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안 드는 심리치료방법
요즘 정리정돈이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콘텐츠가 된 것 같다. 집정리해 주는 예능 프로와 유튜브가 이목을 끄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에 정리정돈을 전문적으로 해주는 서비스도 많이 생겼다. 라떼는 그런 것 없었는데 세상 참 좋아졌다. 이렇게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하는 것을 보면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겠지?
저명한 임상심리학자 조지피터슨에 따르면 방청소는 심리학적으로 긍정적인 의미를 다양하게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굳이 청소의 장점에 대해 조지피터슨까지 갈 일인가 싶다. 사람 성격에 따라 주변환경을 정리하는 방식은 모두 다르겠지만 주변이 깨끗하고 깔끔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청소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강박적 성향의 대문자 파워 J가 아이러니하게도 정리정돈에는 크게 관심 없었다. 이것 때문에 결혼 전 엄마한테 등짝을 수도 없이 맞았다. 변명을 하자면 이것저것 신경 쓸 것 많고 집에 오면 에너지가 제로인데 정리까지 하라니. 엄마- 그건 무리요. 또 하나의 일이다. 귀찮고 힘들다. 그저 쉬고 싶다. 그래서 한없이 쌓아 두고 쌓아 둔 곳에서 하나하나 빼서 사용했다. 그러다 정 안 될 것 같은 시점이 오면 크게 한번 뒤집어엎고 대청소를 했다. 보는 사람은 속 터지겠지만 나름에 체계가 있어 찾고자 하는 것을 금방 쏙쏙 찾으니 불편함이 없었다. 이 습관은 결혼 후에도 이어져 집 청소도 주말에 한번 했다. 주중에 피곤에 쪄 들어 사는데 집안일까지 신경 쓰기 싫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출근해 밤에 그대로 들어가 자는 수준이었다.
그러다 이런저런 일들로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변화를 다짐한 그 시점에 청소와 정리정돈에 매진하게 되었다. 그런데 말이다. 어머나~ 이게 뭐야~ 너무 좋은 것이 아닌가. 이것저것 버리고 묵은 먼지와 때 벗겨내고 물건들 이리저리 재배치하니 몸을 생각보다 많이 썼다. 잡생각이 사라졌다. 세상만사 온갖 번뇌를 잊게 해주는 것이 아닌가. 내 눈앞에 바로 보이는 환경이 달라지자 효과가 즉각 나타났다. 몸을 써서 그런가 집이 예뻐져서 그런가 기분이 너무 좋아졌다.
처음엔 쉽고 자잘한 것부터 시작해 묵은 짐까지 정리하게 되었다. 지금은 더 이상 돌아보지 않지만 추억 때문에 차마 버리지 못했던 물건들이 대상이었다. 과거 내 발목을 잡고 있었던 추억과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하나 둘 정리하며 물리적인 이별을 하다 보니 과거에서 정신적으로도 벗어나게 된 느낌이 들었다.
또한 있어야 할 곳에 물건을 제대로 둠으로써 어지러운 내 인생이 하나씩 차곡차곡 정리되는 느낌도 들었다. 마치 내 뇌도 내 인생도 이렇게 차분하게 정리되는 느낌이랄까. 이게 얼마나 강력한 감정이었냐면 전에는 인생의 소용돌이 속에서 떠밀려서 어쩔 수 없이 사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주변 환경을 제대로 정리하기 시작하면서 내가 내 인생을 차분히 꾸려가는 것 같았다. 청소 그 작은 것이 뭐라고 그런 큰 뿌듯함을 주는지. 사실 막연하게만 느껴지는 인생이라는 것도 이 별거 아닌 작은 것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내 인생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마구 흘러가고 있다면 거꾸로 작은 것부터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
이제는 청소와 정리정돈이 내 데일리 루틴이 되었다. 그 밖에도 머릿속이 번잡스럽거나 우울한 일이 있을 때마다 대대적으로 집정리를 하면 고통에서 벗어나는데 도움이 된다. 나 자신에게 건강한 음식을 주고 운동하고 잠을 충분히 자고 나를 잘 돌보는 것만큼 내가 지내는 환경을 돌보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머릿속이 번잡하고 세상만사 내 뜻대로 안 풀리는 것 같으면 일단 푹 자고 일어나 청소부터 시작해 보자. 작은 것부터 차근차근. 돈 드는 일도 아니고 그렇게 막 숨 막히게 어려운 일도 아니잖나. (심리치료를 받으면 다음 회기까지 일주일 동안의 과제를 받게 되는데 생각보다 번거롭고 어려운 과제들이 많다. 청소는 굉장히 쉬운 레벨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