 불행하다고 느껴지는 경우 한국으로 다시 돌아갈 생각도 하게 되는데 이 또한 쉽지 않다. 한국의 지인들에게 실패자로 보이는 불편한 시선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이민자들은 한국이 좋은 것도 있고 이민국이 좋은 것도 있다는 사람 사는 곳 어디나 비슷하다는 체념 섞인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현지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을 돈으로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돈이 많지 않다면 한국이나 이민국이나 서민의 생활은 똑같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분명 이민 오기 전에는 오기만 하면 내가 뭘 해도 잘 될 것 같았는데 참 안 풀린다.
하지만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한국의 삶보다 만족하며 잘 사는 이민자들도 많다. 이들에게 이민은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킨 기회가 된 것이다. 과연 이들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우선 한국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나의 결정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정보, 증거를 모으게 될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실패 사례보다는 소수의 운이 좋은 성공 사례에 눈이 갈 것이고 이러한 소수의 증거를 바탕으로 자신의 기대를 키운다. 이것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 자신이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려는 경향이다. 따라서 최대한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이민에 대한 과도한 희망을 키우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또한 이민 가서 좋은 것을 누리는 대신 고통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는 여유로운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이 아무리 미래를 대비해 철저히 준비한다고 해도 세세하게 모든 일들을 다 예상할 수는 없다. 하지만 비록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그것조차 수용하고자 하는 태도와 이민 후 긍정적으로 나아진 부분에 포커스를 맞출 수 있는 태도를 가진다면 이민 후 만족스러운 삶을 살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