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인류학 2

서양 편

by watcher

앞선 글(장미와 튤립을 길들인 마음)에서 인간이 자연을 고정된 상수로 보지 않고 변수로 간주하였으며 인간이 의도에 따라 자연을 조율한 성취를 예술로 볼 수 있다는 취지의 얘기를 했다.(혹시 그렇게 읽히지 않았다면 내가 허튼소리를 길게 한 셈이겠지만..) 그런데 이것은 다분히 서구인들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자연을 상수가 아니라 변수로 보고 자연에 대한 도전, 개척, 통제를 통해 인간의 역량과 위상을 끌어올리려 한 그들의 스토리를 먼저 풀어봐야 할 것 같다. 물론 나의 사고 범위 내에서 해보는 논리 추론의 수준으로 나의 '뇌피셜'일뿐이라는 함정은 무시할 수 없겠다.


고대 서구인에 대해 얘기하자면 그리스와 로마를 봐야 한다. 그들은 다분히 인간중심적으로 사고하며 인간의 이성과 사고를 통해 세계를 수학적으로 분석하고 논리적으로 웅변하며 인간의 본성을 문학적으로 표현하였다. 세상의 진리를 갈구하고 가장 인간의 이성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진리를 탐구하였다. 이 시기의 신은 인간의 피조물이었던 것 같다. 아이러니해 보이지만 인간이 탄생시킨 다수의 신이 존재하여 인간사에 해결 불가능하거나 곤란한 문제들을 도맡아 주는 설정으로 그 신의 권위를 등에 업은 인간의 권력의 근거가 되어주었다. 하지만 철학 또한 명징한 형태로 살아서 꿈틀거렸다.


로마 제국 시기를 거치며 고대 도시국가의 시민들은 제국의 세계시민이 되었고 그리스 시대의 철학은 그때처럼 명징하게 살아 움직이기보다는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멋진 유물처럼 변했다. 제국이란 최대한 인간의 지성을 눈멀게 하는 것이어서인지 제국의 통치자들은 이제 철학보다 강한 종교를 원하게 된다. 제국의 확장에 다신교보다는 유일신교가 훨씬 적합함이 드러났다. 유대인의 종교인 유대교는 유일신교로서 이전까지 없었던 신으로부터 선택받은 유일한 민족이라는 개념을 주장했고 자신들의 선민의식을 아주 떳떳하게 신의 전언인 것처럼 교리화하였다. 그러다가 육신을 가지고 나타난 예수그리스도를 신의 아들이자 성령 자체로 받아들이면서 크리스트교는 절대적 권위를 가지고 선악의 기준을 인간계에 제시하게 되었다. '믿음 천국 불신 지옥'이라는. 이 심플한 믿음의 구조는 믿는 이들의 마음을 굳건하게 했고 거침없는 전진을 응원했다. 로마 제국의 분열과 몰락 속에 중세로 이어진 역사는 인간이 신을 창조했던 시대와는 완전히 결별하고 신의 피조물로서의 인간에 충실하고자 인간의 이성을 지하 창고에 가둬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 자연과 인간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가진 것은 신뿐인 것이다. 인간이 자연을 관찰하고 표현하고 모방하고 분석하고 바꾸어서 인간의 시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은 불경한 시대인 것이다. 인간은 신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었다. 신의 영광을 드러내려는 목적이 없이 특정 사물을 관찰하고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은 기괴한 일이 된 것이다. 이런 것이 중세였던 것 같다. 인간이 인간적인 것이 기괴한 시대.


르네상스는 찾아왔다. 인간이 인간의 이성과 감성을 다시 챙기고 인간적 표현을 하게 된다. very artificial 한 창작물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 art는 그래서 휴머니즘, 즉 인간성의 회복이다. 신적이거나 내추럴함에 대한 도전적 의미의 휴머니즘. 자연을 변화하게 하고 자연에 개입할 수 있는 것은 신 뿐이었는데 이제 인간도 자연을 신의 피조물고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해야 하는 것이 아닌 조작하고 개입할 수 있는 대상이 된 것이다. 인간이 인간 스스로를 독립적인 존재로 믿고 사랑하는 것. 이러한 사랑이 근대의 문을 열었다. 휴머니즘의 질주는 가속도가 붙었고 결국 원자폭탄 같은 것을 만들어낼 지경이 되었다. 이것은 인간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애정이 거의 나르시시즘에 가까워진 것으로 보인다. 자연을 완전히 대상화해서 철저히 개척과 탐험의 대상으로만 여기게 되었다. 그런데 이와 동시에 중세적 신앙에서는 벗어났으나 근대인 역시 그들의 길을 거침없이 나아가는데 여전히 선악의 잣대로서 유일신교를 강력한 도구로 사용하였고 이것은 전혀 다른 맥락의 역사를 살고 있었던 비유럽지역에 대한 침략을 정당화하는데 폭발적 효과를 발휘하였다. 믿음 천국 불신 지옥, 믿는 자는 인간 믿지 않는 자는 야만인 혹은 비인간(짐승)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는 근대의 제국주의를 부끄러움 없이 촉수를 뻗게 해 준 것이다. 그들이 죽인 비기독교도는 인간이 아닌 것이며 비기독교인들의 땅은 신이 기독교도들을 위해 선사해 준 선물인 것이다.


다시 정원으로 돌아와서 생각해 본다. 서구인들은 어떤 자연도 자연 그대로 두지 않았다. 정원의 아름다운 꽃, 농작물 등 모두 인위적으로 바꾸고 길들이고 조정하였다. 인간의 이성으로 과학적 실험과 분석을 통해서, 그리고 그러한 역사가 묻어나는 그들만의 관습과 전통과 도구들이 정원을 가꾸는 소소한 문화 속에도 녹아 있다는 것이다. 장미를 사랑하고 튤립을 사랑하는 내 눈에 비친 정원의 인류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