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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 Oct 29. 2017

기자와 글쓰는 사람 사이에서 4

기자가 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를 읊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니다.

기자가 되고 나서야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에 대해 한 번쯤은 말해보고 싶었다. 어떻게 보면 부끄러운 자기고백이다.




7.

너, 이 회사 그만둬라


다행히도(?) 나의 삐뚤어진 정신 때문에 말씀하신 것은 아니었다. 회사가 워낙 신생인 데다가 기자 출신의 실무진이 없는 것과 몇몇 사항들로 인해 업계 이력에 도움이 그다지 되지 않을 거란 이유 때문이었다. 선배는 나를 생각해해주신 조언이었지만, 이제 기자일에 맛들 린 나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아니, 일 잘하고 있는 게 이게 뭔 소리여. 사실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준도 안됐다.


그 뒤로 몇 달이 지나고, 선배는 정말로 퇴사를 했다. 신생회사를 열심히 이끌어보려고 했지만, 지내보니 그 가능성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하셨다.


8.

나는 결국 1년을 버텼다. 인력이 부족했기에 웬만한 일정은 내가 다 소화했고 그만큼 현장 경험은 늘어갔다. 소속사 홍보팀 번호를 알 수가 없어 02로 시작하는 회사에 전화를 걸어 번호를 알아내고, 메일 하단에 적힌 번호를 죄다 전화번호부에 저장했다. 인사를 안 받아주거나 시큰둥하던 선배들도 내가 계속 얼굴을 비추고 살갑게 대하자 나를 받아들여줬다.


선배들의 도움과 함께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나날이 늘어가는 만큼, 내 자만심도 하늘로 치솟았다. 흙바닥부터 열심히 노력한 것은 지금 내가 생각해도 뿌듯하지만, 그 당시에는 기자로서 마음가짐을 바로 잡아나가는데 나쁘게 적용됐었다. 더군다나 회사에서 나는 무서울 게 없었다. 회사의 원년멤버가 싹 갈려 나만 남아있었고, 가요를 담당하던 나는 덕후력을 발휘해 팬들이 좋아할 법한 기사들로 늘 조회수 톱을 달렸다. 내가 쓰는 글도 다들 좋아해 줬었다. 그렇게 나는 안일함에 젖어갔다.


그렇게 꼬박 1년을 채울 때쯤, 점차 각성하기 시작했다. 고작 1년차였으면서 '기자'라는 이름에 취해 찌든 나 자신이 무서워졌다. 이대로 가다가는 큰일 나겠다 싶었는데, 때마침 나를 잘 챙겨주던 선배로부터 오퍼를 받았다. 자신이 이직을 하게 돼 빈자리에 나를 추천해주겠다고 하셨다.


9.

처음 겪는 이직은 정말이지 최악이었다. 사회경험도 제로였던 나는 다니던 회사와 가야 할 회사 중간에 끼어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 전자에서는 한 달간 나를 못 내보낸다고 했고, 후자는 하루빨리 오지 않으면 합격을 취소한다고 했다. 그 가운데에서 어떻게 대처를 하고 조율해야 할지 몰랐던 나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이게 사회구나'라고 느꼈던 첫 번째 순간이었다.


결국 여차저차 잘 해결이 되어 새 직장을 다니게 됐다. 그곳은 지면도 있었고, 네이버에 기사 송출도 됐다. 이전 회사에서 쓰지 않았던 포맷의 기사들을 쓰기 시작하면서 또 다른 희열에 눈을 떴다.  


오, 뭔가 제대로 하는 느낌인데? 이게 바로 기자의 길!


일단 오전 7시30분 출근부터가 참 색달랐다. 신경 쓰지 않았던 시청률에 관심을 보이고 업계 전반에 대해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지면 기사에는 어떤 야마와 형태의 기사를 실어야 좋을지도 배웠고, 기자수첩도 썼다. 나를 별로 신경 쓰지 않던 소속사 관계자들로부터 전화와 문자도 받게 됐다.


선배의 전화를 바로 받지 않거나 카톡을 늦게 보는 날이면 불호령이 떨어졌다. 아침부터 저녁부터 바짝 긴장해 신경을 곤두세웠고, 그럴수록 실수를 연발했다. 나름 신중했하다고 생각하던 행동 하나하나가 '틀린' 것이 되었고다. 열심히 한다고 타 선배들에게 예쁨만 받아온 나는 미운털이 박혀 애물단지가 됐다. 욕도 먹고 큰 소리가 섞인 혼쭐도 나며 '선배와의 관계'도 알아갔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힘든 때였는데 동시에 '기자일이란 게 이런 거였구나' 생각한 시기이기도 하다. 그것도 웃긴 게, '진짜'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 깨달은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물론 당시 배웠던 것들은 이전 회사에서 배울 수 없었던 것들이었고 지금의 소중한 자산이 됐지만 말이다.


나의 부끄러운 마음 깊숙한 곳을 파헤쳐보면, 비교적 쉽고 자유롭게 흘러가던 이전 회사와 달리 이야기로만 듣던, TV나 영화에서나 보던 고된 삶의 현장이 펼쳐지니 기자라고 인정받는 '느낌'이 들어 좋았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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