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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리멘탈 심리학자 Feb 28. 2024

이민 온 곳으로 부모님이 놀러 오셨다

사이가 좋지만은 않았던 부모님의 방문



부모님이 휴가 차 오셨어요. 멀리 떨어져서 사니 아주 오랜만이죠. 자식이니까 반가워야 하는데 솔직히 괴로워요. 저 나쁜 사람인가 봐요


38세 이민자(비슷한 사례를 합쳐 만든 가상의 인물입니다.)씨는 요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 스트레스는 부모님이 이민자 씨 집으로 한 달여간 지내러 오시면서 시작되었다. 이민자 씨는 외국에 거주한 지 십여 년이 되었고 그동안 짧게 오신 적은 있지만 이렇게 길게 오신 것은 처음이다. 지금은 가끔 전화로 안부 나누는 평범한 사이지만 결혼 전 한국에서 같이 살 때는 통제욕이 강한 부모님 때문에 힘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이민자 씨의 가족 모습은 어쩌면 흔한 것 같다. 가족 간에 좋기 만한 관계는 오히려 드물지 모른다. 가족들이 서로 배려해 주고 예쁜 말로 대화하고 힘들 때 용기를 북돋아주는 아름다운 광경은 일일드라마에서나 있는 것일까? 오히려 가족이라 기본 애정은 있지만 가까워서 편하다는 핑계로 더 쉽게 상처 주는 애증의 관계가 많을 것 같다.

사실 이민자 씨는 자식의 일거수일투족 모두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간섭하고 통제하고자 하는 부모 밑에서 성장했다. 이러한 부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자 자연스럽게 유학 후 이민을 택했다. 이민자 씨의 부모님은 교육 수준이 높고 사회적으로 명망도 있고 모든 면에서 성실한 FM 타입이라 어릴 적부터 쉽게 거역하기 어려웠다. 두 살 많은 오빠는 기가 세고 남 말을 듣는 타입이 아니라 부모가 뭐라던 거부하고 거칠게 밀고 나가 부모의 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기질적으로 착하고 순한 이민자 씨는 불행히도 쉽게 대들지 못해 자신의 욕망을 억누른 채 착한 딸 노릇을 하며 살아왔다. 그러던 중 이민자 씨에게도 좋은 기회가 왔다. 자기 발전을 위한 유학은 이러한 억압 관계에서 떨어져 나오는 자연스러운 구실이 된 것이다. 물론 의절한 정도로 심각한 갈등관계는 아니었지만 늘 간섭받고 통제받는 긴장 관계가 불편하고 스트레스였다.


그런데 떨어져서 살다 보니 과거의 고통들이 희미해지고 서로를 향한 그리움이 커졌다. 아마도 이민자 씨에게는 과거의 고통보다 이민지 현실의 냉혹함이 더 커서 부모와의 경험이 추억처럼 재생되었나 보다. 다시 보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이 막 들었다. 그간의 불효를 씻고 뭐라도 해드리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마침 이민자 씨가 정착한 곳은 한국보다 기후조건이 괜찮고 문화적으로도 살기 좋은 지역이었다. 그래서 은퇴하고 시간적 여유가 많아진 부모님에게 놀러 오시라고 초대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부모님도 조심하자라는 마음 가짐으로 오실 것이다. 문화도 다르고 다 큰 성인인 자식 집이니까 조심하자고 마음먹는다. 그런데 이 마음이 오래 못 간다. 어쩌면 노인들은 유연하지 못해 변화가 어려운 것이 당연할지 모른다. 이민자 씨의 부모도 자기 본모습으로 돌아갔다. 현지의 룰과 이민자 씨의 생활 방식을 존중하지 않고 사사건건 간섭하고 자기 방식을 강요했다. 통제본능이 올라와 자식의 심기를 거슬리는 언행과 행동을 하게 되어 이민자 씨와 충돌, 갈등이 잦아졌다. 이것은 한국에서의 갈등보다 더 심각했다. 한국에서는 서로 열을 식힐 시간과 공간이 있는데 이민지에서는 그러기가 쉽지 않다. 이민자 씨는 괴로웠다. 낮에는 서로 언성 높여 싸우고 잘 밤에는 죄책감에 몸부림쳤다. 이렇게 싸움만 하다 한국으로 돌아가시면 그 죄책감으로 오랫동안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부모님 오신 그 시간을 잘 버티고 즐겁게 보내야 한다. 정신 똑바로 빡 차리고 마음 굳세게 먹어야 한다


우선 부모가 바뀐다는 생각은 그냥 포기해야 한다. 아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해야 편하다. 그런 일은 진짜 잘 일어나지 않더라. 대신 내가 그 꼴을 덜 보면 된다. 부모님이 오시면 옆에서 뭘 자꾸 해주려고 할 것이다. 언어와 운전이 능숙해서 혼자 돌아다니는 것이 가능한 경우라면 더 좋겠지만 아닌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비서처럼 하루 종일 붙어서 시중드는 역할을 하는 경우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내 생활을 완전히 포기하고 맞춰줘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해야 내가 산다. 최대한 그전의 일상을 똑같게는 못하더라도 비슷하게라도 하면 좋다. 재택이라도 회사에 나가고 회사가 한가한 시즌이라도 일찍 퇴근하지 말고 회사에 있으면 좋다. 누가 보자고 하면 거절하지 말고 나간다. 대신 부모님이 집에서 혼자 지내면서 할 일을 마련해 주면 된다. 정원일, 간단한 집안일, 손자녀와의 시간, 한국 티브이 시청 등등 말이다. 친하게 어울리던 한국인 이민자 가족이 있다면 식사 초대해서 여럿이 어울리는 시간을 보내도 괜찮을 것 같다.

또한 같이 뭘 하면서 최대한 잘하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야 한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적지 않은 돈을 들여서 쉽지 않은 발걸음을 한 것이니 정해진 시간에 최대한 많은 것을 보여드리려고 근교 또는 다른 지역으로 빡빡한 여행 일정을 잡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다 보면 쉽게 체력적으로 지쳐 그에 비례해 인내심이 바닥나고 서로의 예민함만 증가할 것이다. 그런 상태로 같이 여행 가면 서로 예민해져 말 한마디, 행동 하나로도 서로 폭발할 수 있다. 가능하다면 같이 여행 가는 빈도를 줄이고 일정을 여유롭게 하는 것이 현명할지 모른다. 서로 충분히 휴식을 취한 상황에서 느긋해진 마음으로 여행하면 갈등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님 오신 날부터 함께 있어 죽을 맛 같고 시간은 더디 가는 것 같다. 그런데 아이가 있는 경우 조부모가 아이한테 하는 방식을 관찰해 보면 어린 시절의 자신과 부모관계가 리플레이되는 경우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관찰로 이전에 내가 부모에게서 받은 상처와 이로 인해 현재 겪고 있는 심리적 문제에 대한 인싸이트를 얻기도 한다. 부모님의 방문은 별것 아닌 경험처럼 보이지만 이 시기를 잘 넘기면 이것 또한 나를 성장시킬 것이다. 잘하면 어린 시절의 나를 돌아보고 그 시절의 부모와 화해하게 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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