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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 Oct 29. 2017

기자와 글쓰는 사람 사이에서 5

기자가 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를 읊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니다.

기자가 되고 나서야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에 대해 한 번쯤은 말해보고 싶었다. 어떻게 보면 부끄러운 자기고백이다.




10.

정말 팔자도 박복하지. 5개월 정도 다녔나, 연예부가 없어져 한순간에 백수 신세가 됐다. 당시 내게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개였다. 퇴사와 부서이동. 증권부나 사회부, 산업부 등과 거리가 멀었던 나는 주저 없이 퇴사를 택했다. 보통 업계에서는 1년이 지나면 한 바퀴 돌았다고 하는데, 나도 이제 막 뭔가를 알아가던 참이라 이대로 그만두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그렇게 나는 의도치 않은 공백기를 가지게 됐다. 두려웠다. 이제야 어떤 아이돌들이 있는지, 누가 어느 소속사인지 파악하게 됐는데 현장을 나가지 않으면 모두 다 잊어버릴 것만 같았다. 열심히 드라마 모니터링을 하고 있었는데, 일을 안 하면 그마저도 안 할 것 같았다.


특히 내가 일을 그만둔 계절은 여름. 가요시장 성수기로, 가장 많은 가수들이 쏟아져 나올 때라 그들의 쇼케이스를 보지 않으면 기껏 채워 넣은 정보에 빈칸이 생길까봐 초조했다. 집에서도 계속해서 네이버 연예 홈을 체크하고 보도자료를 빠짐없이 확인했다.


그간 알아놓은 관계자들과 선배들이 나를 잊을 것 같은 기분 또한 공백기가 무서운 이유였다. 선배들에게 이런 고민들을 털어놓았더니 '그 시기에 취재원 정리가 될 것이다' '현장 몇 번 안 나온다고 해서 큰일 날 것 하나 없다'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지만 진짜였다. 고작 3개월 조금 넘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때 나에게 힘을 실어주던 사람들을 잊지 못한다. 쉬고 있을 때 잘 해줘야 나중에 복귀했을 때 본인들을 더 잘 챙길 것임을 잘 아는 빠꼼이들도 있었지만, 마음이 급했던 나는 그마저도 노력해주는 게 참 고마웠다. 현장도 몇 번 안 나갔다고 해서 지금까지 알게 된 정보들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었다.


11.

무엇보다 이 공백기가 나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이유는, 기자로서의 나를 성찰해보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는 멈출 수 없는 경주마처럼 달려왔다.


당시 나는 매일 점심 미팅과 티 미팅을 했고, 저녁에는 새벽까지 술자리를 다녔다. 그래야만 취재원과 친해질 수 있고 나에게 정보를 준다고 생각했다. 그게 기자의 길이라고 여겼다. 평균 수면시간은 4시간에서 6시간 사이였다. 그러다 보니 자꾸만 지각을 하고 실수를 했다. 당연히 기사의 퀄리티가 좋을 리가 없었고, 늘 숙취에 쩔어 대충 발제를 내고 쉽게 기사 쓰는 요령만 피웠다.


아이러니한 굴레 속 무언가 잘못되가고 있다는 걸 알아채긴 했는지, 당시 나는 아무리 취재원과 선배들을 만나도 채워지지 않는 허무함과 회의감이 있었다. 오프 더 레코드로 듣는 정보는 많았지만, 내 글발을 살리거나 구체적이고 집요한 취재로까지 이어지지가 않았다. 결국 그 술자리는 공짜가 될 수 없는 건데 말이다. 나에게 도움을 주려던 선배들에게도 마음에 들려고 노력만 했지, 뿌듯한 기사를 내보이거나 취재하는 데 있어 어려움을 토로해본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지금껏  '기자란 이래야 해'라는 잘못된 강박관념을 핑계 삼아 술이나 얻어먹고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고민을 내팽개치고 있었다. 내 생각 없이 그저 어깨너머로 보고  들은 것들이 내 것이라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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