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산책 1

고려 여성의 지위

by watcher

고려시대 여성의 지위는 조선시대 여성에 비해 높았다고 학생들 교과서에서는 소개하고 있다. 이 부분을 가르치면서 항상 약간 흥미가 있다고 느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가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를 볼 수 있는 대목이라서였는데 막상 길고 자세하게 다룰 수 있는 단원은 아니다 보니 약간의 아쉬움을 느끼며 항상 간단히 언급하고 지나가게 되었다.


"고려시대에는 부모의 혈연관계를 동등하게 중요시했으므로 친족 관계에서 남녀의 권리와 의무에 별 차이가 없었다. 아들과 딸은 부모의 재산을 균등하게 상속받았고 부모의 제사 비용은 자식들이 균등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며, 딸이나 외손자가 제사를 모시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또한 고려에서는 일부일처제가 유지되었으며, 고려 시대 여성은 가정 내에서 주체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여성은 관직에 진출할 수 없었고 사회적 활동에 제약이 있었다는 점에서 한계가 분명히 존재했다." - 천재교과서 한국사 2 -


그런데 고려시대 문벌세력 형성의 주요 요소로 혼인 관계가 들어가는 점과 관리 선발 방식 중 하나인 음서제의 혜택 범위에 사위와 외손자가 포함된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고려 사회의 성격과 여성의 지위를 묶어서 생각해야 함을 깨닫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고려시대에는 여성의 지위가 조선시대보다 상대적으로 높았다고 말할 수 있겠으나 그것이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약간은 벗어난 양성 평등적 관념에 따른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물론 중세에 해당하는 고려시대에 양성 평등적 관념이 있었을 턱이 없으나 단지 여성의 지위가 높았다는 특이점으로 보기보다는 당시 지배계층의 형성 과정 속에서 여성이 조선시대와는 어떻게 달리 자리매김되었는지를 보는 것도 흥미롭다는 것이다. 고려에서는 신라시대와는 달리 골품제가 사라졌고 과거제와 음서로 관리를 선발했다. 고려의 통치 체제가 안정되면서 여러 대에 걸쳐 고위 관리를 배출하며 특권을 누린 가문이 나타났는데, 이를 문벌이라고 부른다. 문벌 가문으로서 세력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서 왕실이나 다른 문벌 가문과 혼인 관계를 맺는 방식이 이용되었다. 여기에서 혼인 관계가 두 집안의 세력을 강화하고 확장하는 주요 수단이 되었으므로 현대에 와서도 젊은 두 사람의 결혼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나이 든 사람들이 흔히 결혼은 단지 두 사람의 결합이 아니라 두 집안의 결합이라고 근엄하게 했던 말이 시대착오적이나 역사적 맥락을 가진 말이었음을 생각해 보게 된다. 이러한 혼인 관계 속에서는 여성이라고 일방적으로 낮은 지위를 차지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여성 집안의 힘으로 남성 집안이 더 큰 힘을 얻게 된 경우 부인의 지위가 가정 내에서 보장될 수밖에 없다. 이에 더해서 장인의 지위로 인한 음서의 혜택을 사위나 손자가 볼 수 있는 경우까지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고려시대 여성의 지위는 여성을 독립적인 인격체로 간주한 결과는 아니고 딸을 출가시킨 집안의 남성(아버지)의 지위로 인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남성 중심 두 가정의 결합의 매개체로 딸이 혼인을 하는 것이고 그러한 배경 속에서 여성이 친정 부모의 권위를 등에 업고 가정 내에서 남편과 또는 남성 형제들과 대등한 권리를 누린 측면이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고려시대에는 혼인한 딸은 출가외인이 아니라 집안의 확장을 이루게 한 자식으로 아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그래서 친가와 외가 역시 우열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이런 모습은 아마도 고려 태조 왕건이 당시 강력한 호족세력들의 도전 속에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지방의 유력한 호족 가문들과 중첩된 혼인 관계를 맺었던 것과도 연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 변화하는 지점은 무엇일까. '조선'이라는 나라는 '성리학'적 이념 구현을 목표로 한 측면이 있다. 고려 후기 성리학이 도입되었고 이를 받아들인 신진사대부들이 세운 나라인 만큼 성리학적 질서를 구현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성리학적 세계관은 모든 관계에 위계와 서열을 정당화하였고 모든 관계에 적용하였다. 국가 간, 계층 간, 남녀 간, 장유 간의 질서를 위계적으로 파악하였고 이로 인해 남성중심의 혼인 관계가 점차 일반화되었다. 조선시대에도 중기까지는 남성이 여성의 집에 장가들고 고려시대처럼 처가의 덕을 보는 경우도 흔히 있었다고 하지만 중기 이후로는 여성이 시가에 들어가는 시집살이 형태가 일반화되었고 여성은 출가외인이 되었다. 따라서 여성은 친정의 재산 분배에서 제외되었고 그런 만큼 친정의 제사에 부담을 할 필요도 없어진 것이다. 남성이 처가의 덕을 볼 수 있는 음서의 범위도 축소되어 가정 내에서 여성의 권위를 보장할 수 있는 여지도 사라졌다. 여성에게는 성리학적 윤리가 요구하는 순종적이고 자기주장을 하지 않으며 시가의 제사를 정성껏 모시는 미덕만이 강조되었던 것이다. 우리 나라 전통 속에서 여성의 지위를 일반 적인 수준에서 훨씬 끌어 내린 것은 성리학 질서가 주요 원인이었으며 중세나 고대보다 조선시대에 여성의 지위 하락이 급격하게 진행된 것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