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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이 써니 Jan 15. 2023

내 하루의 수채화

작년 말에 마음을 굳게 먹고 다이어리를 하나 샀다.

2023년은 뭔가 다르게 살고 싶은 마음에 구매했다.

그리고 '무슨 물건이건 다 있다는 곳'에 가서 예쁜 필기루를 샀다. 

이제 2023년이 오기만 하면 내가 아주 그냥 예쁘게 잘 꾸미며 써주리라!!

다이어리를 예쁘게 꾸미는 만큼 내 하루를 잘 살아보리라 마음먹었다.


감사하게도 2023년은 어떤 이변 없이 찾아왔다.

어제와는 다를 것 같았던 2023년의 1월 1일은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새로 산 다이어리에 새 마음을 담아 기념일과 정해진 일정들을 적어 넣었다. 


2023년도 훌쩍 지나갈 것 같은 생각에 세월의 속도가 60km쯤으로 여겨졌다.

빨리 지나가는 시간을 하나하나 음미하는 마음으로 다이어리를 쓰며

하루 한 시간을 알뜰히 살뜰히 계획한 지가 2주가 되었다. 


Unsplash image



내일의 시간들을 오늘 밤에 미리 계획하며 어떤 일들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계획했다. 


아이가 방학이니 하루 세끼를 챙기는 것이 우선이고

집안 정리 프로젝트를 지인들과 하고 있어서 하루 한 곳을 정리한다.

그리고 처리해야 할 업무와 통화해야 할 리스트를 적는다.

그리고 새로 시작하는 프로젝트 등을 적어 넣었다.


계획한 하루에는 미처 다이어리에 적지 않았지만 해야 할 일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오후 4시가 되면 꾸벅꾸벅 졸기도 한다.

자료를 찾으러 들어갔던 유튜브에서 너무나 사랑스러운 강아지, 고양이 영상에 마음을 뺏기기도 한다.

엄마와 꽁냥 하기를 즐겨하는 딸과의 시간은 훌쩍 지나가기도 한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계획대로 되었는지 체크해 보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아이고야... 오늘 나는 무엇을 한 거냐?

급하게 처리할 일들만 겨우 처리한 느낌이었다.

그런 날이 며칠 반복이 되니 다이어리를 쓰기 싫어졌다.

답답했다.


그러던 차에 이 글을 보게 되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삶이 펼쳐지는데 잘 대응할 수 있을까요? 간단합니다. 미래의 계획과 통제와 조직에 덜 신경 쓰고 현재에 더 충실하면 됩니다. 완전한 몰입에 빠졌을 때의 기분을 아실 겁니다. 기민하게 주의를 집중하게 되지요. 알아차림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겁니다. 순간에 몰입할 줄 아는 사람은 닥치지도 않은 온갖 일에 대응할 방법을 궁리하면서, 혹시나 잘못될지도 모를 상황을 미리 숙고하지 않습니다. 


계획을 세우는 것 자체는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오히려 어느 정도 삶을 미리 계획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계획을 세우는 것과 그 계획이 반드시 결실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예전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계획을 세우는 게 중요하지, 계획 자체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모두 진한 잉크 대신 흐릿한 연필로 일정표와 계획표를 쓴다고 상상해 봅시다. 앞으로 벌어질 거라고 우리가 기록하거나 생각한 일이 실제론 벌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 점을 늘 염두에 두며 살아간다면 어떨까요? 그 사실을 받아들이며 살아간다면 어떤 삶이 시작될까요?





내가 보고 싶은 글이어서 이글이 눈에 들어왔을까?

하루 계획을 하면서 나는 나의 에너지와 나의 시간은 생각하지도 않고 해야할일과 하고 싶은 일들을 마구 적었던 것 같다. 마치 하루가 48시간 인것 처럼, 마치 내가 20대의 미스인것처럼 말이다. 

나는 50대이고 숙면을 취하지 못해 (갱년기여서 라고 말해본다.) 하루 낮 시간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음에도 말이다. 

무엇보다 계획을 세웠으니 그 계획을 실천하고 결실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거기에만 집중하다 보니 지금 여기, 현재에 머물시간은 없었던 것이다. 

알아차림의 순간이 반갑고 즐겁지만 빨리 떠나보내야 하는 것들이었다. 


총 천연색으로 펼쳐지는 이 시간들,  생생하게 일어나는 계획되지 않은 일들이 반갑지 않았던 것이다. 


아이와의 즐거운 수다가

남편의 TV감상평을 듣느 것이

창문 밖 구름을 보고 있는 시간들이

반갑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계획하지 않았던 수채화같은 하루의 순간들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알아차림 앞에서는 멈추고 싶었다.

내가 무엇을 위해서 하루를 계획한단 말인가?

계획하는 행위를 통해 내가 얻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수채화같은 이 아름다운 순간들을,

지금 여기에서 누리며 살고 싶어하는 내 마음을 보았다.

1월에 이 마음을 알아차려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의 내 다이어리에는 예쁜 색연필로 그림을 하나 그려 넣어야겠다.

봄바랑이 살랑 살랑 불면서 따뜻한 햇살아래 앉아 있는 나의 모습을 말이다.


내가 하루에 할 수 있는 것만을 계획하고

나머지 시간들은 신이 나에게 예비해주신 선물같은 시간으로 반가히 맞이하고 싶다.


내일은 내 하루에 꽃향기가 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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