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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 Gwon Mar 15. 2024

말기 환자에게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웰다잉 인터뷰


말기 환자에게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기력이 쇠약해지고 점차 정신도 온전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에도 삶의 의미가 있는 걸까요? 


인터뷰에서 드린 질문이다. 이 질문은 더 나아가 자기다움을 잃은 식물인간이나 뇌사 상태에서도 삶의 의미가 있는 것인지,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몸과 마음이 힘들어질 것이 예상되어도 끝까지 살아가야 하는지, 삶의 의미가 없다면 안락사나 자살이 타당한 것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당돌한 질문이었다. 정신이 온전치 못하면 삶의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었으므로. 하지만 이번 인터뷰가 아니면 여러 의사 선배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이 기회를 놓치면 의사가 된 후에 '왜 살아야 하는지' 환자를 설득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감사하게도 인터뷰에서 의사 선배님들께서 귀한 지혜를 많이 나누어 주셨다. 


삶의 의미에 대해 고민한다면 꼭 읽어보라고 여러 번 추천받았던 책인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를 먼저 읽어보았다. 유대인이던 빅터 프랭클은 나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경험을 이 책에 담아냈다. 기약 없이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던 그가 고통을 견뎌낼 수 있었던 힘은 삶의 목적을 찾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다. 삶에 목적이 있다면 시련과 죽음에도 반드시 목적이 있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니체의 말을 자주 인용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일본 호스피스 완화의료의 아버지라 불리는 쿠니히코 이시타니 선생님은 인터뷰에서 희망의 크기에 관계없이 희망을 갖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하셨다. 아무리 작은 희망이라도 그 희망에 최선을 다하면 의료진도 환자도 후회가 적다고 하셨다. 존엄성(Dignity)이란 자신을 위한 의무(Duty for Self)도 있지만 다른 이를 위한 의무(Duty for Others)도 있다고 강조하셨다. 환자 스스로 뿐만 아니라 그와 연결된 다른 사람에게도 의미가 있다면 충분히 존엄성을 갖고 삶의 의미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환자 자체는 자기다움을 잃은 상태더라도 그와 연결된 사람을 위해서 살아갈 의무가 있다고 하셨다. 연결 대상은 꼭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어도 되고, 꼭 사람이 아니어도 된다. 그의 병실을 찾아오는 의료진을 포함해서 그와 인연을 맺었던, 또는 맺을 사람일 수도 있고, 하나님일 수도 있고, 반려동물일 수도 있다. 그렇게 나와 연결되어 영향을 받는 대상을 위해서도 살아갈 의미가 있다는 뜻이었다.


미국 완화의학 전문의 L선생님께서는 삶의 의미가 거창한 것이 아님을 짚어주셨다. 죽음을 앞두고 있더라도 붉은 노을을 볼 수 있는 것, 가족과의 의미 있는 대화, 유머, 누군가 자신을 찾아와 주는 것, 맛있는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것 모두 짧은 순간이지만 삶의 의미가 될 수 있다. 그저 일상에서 사랑할 수 있는 잠깐의 순간들이 우리가 오늘을 살게 한다고 하셨다. 건강한 사람들이라고 다르지 않다. 삶의 목표가 원대하고 꿈이 있어서 살만하다고 느끼는 순간도 있겠지만, 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싶은 날도 있다. 그럴 땐 친한 친구랑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고 깔깔대고 위로받는 그런 순간들이 삶의 의미가 되는 것 같다고 하셨다. 


캐나다 완화의학 전문의 C선생님은 말기 환자의 삶의 의미에 대해 '희망 재구성하기(Reframing hope)'가 중요하다고 하셨다. 호스피스 완화의료에서는 완치가 목적이 아니고 남은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그래서 호스피스에서 몸과 마음 상태가 더욱 편안해지리라는 희망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였다. 의사로서 환자의 여생을 예측하거나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없더라도 매일 환자와 가족을 방문해서 곁을 지키고, 자주 만나 이런저런 질문에 답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다. 즉, 완치될 것이라는 희망에서, 남은 삶의 질이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으로 희망을 재구성하는 것이 죽음을 받아들이고 여생을 충만하게 보내는 데에 필요하다. 문득 암환자의 정신건강을 돌보는 정신종양학 세부 전문의이신 일본의 O교수님께서 완화의료에서 치료 목표는 환자와 가족의 내적성장이라고 하셨던 것이 떠올랐다. 말기 판정 이후에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여 받아들이고 남은 시간에 충실하겠다고 결심하는 과정이 바로 환자와 가족의 내적성장 아닐까. 서로 다른 교수님과 진행한 인터뷰 내용이 연결되자 마치 점이 모여 선이 되고 그림이 되어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환자가 죽음을 원할 때 그럼에도 사셔야 한다고 의사로서 설득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걱정을 말씀드리자, 말기 환자를 주로 보시는 정신과 P교수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얼마나 힘들면 삶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실지 마음이 아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환자분이 갖고 있는 고유한 아름다움을 발견해서 그 가치에 집중할 수 있게 돕는다면 환자가 절망에서 빠져나오는 힘을 얻는다고 하셨다. 환자분이 갖고 있는 내면의 힘을 믿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비슷한 이야기를 해주신 영국 호스피스 의사 J도 계셨다. '평행 접근법(Parallel approach)'이라고도 하는데, 있는 그대로의 건조한 사실을 전달하면서 약간의 희망도 가미하는 것이 말기 환자에게 필요하다고 하셨다. 의사 J는 당신의 어머니께서 얼마 전 돌아가실 때에 이를 깨달았다고 했다. 당시 어머니께 필요했던 말은 '엄마, 괜찮을 거예요.'였는데, 당시 어머니께서 헛된 희망을 품고 완화의료를 거부하실까 봐 냉혹한 사실만 전달하는 실수를 한 것이 너무 후회된다고 하셨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머니께서도 이미 현실적인 사실은 알고 계셨고 그저 희망 한끝자락이 필요하셨던 것 같다고 하셨다. 그 이후로는 환자를 볼 때 약물은 어떻게 할지와 같이 차갑고 건조한 사실보다는 환자에게 줄 수 있는 희망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해주려고 한다고 하셨다. 


살아가는 이유는 스스로를 위한 것도 있지만 그와 연결된 다른 사람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또한 살아갈 이유는 거창할 필요가 없고 일상 속에서 사랑할 만한 순간이 곧 삶의 이유이다. 특히 말기 환자에게 삶의 의미는 남은 시간 동안 완치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내적 성장을 해나가는 것임을 깨닫는 것이 죽음을 받아들이고 남은 시간을 소중하게 쓰는 데에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개인이 가진 고유의 아름다움을 환자 스스로의 힘으로 찾아낼 수 있다고 의사가 믿으며 함께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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