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시작

from 1997

by 이준성공
나는 오늘

의 머릿말이 아닌 형태의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은 1997년이었다.

동네 모닝글로리 매장에서 산 작은 주황색 다이어리는 B5~A5 정도의 사이즈로

중학교 2학년만 걸린다는 그 질병에 뒤늦게 걸려서 좀비처럼 글을 써내려 갔다.


1997년은 서태지와 아이들 그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절로 중학교 때 이루지 못한

戀愛의 꿈을 이루겠노라고 결심했다.


당시 실용적인 것에 관심이 있었다면 공부에 매진하여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갔으리라

생각해보지만 어림없는 소리다.

게다가 하필 J-Rock을 듣게 되는 바람에 아무 의미 없는 쓰레기를 배설하기 시작했다.


이건 무슨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내가 좋아하는 표현들로 이루어진

흡사 프랑켄슈타인의 모습을 한 괴물같은 문장에 불과했다.


예를 들면 이런식이다.

천상의 정원에 피는 장미 속에서 피어난 너의 향기로 다시 태어났다.

천상의 정원은 무엇이고 나는 어떤 이유로 다시 태어났는가?

뜻도 의미도 맥락도 없는 글 속에서 나르시즘은 끝없이 커져만 갔다.

같은 고등학생인 고등래퍼가 쓰면 바코드가 되는데 왜 나는 쓰레기가 되는 것일까


매일 일기를 쓰지 않았지만 무의미하게 독서실에 갔으므로

졸린눈을 부비며 집중하기 위해 한장한장 썼다.

일기를 쓰기 위함이라기 보다는 공부시간을 채운다는 위안이었으리라...


오글거리는 글들을 다시 읽고 싶지 않다.

그건 언제나 가상의 연인을 생각하며 쓴 글이다.


나의 사랑이 끝나면 너로 인해 영원히 이 곳을 떠날 수 없을꺼야


더 이상 쓰다보면 내 손톱이 없어져 버릴 것 같아 이만 줄인다.


2018. 0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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