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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 Feb 18. 2018

잡지 취향의 변천사

01 잡지

#1-1  잡지: 취향의 변천사#1-1  잡지: 취향의 변천사3#

#1-1  잡지: 취향의 변천사

    /'아무튼 잡지'로부터 시작된 글





'잡지'라는 단어가 눈에 띈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평소처럼 빠르게 손가락을 휘저으며 별 일 없는 구경을 하던 와중이었다. 가수 이랑님이 올린 사진에서 잠시 멈췄다. 손이 멈추는 대부분은 내 취향의 카페나 맛집 혹은 소품을 발견했을 때, 그리고 흥미로운 책을 발견했을 때 두 경우다. 이번에는 후자의 경우였다.


이랑님이 올린 사진에는 조그맣고 아기자기한 '아무튼' 시리즈가 놓여 있었다. 다른 사람의 피드와 검색을 통해 이미 알고 있던 책이기에 새로울 것은 없었다. 하지만 이 사진을 보고 '읽어볼까' 고민하던 마음이 '읽어보자'로 바뀌었다. '오, 이랑님도 이 책을 읽는다고?' 아마 이랑님이 올린 책이라면 믿음이 가서였던 것 같다. 나는 지난해 '대체 뭐하자는 인간이지 싶었다'를 읽고 좋은 감정을 느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하필, 이랑님은 '아무튼 '잡지' 먼저 읽어보겠다'고 글도 함께 남겼다. 잡지, 어린 시절 나의 맹목적인 꿈이었던 잡지.


하지만 나는 게으른 편이라서 목적을 갖고 서점을 들릴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무튼 잡지'를 구매한 건 짬이 난 시간에 들린 홍대 <땡스북스>에서다. 들어서자마자 매대에 진열되어 있는 이 책을 보았고, 이미 마음속으로 찜해놓은 뒤 다른 책들을 둘러봤다. 나올 때는 '아무튼 잡지'와 만지작거리다 내려놓기를 반복했던 요조 '눈이 아닌 것으로도 읽은 기분'까지 사버렸다. 이상하게 잠깐 들린 서점에서는 살까말까 고민하던 책을 충동구매를 한다.






유년시절의 나는 '취미는 독서'라고 지금보다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다른 친구들이 인형을 갖고 놀 때도, 놀이터에서 뛰어다닐 때도 나는 집에서 책을 읽는 게 좋았다. 지금에야 간식을 먹으면서 쉴 때 VOD를 보는 게 일상이지만, 그 때는 텔레비전도 아닌 책을 읽는 게 당연했다. 그 순간이 나에겐 휴식이었다. 이름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일주일에 서너 권 책을 배달, 대여해주는 서비스도 꽤 오랜 기간 이용했다.


책을 습관처럼 읽어대던 나에게 잡지는 일탈의 쾌감을 선사하는 존재였다. 일반 책과 다른 형식의 글을 읽는다는 건 세상을 몇 년 살지 못한 아이로서는 상당한 흥밋거리였다. 심지어 내가 지금까지도 제일 어려워하는 분야인 과학의 잡지까지 읽었으니, '닥치는 대로 읽었다'는 표현이 맞을 거다.


중학생이 되니 또 다른 일탈의 세계가 펼쳐졌다. 한창 멋 부리고 꾸미기를 좋아하는(이라고 읽고 날라리를 동경하는) 시기가 되자 '걸(girl) 지'라 불리는 패션잡지가 눈에 들어왔다. '보그걸' '엘르걸' '쎄씨'와 같은 잡지는 '보는 것만으로도 안도감을 선사하는' 시험기간 족보 같은 존재였다. 당시 내 나이에는 완성할 수없는 메이크업과 살 수 없는 패션 아이템들, 읽어봤자 쓸모없을 '썸남과의 관계 팁'과 같은 정보들, 슬프게도 내가 따라갈 수 없는 예쁜 언니들의 결정적인 어택. 심지어 어디서 구했는지는 모르겠는 일본 잡지들까지. 내용 그대로 실천할 수는 없지만, 잡지는 들여다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남다른 아이'라는 묘한 쾌감을 선사했다.




나 패션에디터가 될까? 그러기에는 패션은 너무 어려워. 메이크업에 관심이 많으니 뷰티에디터? 음 그런데 책도 좋아하잖아, 피처에디터를 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누가 시켜준다고 하지도 않았는데. 한창 그렇게 걸 패션지를 사재끼며 열심히 부질없는 고민을 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훗 귀엽군' 싶은 얕은 상상의 나래다. 장래희망 란에는 당연히 '에디터'라고 적었다. 누군가가 꿈을 물어보면 자랑스럽게 '에디터'라 말했다. 막연히 글 쓰는 직업을 갖고 싶었던 사춘기 소녀에게 '에디터'는 동경의 대상이자 명확한 목적지를 심어준 단어였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또 다른 사춘기가 찾아와 '내 나이에 걸 패션지를 읽을 순 없지'라는 또 다른 허세에 빠졌다. 몇 년간 수시로 바뀌었던 패션-뷰티-피처의 굴레를 벗어나, 피처에디터가 되기로 내 맘대로 결정한 시기이기도 했다. 공부를 하겠다는 생각으로 독자사연부터 광고처 리스트, 에디터 페이지까지 서너 번을 완독했다. 이 때는 '나일론' '지큐' '아레나' 등을 많이 모았다. 정기구독을 하면 되는데 나는 이상한 고집으로 단 한 번도 신청을 하지 않았다. 당시는 잡지가 사양산업의 길로 들어서고 있을 때였는데, 그런 와중 서점에 가 직접 잡지를 고르고 있는 내 모습이 멋져 보여서 그랬던 것 같다.




그렇게 책장에 셀 수 없을 만큼 잡지가 쌓여갈 무렵, 독립출판물은 생각지도 못한 충격의 영역이었다.



그것들은 예쁘게 정돈된 모습으로 감각적인 자태만을 뽐내던 잡지들이 아니었다. 표지도, 내용도, 판형도, 구성도 본인의 뜻대로 만든 자유로운 책이었다. 마침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모여 '우리 한 번 잡지를 만들어보자'고 마음을 다지던 때였다. 역시나 '음,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걸 하고 있어'라는 허세가 깃들었기에 더 흥미로웠던 것도 사실이다. 다르게 말하면 어린이용 잡지에서 걸 패션지, 글이 특화된 패션지에 이어 마침내 독립출판물까지, 현재의 나를 만든 종착점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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