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를 읊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니다.
기자가 되고 나서야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에 대해 한 번쯤은 말해보고 싶었다. 어떻게 보면 부끄러운 자기고백이다.
12.
그토록 초조해하고 허탈함을 느꼈던 이유는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선배들이 건넸던 조언은 결국, '어쨌든 글 잘 쓰고 취재 잘 하는 기자이면 된다'. 얼마나 쉬든, 미팅을 몇 차례하든 그렇게 큰 문제가 될 건 아니었다. 기사를 잘 쓰는 기자라면 언제 어디서든 그 사람을 찾는다.
열심히 일하는 기자의 덕목이 빼곡한 미팅 일정인 줄 착각했다. 미팅도 중요한 취재인 건 사실이지만, 취재원 늘리기에만 급급해 미팅이 취재의 전부라는 편협한 생각에 머물렀다. 그동안 내가 쓴 기사들은 방목되어 있었고, 면접 자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라는 머저리 같은 말만 내뱉어야만 했다.
자괴감이 들었다. 그 면접 자리만 생각하면 아직도 얼굴이 빨개진다. 분명 퇴고를 거듭하고 많은 자료를 찾아본 기사들도 있었다. 하지만 머릿속이 하얘져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냉정히 말해, 기억할 만큼의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상황이다. 기자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갖고 있던 사람이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읊지 못한다는 사실은 내 뒤통수를 강타했다. 지금까지 생각해왔던 기자의 개념이 완전히 무너졌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했으며 어떤 생각으로 기사를 써왔는가. 아니, 거창한 기자의 역할이 아니더라도 내가 기자로서 어떤 기사를 쓰고 싶은지, 기사로서 내 글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취재에 열정을 보였는지 고민해본 적은 있던가.
12.
벌써 세 번째 회사를 다니고 있는 지금, 나는 이제야 고뇌에 빠졌다. 내 바이라인을 달고 내보낸 수많은 기사의 한가운데 서서 '글'을 고민하고 있다.
반쪽짜리였던 내 기사를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운이 좋게도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는 '기사다운 기사'를 지향하는 데스크가 있었다.(과거형이다.) 단독 경쟁과 그의 후속보도, 트래픽을 위한 기획 아닌 기획은 더 이상 용납되지 않았다. 기사에는 꼭 취재원의 멘트가 들어가야 했고, 기획안을 제출해 세 꼭지짜리 시리즈 기획을 내놔야 했다. 불거진 이슈로부터 뻔히 나오는 겉핥기 식 기사가 아니라 다른 시선으로 아이템을 바라보는 법을 훈련했다.
"당연히 기자라면 그래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은 다르다. 이상은 저 높이 있을지라도 데스크의 지시로 '배설'에 가까운 기사를 써야 하는 경우도 많고, 어뷰징과 우라까이만 해대는 온라인 연예매체가 쉴 새 없이 늘어나 기자의 역할과 책임이 흐릿해진 것도 사실이다. 좋은 환경에 있어도 별다른 생각 없이 놀고먹는 기자들도 많다.
13.
나는 돌고 돌아 원점에 도달했다. 누군가가 나에게 직업을 물었을 때 "기자예요"라고 답하는 게 어색하다. 스스로 "기자예요"라고 떳떳이 말할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기자다운 기자, 기사다운 기사는 무엇일까. 어렵다.
반대로 내가 어떤 순간에 가장 뿌듯한지 떠올려 본다. 가령 연락이 뜸하던 선배가 갑자기 "기획기사들 잘 보고 있다"라고 말하던 카톡 메시지, "기자님 글은 좀 달라요"라던 관계자의 말, "진심이 느껴지는 기사네요"라는 네티즌들의 반응.
이미 짜인 판인 네이버 연예홈에 기사가 걸리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짜릿한 순간들이다. 이런 말들을 듣고 보는 순간, 마음속 조그만 불씨에 불이 붙어 금세 활활 타오른다. 기계적으로 타자를 두드리던 좀비는 사라지고, 기사에 몰입해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글을 써 내려가는 나만 남는다.
아직도 '기자란 무엇인가'라는 말에 대답할 수 없다. '괜찮다'고 생각했던 글들도 다시 읽어보면 부족함을 알게 되듯, 나는 배워야 할 것이 너무도 많은 존재다. 그렇지만 잊지 말아야 한다. 아이돌 노래 '따위' 듣지 않는다고 무시하고 연예기사는 글이 아니라고 취급하던 내가, 연예부 기자가 되어 오히려 '기자'에 대해 고민하는 이 순간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