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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 Gwon May 13. 2019

당신의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나요

[소망없는 불행]페터 한트케

"엄마, 퇴직하면 뭐할거야?"

"글쎄, 하고 싶은 게 딱히 없네."

하고 싶은 게 없단 말에 가슴이 멘다. 뭐라도 도움이 될까해서 여행도 좀 다녀보라고, 엄마 아가씨 때 하던 서예도 하라고, 글쓰기도 괜찮은 것 같다고 이것저것 말해본다. 

"글자 좀 보면 이제 눈 아파. 서예 하기엔 어깨도 아프고."



나를 키우느라 자기를 잃은 걸 엄마 탓을 하려다가도 그보다는 그냥 나를 엄마가 원망할 수 있으면 당신이 상처를 덜 받을까 싶어 나도 모르게 내 탓으로 돌리게 된다.그러다가도 답답한 마음에 그러게 그동안 왜 이것저것 안 해봤느냐, 내가 나한테 희생해달라했느냐, 나 크는 거 보는 걸로 됐다는 게 더 숨막힌다고 쏘아버린다. 



그 말에 엄마는 니 탓이 아니라 당신이 원래 그런 사람이라 한다. 너희를 이렇게 키우는 게 당신의 운명 같다며. 엄마가 하고 싶은 게 있는데도 못한 게 아니라 애초에 그다지 먹는 걸 좋아하지도 않고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지도 않는다 했다. 그렇다고 너네한테 바라는 건 없고 그게 업보인가 보다 싶다고. 그저 너희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로 기억되면 그걸로 족하다 한다. 



엄마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봤다. 엄마가 행복해 하는 모습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다.초등학생 때 숙제로 부모님께 인생에서 가장 기뻤던 순간을 물어보라는 게 있었는데 다른 친구들은 발표시간에 '제가 태어났을 때요'라고 했지만 우리 엄마는 내가 동화구연 대회에서 대상을 받았을 때라 했다. 어린 마음에도 이상해서 엄마는 내가 태어났을 땐 안 행복했어? 물어보니 숙제 잘 하라고 그렇게 말한거지, 우리 딸 태어났을 때 행복했지~라고 했지만 내가 볼 때 우리 엄마는 엄마로서 사는 게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퇴근하고 오면 밥을 안쳐놓고 그 사이 나와 동생을 씻기고 밥을 멕이고 설거지를 하고 당신이 씻고나면 녹초가 되어 잠들기 바빴다. 그런 엄마에게 내 이야기를 그때그때 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엄마를 탓하고 싶진 않다. 엄마아빠는 그들의 최선을 다해 나와 동생을 키웠고 난 그만큼 내 자식에게 헌신할 자신도 없으며, 하고 싶지도 않다. 아빠가 엄마를 도와주지 않았구나 싶겠지만, 아빠는 내가 아는 남자 중에서 가장 가정적인 남자다. 장보기는 늘 아빠 몫이었고, 집안일도 같이 했고, 우리와도 잘 놀아줬다. 그럼에도 맞벌이 부부가 아이 둘을 키우는 건 힘들어보였다. 



세상 누가 뭐라해도 엄마아빠는 늘 내 편이라는 정서적 지지는 강력하게 내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지만 엄마아빠가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는 못한단 걸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퇴근시간이 됐는데 엄마가 오지 않으면 베란다에 붙어 하염없이 주차장을 봤다. 왜 늦냐고 전화를 못했다. 그 전화를 받다가 사고라도 날까봐. 혼자 집에 있을 때 가스점검 아주머니라도 벨을 눌렀다하면 내가 안에 있단 걸 들킬까봐 쥐 죽은 듯 있었다. 모든 자극이 무서웠다. 그 때 엄마아빠가 내게 해줄 수 있는 건 없었다.



나도 마음이 힘들게 자랐고, 엄마도 힘들게 엄마노릇을 했다. 어릴 땐 나를 이렇게 두는 엄마를 원망했는데 이제 당신이 나를 낳은 나이가 되어보니 당신도 아무 것도 몰랐을 텐데 본인의 색깔을 잃어가며 생명을 키우려니 힘들었겠다 싶다.  엄마는 '엄마'라는 존재의 의미를, 그리고 현실의 무게를 미처 알지 못했다. 여자는 선생님하는 게 최고라는 외할아버지의 반대로 엄마는 의대 대신 교대에 들어갔고, 꼭 결혼을 해야한단 생각이 없었는데 소개를 받아 만나다보니 어느새 결혼을 하게되어 여기까지 왔다. 엄마는 늘 아침 알람 없이 일어났다. 일상이 그렇게 긴장의 연속이었겠지. 딸이 아니라, 엄마라는 사람을 사랑하는 한 인간으로서 엄마의 삶을 보면 당장 엄마를 그만두고 당신 길을 찾으라고 하고 싶다.



엄마라는 존재의 이 처연한 여정은 동서 구분이 없나보다. '소망없는 불행'에서도 자신을 잃고 가족을 위해 살아온 또다른 엄마가 주인공이다. 이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난 엄마란 존재의 의미를 생각해야 했다. 엄마라는 존재가 된다는 것은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두 성인의 결혼과는 다르다. 한 생명이, 그 생명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로 인해 세상에 태어나는데, '다들 애 낳고 사니까'라든지 '애를 키워봐야 어른이 되니까'라는 이유로 육아와 출산을 자아 성취를 위한 일환으로 대하는 것은 잔인한 이기심이고, 태어난 생명에 대한 무시이다. 내가 별탈없이?! 살아온 건  엄마아빠의 노력과 내 노력만의 결과가 아니고 내 통제 밖의 행운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낳은 아이 또한 험한 세상에서 그렇게 행운아일 것이란 보장도 없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래서 절대로 엄마가 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다. 충분한 부모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가 된다는 건 당연히 어렵다. 닥치면 하게 된다든지, 무조건 많이 낳으라고 떠밀 게 아니라, 부모가 되었을 때의 어려움을 현실적으로 알려주고 그에 대한 대처방안을 공유하고 교육해주어야 그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부모가 되려고 할 것이다. 언젠가 내 딸이 나를 떠올렸을 때는 행복한 엄마였다고 떠올릴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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