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에 느끼는 가벼운 단상
과거에 비해 아무리 세상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일 년에 두 번 추석과 설 명절만 되면 약속이나 한 것처럼 여자들의 곡소리가 들린다. 내가 느끼기에 남녀갈등이 최고조가 되는 시기인 것 같다. 나는 김지영 세대지만(사실 약간 더 나이가 많긴 하지만 같은 세대라고 우겨본다) 딱히 젠더 이슈, 남녀갈등엔 관심이 없었다. 특별히 차별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여아낙태가 있었던 사회분위기와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자라긴 했지만 나의 부모는 딸도 아들과 같이 대우하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이었다. 그 태도로 인해 마음에 앙금이 비교적 적었던 듯싶다. 게다가 밖에서도 남자들과 똑같이 경쟁했고 오히려 여자라고 배려받은 적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엄마가 딱히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희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런데 나이가 점차 들어갈수록 엄마의 노고가 점차 이해가 된다. 엄마의 일생은 과연 어떠할까?
과거 내가 어렸던 80-90년대 가정주부의 주 역할은 가정을 돌보는 일이었다. 사실 업무 자체의 난이도로만 평가하면 육아를 제외한 집안일의 난이도가 높다고 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현재 기준이고 과거에는 아닐 수도 있다. 지금처럼 가사의 난이도를 낮춰주는 로봇청소기, 식기세척기, 건조기 등의 가전기구가 거의 없었다. 외식과 배달 또한 흔하지 않은 상태에서 삼시 세끼를 집에서 해결해야 했다. 지금이야 자녀가 없거나 하나이지만 그때는 기본 둘셋이었다. 학교 급식도 없던 때라 도시락 서너 개 싸는 것도 일, 시부모와 합가 또한 흔한 일이어서 시부모 수발도 큰일이었다. 와 이렇게 써넣고 보니 내가 정신병 걸릴 것 같다. 물론 돈이 많아서 사람을 부리는 집을 제외한 일반 서민가정 이야기다. 이때 여자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손에 물 마를 새 없이 하루 종일 노동에 시달린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물론 이런 삶에 만족하는 사람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남편의 테두리 안에서 가정을 잘 보살피는 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여자들에게는 잘 맞았을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는 밖에서 자신의 능력으로 자기 이름을 날리며 사는 것이 꿈인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당시는 결혼하면 퇴직해 자유의지 없이 살아야 하는 억압적인 집안, 사회 분위기였다. 불행히도 이것은 누군가에게 엄청난 폭력이었을 듯싶다.
과거의 모습은 이랬지만 현재는 어떠할까? 자녀의 사회진출이 늦어져 독립하지 못한 성인자녀 뒷바라지 하느라 여전히 집안일에서 해방되지 못한 늙은 엄마들이 있을 것이다. 또한 결혼을 시켜 독립시켰지만 팍팍하게 사는 성인자녀가 안쓰러워 그들의 자식 즉 손주를 돌보느라 고군분투하는 늙은 엄마도 있을 것이다. 이보다 더 한 고난은 백세시대를 맞아 친가, 시가 양쪽 집안의 병든 노부모 병원수발로 자신의 건강은 챙기기도 힘든 엄마들도 있을 것이다. 이들은 여전히 은퇴하지 못했다.
엄마들만 힘들었던 것은 물론 아니다. 힘들지 않은 세대는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보다 노동 환경이 좋지 못한 환경에서 쉬지도 못하고 뼈 빠지게 일해야만 했던 아빠들의 삶도 고단했다. 가족들 먹여 살린다고 수모와 부당한 일 참고 묵묵히 버티는 것은 매우 고된 일이다. 누가 더 힘들다고 비교하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은퇴가 없는 엄마세대가 여전히 여자의 굴레에서 속박받고 있는 것은 비교적 사실인 것 같다.
이러한 엄마 세대를 샌드위치 세대라고도 한다. 아래 세대 위 세대에 끼여 고통받는 샌드위치 세대가 억울한 것은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지난 백 년간 급격한 사회 변화를 겪었고 샌드위치 세대가 이 변화에서 피해를 많이 보는 것 같다. 몸 갈아 효도하고 자식들을 키워냈지만 자녀 세대에게 보상받을 수 없는 노릇이다. 뭐 거창하게 어쩌자는 것이 아니지만 병들고 늙어버린 엄마들의 노고를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들의 노고를 위로해 주고 현재의 힘듦을 덜어주는 정책이 나온다면 나는 적극적으로 지지할 것 같다. 이것은 딸뿐만이 아니라 아들 입장에서도 비슷하지 않을까. 아들들도 엄마 고생 누구보다 안쓰러워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