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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욜 MaYol Jun 27. 2024

얼굴

mayol@행화촌 5. 1961년, 내 ⌜얼굴⌟은

홍성문(洪性文)은 경북 김천에서 1930년에 태어나 2014년에 유명을 달리한 시인이다.

시인이자 조각가로서도 명성을 떨쳤고 영남대학교에서 미술대학장을 엮임하기도 했다.

표지
저자는 시집의 표지와 속지 첫 페이지에 직접 그림을 그려 넣었다.

조각가로서 그리고 또 시인으로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던 그의 시세계는 어떨까.

시집은 총 7개의 장 60편의 시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필자가 임의로 선택한 세편의 시와 후기를 소개한다.


차례


1.

가는 노래 / 속 화원 / 잠을 몰고 간 사람 / 아직도 내 귓전에 / 어둠속에서 / 에밀레 / 벽을 헐기위한 <판타지> / 문門 3 / 당신을 안경으로 쓰고 가면 / 평행선 / 상像


2.

참벌과 폐허와 / 화산 / 검은 뇌속에 / 소녀상 / 흑조 / 정물 / 어느 서가에서 / 참회懺悔 / 대답 / 개설사開 / 寺 / 불의 의미 / 석등


3.

강물은 흐른다 / 꽃 / 한송이 수련임을 / 달맞이 꽃 / 얼굴 / 강물에 / 어제로 향한 문을 닫아버리고 / 강변의 시 / 손으로도 말하고 / 나의 손가락은 / 문門 4 / 호수 / 비둘기와 하늘


4.

낙화 / 일력日曆 / 대화


5.

조춘早春 / 수면睡眠 / 달밤에 / 봄비 / 단장斷章


6.

무제 / 우물 / 부자상父子像 / 모자상母子像 / 머리맡의 과일은 / 학 / 그 소리는 / 자하문 / 신분증 / 과부와 시인은 / 청암사 / 밤 / 바다여, 너의 입을 빌려라


7.

별의 대열 / 조국 / 활화산



    ▶︎ 얼굴


    한굽이 파도가 돌아나가면

    또 저만치서 떠오르는

    얼굴.


    하늘마저

    무서운 해심海深에,

    부침浮沈하는 달처럼


    고요한 항로航路에는

    그림자로 따르다가

    절망 그 너머

    넌지시 올라서는,


    비운悲運에서만 보고

    멀리서만 손짓하는

    은은한 미소.


    오늘도

    너의 눈부신 원광圓光을

    서러운 기치旗幟로 달고 간다.



    ▶︎ 머리맡의 과일은


    앓아 누운 지어미를 아랫목에 보고

    바람에 쫓기듯 나선 문밖 -


    진 종일을 ......

    서러운 우정속에 잃어버렸다가

    배 하나를 댕그마니 사들고

    돌아온다.


    조심스런 웃방의 기침소리는

    자정을 일러주는데

    무딘 칼로 문질러 놓은

    애정아닌

    변명같은 것.


    머리맡의 과일은

    너의 표정을

    넌지시 엿보는데


    그나마 더운 눈길로 반기는

    지어미는

    소리 죽여 깨물어 본다.



    ▶︎ 과부와 시인은


    짊은 과부와 외로운 시인은

    잠자는 웅덩이처럼 미지근한 시간에서

    무서운 기적을 부르며 살아간다.


    짓궂은 비가 지절대고

    모든 발자취가 끼웃거리다 돌아서 간,

    말없는 밤이 고개를 치켜드는 이러한 때면 ......


    시인은 과부처럼

    과부는 시인처럼

    외로워야 한다.


    그런 빗소리도 저만치 멀어져 가고,

    틀어앉은 어둠의 밑바닥에서

    문득, 미친 손길같은 것이 엄습掩襲해 오기를 기다리는 ......


    젊은 과부와 외로운 시인은

    외나무다리처럼 조매로운 시간에서

    달큼한 기적을 부르며 살아간다.



후기後記>


사물은 저마다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산의 얼굴, 별의 얼굴, 꽃의 얼굴, 새 짐승의 얼굴, 또 팽이의 얼굴.

소월의 얼굴, 릴케의 얼굴, 로뎅이나 섹스피어의 작품안에 숨쉬는 얼굴.

기쁠때나 쓸플 때 노할 때의 얼굴, 그리고 장엄하거나 비겁한 죽음의 얼굴같은 거......

그러한 울굴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비치우는 눈에 따라 다르며 또한 얼굴이 얼굴을 낳기도 한다.

유독 그 중에서도 지울래야 지울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심중 가장 깊이 자리한 얼굴이라면 이 시집은 물상에 비친 바로 그 얼굴을 노래한 것이다.


3년전에 상제上帝한 ⌜꽃과 철조망⌟의 서에서 지훈님은 맵짠 맛이 모자란다 하셨고 석정님께서는 더 높고 깊으라고 격려를 주셨다. 그러나 그동안 수월찮이 모인 원고를 정리해 놓고 보니 선배님의 말씀을 하나도 귀담아 들은 것 같질 않다. 아마 나도 고월님이 말한 속물인가 보다.

올해 들어서는 이 세계를 벗어날려고 무진 애도 써보았으나 몇달이고 붓을 놓는 수 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그저 쓰는데까지 써보자는 심산이다.

지훈님이 가려주신 칠십사편중에서 지면상 심사편을 더 추려내면서 백정같은 잔인성을 맛보아야 했다. 나대로는 목숨을 기울인 작품이기에 말이다.

차례는 우선 네 갈래로 나눠 놓고 다시 작업한 순서에 따라 배순하여 보았다. 사부의 삼편을 제하고는 모두 2시집 이후의 것이다.


아무턴 여기 수록한 육십편은 내 인생의 절정에서 부른 노래다. 아니, 숨김없는 독백이기도 하다. 역시 인생의 앞섰는지도 모른다.

거기 미소하는 한 얼굴만 바라보고 허둥지둥 기어올랐으나 어느덧 고개를 넘어설 때 내 손을 보니 빈 손이었다.


끝으로 이 책이 나오기까지 도와주시고 편의를 보아주신 송설동창 제형을 비롯한 여러분들과 신호사 김응작씨께 뜨거운 사의를 표한다.


- 신축 유월

황악산하 직지사에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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