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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리멘탈 심리학자 Oct 18. 2024

힘들 때 소확행 얘기가 불편했던 이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강조하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꽤 확고하게 트렌드로 자리 잡은 것 같다. 세상 변했다. 나 어렸을 때는 무조건 꿈은 크게 크게, 뒤돌아보지 말고 직진, 큰 성장이 유행이었는데. 이렇듯 사회가 개인에게 기대하는 바도 트렌드가 있는 것 같다.  요즘은 작게 작게 작은 성취와 작은 기쁨. 심리학도 이러한 트렌드에 맞게 연구가 쏟아진다. 큰 성취를 쫓다가 크게 좌절하지 말고  매일 자기가 꼭 이룰 수 있는 작은 것에 기뻐하라고 한다.



어떤 것들이 일상 속에서 쉽게 느낄 수 있는 작은 행복인가? 물론 개인 차 있고 다양하다. 헤르만 헤세는 이렇게 말하더라. 따뜻한 햇살, 산들거리는 바람, 파란 하늘, 산책하며 느끼는 계절의 변화, 나를 스쳐간 내가 사랑했던 수많은 인연, 아름다운 추억 등등등 고상한 양반이라 그런가 소소한 행복도 뭔가 고급지게 느껴진다. 사실 이렇게 따지면 셀 수 없이 많다.


소확행은 상담자가 내담자에게 강조하는 것 중 하나이다. 나 역시도 학사, 석사, 박사 심리 전공 학생 때는 상담받는 내담자 입장이었다. 그런데 내 어려움을 토로하고 소소한 행복 어쩌고 저쩌고를 들을 때면 그게 그렇게 가식으로 느껴져 불편했었다. 그리고 요즘 여기저기서 소소한 행복 운운하는 심리학 교수들의 기고문을 볼 때면 그 불편했던 감정이 다시 올라온다. 물론 내 그릇이 간장종지만 해서 일수 있다. 어떻게 들리냐면 그냥 용쓰지 말고 분수껏 작은 것에 만족하라고 아랫사람 내려다보듯이 훈장질하는 느낌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의 자격지심으로 비뚤어진 해석인 것 인정한다. 백 프로 인정한다.


게다가 일상 속 작은 행복, 말만 소박하니 아름답지 당장의 힘든 상황이 나아지기 힘드니 그냥  현실을 회피하란 말 같이 들렸다. 예를 들어 치매노인 똥기저귀 수발로 죽을 맛인데 참고 견디고 그 속에서 소소한 기쁨에 만족하라고 그러면 놀리는 것 같다. 진짜 절박해서 종교도 없는 사람이 세상의 온갖 신들에게 제발 살려달라고 빌고 또 빌고 있는데 일상의 소소한 기쁨을 찾으라니 이게 뭔.  이게 백 프로 맞는 비유는 아닐 것 같지만 쉽게 말하면 이렇다. 급똥 상황에 닥치면 진짜 아무 생각도 안 들고 정말 급박하다. 오로지 이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 밖에 안 든다. 이거 해결 전까지는 그 어떤 위로도 도움 안 된다. 그냥 이 악물고 버티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 쓸모없는 소리는 또 아닐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사람들 모두 저마다의 처절한 싸움을 벌이는 어둠의 시절이 있듯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중환자실과 일반병실 오가며 투병했던 때였다. 그때 나를 견디게 한 것 중 하나는 건강해지면 하고 싶은 버킷리스트였다. 뭐 영화처럼 스카이다이빙하고 여행 어디 가고 뭐 그런 거창한 것들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진짜 사소하고 아무것도 아닌 매일 무심코 지나쳤던 일상들이었다. 버스 타고 학교 가기, 지하철 2호선 강변역-성내역-잠실역으로 이어지는 지하철 창밖으로 보이는 한강보기, 대학로 큰 횡단보도 건너기, 그때그때 유행하는 소소한 아이템들 사고 별것도 아닌 일로 시시덕거리고 꺄르르웃고 그런 것들이었다. 아…그 작은 바람들이 나를 살게 했던 것이로구나.




물론 한참 지났기 때문에 작은 것들의 중요성을 느낀 거지 정말로 힘들 때는 이 악물고 버티는 것밖에 딱히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때 옆에서 소확행 운운하면 짜증 솟구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인생 뭐 있나. 아무리 절망적인 인생이라도 그 자체로도 이미 멋진 것 아닌가. 그러니 살아내야 한다. 그 여정에서 내일이 기다려지는 단 한 가지라도 있다면 어깨에 짊어진 짐이 조금은 가벼워질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예를 들어 뜨거운 여름 지나 코끝으로 느껴지는 차가운 가을 공기, 출근길 향긋한 테이크아웃 커피 한잔, 주말에 늘어지게 늦잠 잔 후 먹는 단짠 브런치, 동네 목욕탕에서 손가락 피부가 쪼글쪼글 해질 때까지 느긋하게 즐기는 목욕, 아침출근하자마자 사내 메신저 켜고 잡는 점심 약속과 메뉴, 점심시간 오종종 짧게 즐기는 산책, 퇴근 후 도장 깨듯 줄 서서 먹는 맛집 방문 등등등 그래도 이런 것들이 있다면 아주 아주 아주 조금은 살아가는데 위안이 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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