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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리멘탈 심리학자 Jun 21. 2021

가족을 위해 이민 간 그 부부는 왜 싸우기만 할까?

결혼생활에 있어 이민이라는 큰 역경

한국에서는 어쩔 수 없이 가정보다 일이 우선시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하지만 이민 오면 가족끼리 보내는 시간이 많을 테니 자연스레 사이가 좋아질 것이라 생각했어요.


이민자가 가정을 이루고 있는 경우, 자신의 ‘더 나은 삶’에 대한 소망뿐만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하는 행복한 삶도 꿈꿀 것이다.


하지만 이민자들은 영주권 취득 혹은 어느 정도 이민 사회에 발붙이고 적응이 될 때까지는 한국에서보다 어쩌면 더 바쁘고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민... 과연 좋기만 할까? 편 참고) 그동안 가족 구성원들은 각자 새로운 환경 적응에 어려움과 긴장감을 경험한다. 이러한 스트레스를 각자 혹은 가족 간의 지지를 통해 적절히 해결해나간다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안타깝게도 이민자 부부의 경우 해소되지 못한 자신의 분노와 슬픔을 상대 배우자에게 퍼붓는 상황이 자주 목격된다.






# 이민국에서의 성역할


이민이 개인뿐만 아니라 부부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은 젠더 이슈와도 관련이 있다. 이민자 아내의 경제적 역할이 높아져 성역할이 바뀔 때 남편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어 갈등이 생기는 경우이다. 한 예로 한국인들은 간호 직종으로 이민을 많이 가고 아내가 간호사라 이민을 택한 부부의 경우에는 아내가 취업도 되고 영주권도 수월하게 나온다. 남편보다 돈을 더 버는 전문직 아내가 출산하면 남자는 집에서 살림하고 애 보는 상황이 드문 일은 아니다. 이렇게 성역할이 뒤바뀌면 남자는 가장으로서 권위를 잃어 스트레스를 받는 반면 여자는 바깥일과 집안일에 이중으로 스트레스를 받아 불화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전통적인 성역할을 유지한다 하더라도 부부간 불화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오게 된다. 이 경우에는 여자가 전업주부의 역할을 하거나 직업이 있었던 경우라도 출산 후 여자가 아이를 혼자서 돌보는 경우이다. 이민자들 중에는 한국에서 아이를 어느 정도 키워서 오는 경우도 있지만 이민국에서 아이를 가지는 경우도 많다. 이민을 가장 많이 택하는 연령대가 30대 초중반임을 감안한다면 이들의 자녀 또한 어릴 것이라고 예상해볼 수 있다.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출산과 양육은 고국에서보다 더 힘들 것이고 아이 출생 후부터 폭발적으로 일이 늘어나 부부 갈등의 씨앗이 된다.

육아는 어디서나 힘들겠지만 한국에서 아이를 낳고 키웠으면 지금보다는 덜 힘들었을 것 같아요. 부부간에 이야기를 해봤자 서로를 이해하기보다는 각자 자기 힘든 일을 겨루는 배틀이 되고 싸움으로 이어져서 나중에는 대화를 피하게 돼요.


실제 사례들을 통해 어린아이들을 돌보는 이민자 엄마들의 어려움을 이해해보자. 한국처럼 양가에 육아 도움을 받을 수 없다. 언어와 시스템 이해 부족으로 정보가 아무래도 고국보다는 제한될 수밖에 없고 자신의 비자 상태로 인해 돌봄 서비스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민자 엄마들은 홀로 아이를 돌봐 현지 언어를 배울 기회까지 놓치게 되어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야 할 때 조차도 남편에게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스스로가 무능력하게 느껴져 좌절감이 크다. 운이 좋아 현지 돌봄 서비스 혜택을 받게 된다 하더라도 선생님들과의 소통이 너무 두렵고 힘들다. 속상한 아내는 남편에게 대화를 시도한다. 하지만 남편과의 대화는 말다툼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남자 입장에서도 결코 쉽지 않다. 한국도 예전에 비해 성평등을 많이 이뤘다고 하지만 한국인 남자 이민자들이 느끼기에 영미권 등의 선진국과 한국의 성역할은 차이가 있다고 한다. 일단 한국 남자가 보기에 선진 이민국에서 살려면 남자가 할 일이 너무 많다. 남자는 밖에서 긴장 상태로 일하는 것도 힘든데 퇴근 후에도 휴식을 취할 수 없다. 아내가 육아로 너무 힘든 것은 알겠지만 남자도 때로는 휴식이 필요하고 쉬고 싶다. 또한 남편인 나에게만 의존하는 아내가 너무 버겁다. 이렇게 남편은 현지 적응 스트레스 아내는 육아 스트레스로 꽉 차 있으면 자신의 스트레스를 상대방에게 전가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분명 가족을 위해 이민 왔는데 싸움만 한다.






# 이민 전 의사소통 연습의 중요성


많은 한국인들은 가족들과 행복한 생활을 꿈꾸며 새로운 나라로 이주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많은 준비를 한다. 이민 법에 대해 알아보고 정착과 관련된 모든 것을 세세하게 알아본다. 하지만 그렇게 준비성이 철저한 사람이라도 이민 후 변화하게 될 부부 관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부부간에 어떻게 잘 싸우고 화해해야 하는지 준비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상하게 부부 사이가 더 좋아질 것이라 막연히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 막연한 기대와는 반대로 부부 사이는 그들의 의사소통 노력 여부에 따라 갈등관계 또는 화합 관계가 만들어진다. 부부 사이에 갈등 상황이 생겼을 때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잘 모를 경우 한 명이 마구 쏘아대고 상대방은 도망가거나 둘 다 대화를 회피하는 양상을 띤다. 보통 여자가 쏘아대고 남자가 도망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민자들에게 이 경향이 더 심하다고 한다. 반대로 소통이 잘 되면 상대방의 감정 더 잘 이해하게 되고 문제 해결이 더 쉬워진다. 실제로 새로운 나라에서 평등한 관계를 만들고 유지한 부부들은 결혼 만족도가 높았을 뿐만 아니라 이민 생활에 대한 만족도도 높다고 한다.


사실 나의 배우자만큼 나의 단점을 속속들이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부부가 마음먹고 싸우게 되면 서로의 역린을 기가 막히게 공격해 치명상을 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을 반대로 보게 되면 나의 힘든 점을 제일 잘 알아줄 사람도 서로의 배우자가 될 수 있다. 한국에서의 결혼생활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고단한 이민 생활에서 살아남으려면 아내와 남편에게는 서로의 이민 스트레스에 대해 이해하고 다독여 함께 어려움을 헤쳐나가려는 팀 정신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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