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람에게는 아파트가 짱인가
한국에서는 아파트에서만 살아 예쁜 전원주택에 대한 로망이 있었어요.
왜 영화 보면 자기 집 정원에서 커피 마시고 수영하고 밤에는 집에서 파티를 여는 그런 삶이요.
이민자들의 어려움에 대해 들어보면 의외로 날씨와 주거환경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는 경우가 꽤 있다. 특히 여자들이 날씨와 주거환경 적응의 어려움에 대해 세트로 얘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은 사계절 날씨가 척박한 편이라 이민 가서 날씨와 주거 적응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애초에 한국인들이 날씨가 온화한 곳을 이민지로 선호하기 때문에 그저 온도가 20도 부근이면 한국의 봄가을 날씨 정도라고 생각하고 한국처럼 영하 마이너스 십 도 정도로 떨어지는 곳이 아니라 춥다고 유명한 곳도 살만한 날씨니까 사람들이 많이 산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또한 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네모반듯한 아파트에서 살아와서 아파트가 지긋지긋하다고 했고 자연히 전원주택에 대한 환상을 꿈꿨다고 했다.
개인주택이 이 정도로 손이 많이 가는지 몰랐어요. 관리도 어렵고 낮에는 따뜻해도 밤에 기온이 뚝 떨어져 오돌오돌 스산한 느낌이에요. 밤에 집에 혼자 있으면 귀신 나올 것 같이 너무 무서워요”
이민국의 개인주택에 대한 환상을 가졌던 이들은 생각보다 그곳에 사는 것이 어려웠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민 초기에는 적응을 위해 밖에 나가서 일도 많이 해야 하는데 정작 집에서 집을 돌볼 시간이 없는 것이다. 잔디만 있는 정원 같은 경우는 잔디 깎는 기계로 한번 돌려버리는 정도로 끝나지만 나무, 꽃, 텃밭이 있는 정원 같은 경우 조금만 손 놓으면 폐허가 되는 느낌이다. 정원이 있는 자연 친화적인 삶이 벌레와 함께하는 삶이라는 것은 살아보기 전에는 몰랐다. 수영장 물에는 어찌나 낙엽과 온갖 벌레들이 많이 빠지는지 그냥 물 빼서 안 쓰고 사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자잘 자잘하게 수리해야 하는 곳은 또 어찌나 많은지. 그 비용에 헉소리가 나온다.
또 집은 어찌나 추운지 모르겠다. 백인들은 겨울에 햇볕이 조금만 나도 반팔에 쪼리 신고 돌아다니는 걸 보면 쟤들은 추위를 잘 안타는 인종이니 집도 그걸 감안하고 지었나 싶은 생각이 든다. 시멘트 집이 아니고 나무집이라 그런가 외풍이 심하고 습기도 잘 차 관리가 오지게 어렵다. 아파트의 경우엔 아래위 양 옆으로 둘러싸여 냉난방을 하니까 서로서로 자연스럽게 보호해주어 날씨에 직격탄을 받는 느낌이 덜하다. 더욱이 외국 집들은 카펫 문화라 비염과 결막염 있는 사람들에게는 특히 쥐약이다. 가끔 보면 동양인들은 카펫 꼴 보기 싫다고 폴리싱 처리되어 있는 타일 집을 구하는데 타일 집은 바닥에서 한기가 뼛속까지 스며들 정도로 춥다고 한다. 난방을 해도 답답한 공기만 순환되고 비염과 결막염만 심해진다고 한다.
또한 한국 아파트의 고질적인 문제인 층간 소음 문제에서 해방되어 좋을 줄만 알았다. 하지만 개인주택들도 보안과 편리를 위해 비교적 모여있는 타운하우스의 형태가 많은데 이런 경우 측간 소음 문제가 심각하다. 소음의 정체가 한국의 아파트처럼 발 망치 소리가 아닌 티비소리, 음악소리, 사람들 떠드는 소리일 뿐이지 싸움도 많이 나고 경찰도 많이 부른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매한가지인가 보다.
물론 만족하는 사람들도 많다. 시간적 여유가 있어 집과 정원을 잘 돌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건강한 체질이라 날씨 적응을 어디서도 잘하는 사람들이다. 민감하지 않아 어디서든 잘 자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혹은 한국에서도 척박한 환경에서 계속 살아 집에 대한 적응이 따로 필요 없는 사람들이다. 아니면 반대로 굉장히 부자라 관리비가 많이 나가는 것에 손 벌벌 떨지 않고 집을 잘 관리할 수 있는 부러운 사람들도 해당된다.
현지 부동산 업자 지인에게 들은 바로는 시티의 아파트 경매지에 가보면 동양인만 우글우글하다는데 괜히 그런 게 아닌 듯싶다. 주거 환경과 날씨는 인간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하지만 이민자들은 자신이 충분히 맞춰서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민 가면 가뜩이나 힘든데 잠이라도 편히 자야 하지 않나. 어쩌면 언어와 문화 적응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건강과 라이프 스타일을 꼼꼼하게 체크한 주거환경의 결정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