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가 되어버린 남편과 나

백수시작

by 메이쥴라이

난 미술감독이다.


저예산으로 입봉했지만,


결혼하고 경력 단절이 되어 예전 다녔던 회사에 들어가 다시 미술팀장으로 돌아가서 일도 하고 커리어를 이어갔다.


감을 잃고 싶지 않았고, 아이를 키우고 나면 일을 계속하고 싶었다.


중간중간 메인으로 일을 못해도 잠깐씩 나가는 광고알바나 드라마 세팅알바라도 있으면 나가서 짬짬히 일했다.


자존심이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이 끈을 놓치진 않으리라.. 그런 생각으로 버텼다.





그러다 코로나가 터졌다.


이 모든 것이 세상이 멈춘 듯이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외부 활동을 안 하게 되었고, 극장은 하나둘씩 망해갔다.


OTT 넷플릭스나 유튜브가 영화 스텝들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저렴한 예산으로 극대화된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외국 자본들이 너도나도 제작을 했다.


넷플릭스, 디즈니 등등 외국 기업 회사들이 앞다투어 한국에 들어왔다.


오히려 그 시절에 스텝이 모자라서 경력단절녀인 나에게 연락이 올 정도로 스텝이 부족했다.


90년대 이후 영화 르네상스 시대를 생각나게 한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영화는 제작하지 않았지만,

제2의 드라마 르네상스 시대였다.


영화스텝들이 드라마로 넘어갔다.


그리고 2년 뒤 슬슬 종식되면서,

급격하게 영화나 드라마 제작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예를들어 1년 거의 600편 이상을 찍었다고 쳤다면,


100편 이하로 줄어들었다.


주변에 같이 일했던 스텝들이 일이 없어 다른일을 하고 있다는 소식들..


일하면 축하한다고 이야기 할 정도 였다.




사람들이 밖을 돌아다니면서 OTT를 보지 않기 시작했다.


유튜브 쇼츠가 유행하면서 긴 호흡의 영화나 드라마를 보기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촬영을 하는 나와 나의 남편까지 고스란히 1년 이상을 쉬게 되었다.


겁이 났다.


프리랜서의 은퇴는 남이 불러주지 않으면 자연 은퇴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들은 점점 자라고 있었고,

나와 남편은 직업을 잃었다.


모아두었던 돈은 모래알처럼 사라져 갔다.


숨만 쉬어도 200만 원이 넘는 돈이 나갔다.

아낀다고 해도 돈은 부족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고,

남편에게 쿠팡 물류센터를 나가보라고 했다.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우린 자식을 키워내야 하고 먹고살아야 하니까..




남편은 쿠팡에 나갔다.



하루 일당 8만 원을 벌기 위해...


날씨가 덥거나 추울 때도 나갔다.


나는 무기력했다.


아직 아이들은 어렸고, 돈을 버는 방법에 대해서도 몰랐으며, 영화미술만 했던 나는 도대체 뭘 해야 할지 몰랐다.


내 직업이 일이 없어서 강제로 퇴직당하는 느낌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코로나는 끝이 났지만,

남편과 나는 백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