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인터뷰
"호스피스가 뭔데? 내가 왜 호스피스에 가야 해? 호스피스 가면 다 죽는 거 아니야? 호스피스에서 어떤 처치까지 할 수 있는데? 의사건 환자건 뭘 알아야 호스피스를 가지."
호스피스에 대한 인식이 널리 퍼져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어느 교수님께서 인터뷰 때 해주신 말씀이다. 나도 관심을 갖기 전까지는 호스피스라고 하면 막연하게 임종 전에 가는 곳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완화의료라는 용어도 쓰는데 완화의료와 호스피스는 거의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초점이 다르다. 완화의료는 암과 같이 중증 질환이라고 진단하는 시점부터 시작해서 임종까지 적용되는 것으로, 말끔하게 완치는 힘든 상태일 때 불편한 증상을 완화하는 치료이다. 예를 들어, 대장암인 경우에 수술로 암을 완전히 떼내는 것은 완치이고, 암이 많이 퍼져서 완전 제거가 어려울지라도 암덩어리가 너무 큰 나머지 대장이 막혀 변비로 힘들면 암덩어리를 일부 제거해서 변비를 완화하는 것이 완화의료이다. 그에 비해 호스피스는 대상자를 죽음에 임박한 말기 환자로 좁힌 것이다.
인터뷰를 해보니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면 다 죽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할 수 있으려면 완치 불가능한 상태인 말기 암환자라야 한다. 그래서 호스피스 병동에 가면 다 죽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호스피스 병동에서 임종을 앞당기거나 임종까지 방치해 두는 것이 아니다. 호스피스에서 치료 목적은 생애 말기에 나타나는 다양한 증상을 조절하면서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내적 성장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함으로써 임종 전까지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호스피스 완화의료는 크게 네 유형으로 나뉘는데 입원형, 가정방문형, 외래형, 자문형이 있다. 호스피스 업무 일부분만 입원 병상에서 이뤄진다. 그 외 대부분은 가정방문과 외래 진료이다. 집에서 호스피스 병원까지 다닐 수 있을 만큼 비교적 건강한 환자들은 수개월에서 수년동안 외래를 다니며 여러 활동을 한다. 가정방문형에서 호스피스 간호사와 의사는 집이나 요양 시설을 방문해서 환자와 가족을 돕는다. 극심한 통증, 구토, 호흡곤란, 불안 같은 증상으로 호스피스에 입원하더라도 중간에 상태가 좋아지면 퇴원할 수도 있다. 다른 과에서 가능한 모든 치료를 받으면서 호스피스는 자문 협진하는 형태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 완치를 목적으로 하는 치료와 증상 완화를 목적으로 하는 완화의료는 상반되는 것이 아니다. 암을 포함한 중증 질환은 진단 시점부터 조기에 완화의료가 개입하는 것이 권고된다. 그래야 말기가 되었을 때 부드럽게 호스피스 완화의료로 넘어갈 수 있고 삶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도 확보되며,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을 함으로써 치료에 더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다.
돌아가실 때까지 의사가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꼭 눈에 보이는 혈액 검사 수치를 교정하고 암덩어리를 없애는 것만이 아니다. 완치가 되지 않는 상태에서 어떤 의학적 목적을 갖고 치료를 할 것인지 의사 스스로 명확한 목표 설정이 필요하다. 호스피스 완화의료에서 이루어지는 처치는 크게 두 가지로, 증상 완화와 의사결정 지원이다. 생애 말기에는 다양한 증상이 나타난다. 통증, 섬망, 우울, 불안, 변비, 설사, 호흡곤란, 삼킴 곤란, 오심구토, 감염, 출혈, 부종 등등. 증상이 관리되어야 비로소 심리적, 사회적, 영적 돌봄이 가능해진다. 호스피스에서는 환자에게 더 이상 해줄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말기로 갈수록 이렇게 증상이 많아지고 삶의 질이 중요하므로 약의 부작용을 고려해서 일반 병동에서보다 더 섬세하게 약을 써야 한다. 호스피스 병동 입원환자 대부분이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같은 연명의료를 원치 않으나 수액, 영양공급, 진통제 등은 호스피스에서도 가능하다. 각종 관 삽입이나 수혈로 고통을 덜어줄 수 있다면 그렇게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의사 중에서도 호스피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이 많다. 말기 암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약의 부작용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잘 모르거나, 어차피 해드릴 수 있는 치료가 없다고 생각해서 호스피스에서 근무하기 편할 거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심지어 호스피스에서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정확하게 몰라서 호스피스에 입원하면 무조건 항생제나 수혈을 중단한다고 알고 있는 의사도 있다고 한다. 항생제 투여나 수혈을 하는 이유는 환자가 조금이라도 더 편한 상태를 유지해서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이므로, 환자가 견딜만한 상태라면 굳이 중단할 필요가 없다. 의사의 무지로 인해 환자가 생애 말기 삶의 질이 낮아질 수 있는 것이다. 호스피스는 일반 병동 환자를 보는 것보다 더 공부하고 신경 쓸 부분이 많은 분야이다. 호스피스에 대한 인식 개선은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필요하다.
호스피스 완화의료에서 하는 또 다른 중요한 일은 의사결정 지원이다. 보통 호스피스에서 하는 일이라고 하면 증상 관리만 생각하는데 의사결정 지원도 매우 중요하다. 암 진단, 시한부 선고와 같이 나쁜 소식을 전하는 것부터 항암 치료를 언제까지 받을 것인지, 임상시험을 할 것인지, 중환자실에 갈 것인지, 호스피스 의료기관을 이용할지, 가정 호스피스를 할지, 어느 지역에서 할지. 이런 결정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생애말기 삶의 질을 크게 좌우한다. 또한 호스피스 완화의료에서는 증상 조절만큼이나 마음의 성장도 중요한 목표이다. 음악치료, 미술치료, 자서전 쓰기처럼 다양한 활동으로 삶을 돌아보고 죽음을 받아들이며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삶의 의미를 찾는 시간을 갖는다. 죽음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면서 소중한 시간에 방황만 하기보다 남은 시간을 귀하게 보낼 수 있도록 돕는다. 그래서 호스피스에 입원할 수 있으려면 의식이 또렷하여 환자 스스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상태여야 한다.
노인 인구가 많아지면서 웰빙과 건강하게 늙어가는 것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항노화, 질병예방, 미용, 운동, 유기농은 흔하게 볼 수 있는 데 비해 잘 죽는 것에 대한 관심은 낮은 것 같다. 매스컴에서 먹을거리,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넘쳐나면서도 죽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불편하고 어둡고 진지하기만 하고, 나와는 먼 얘기라고 생각해서인지 잘 나오지 않는다. 매스컴에서 나오는 죽음은 유명인의 자살, 사건사고로 인한 죽음, 영화와 드라마에서 나오는 비현실적인 모습이 전부이다. 웰다잉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 방법을 찾으려는 움직임도 자연스럽게 일어날 것이다. 성경 요한복음에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구절이 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기 시작하면 생각이 변하고, 생각이 변하면 말과 행동이 바뀐다. 잘 죽는 것이 곧 잘 사는 것의 완성임을 보다 많은 사람이 알게 되길. 그리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만큼 흔하고 중요하게 죽음에 대한 이야기도 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