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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욜 MaYol Jul 04. 2024

바다와 어머니

mayol@행화촌 6. 동시와 소년시집, 1959

내가 쓴 시의 대부분이 엄마에 대한 이야기이고 그런면에서 나의 모든 시가 다 동시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엄마를 빼놓고 동시를 지을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한계선에 기대어 서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 마음 같은 시인이 있었다.

이종택이 그다.

(장정/ 삽화 김영순)


1928년에 경북에서 태어난 그는 6.25가 끝날 무렵이던 1953년에 [소년세계]를 통해 동시집 <새 고무신>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에 들어갔다.

그의 시세계는 늘 엄마의 품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종택의 친필 사인이 들어가 있는 시집을 발견하고는 서둘러 값을 치르고 쫓기듯이 서점을 빠져나왔던 기억이다.

그는 어떤 생각으로 동시와 소년시집 [바다와 어머니]를 내었을까.



    [머릿말]


    이 세상에서 가장 자기를 그리워하고 사랑해주신 분이 누구일까요? 백 사람이면 백사람, 천 사람이면 천 사람, 만 사람이면 만 사람에게 다 물어 보아도 “어머니, 그 분이에요.”라고 누구나 똑같은 대답을 할 것이다.

    나는 문학의 길을 가는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유난히 어머니에 대한 작품 <시, 동화, 수필 할 것 없이>을 써 왔다. 이번 이 세째 동시집 제 삼부에 속하는 열아홉편의 동시는 모두가 내가 지난 해 바다에서 앓고 있는 사이에 쓰여진 작품들이다.

    내가 앓고 있는 그 사이에 나의 어머니는 홀로 회갑을 넘겨 버리셨고, 가늘고 굵은 주름살이 온 얼굴을 쏵 덮어갔다. 그것을 생각하면 나는 지금도 내 가슴 속에 애끈히 일어나는 소원 하나가 있다.


    “나의 어머니여, 그리고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여, 부디 늙지 마소서, 부디 늙지 마소서.”


   - 1959년 늦여름, 이종택


시집은 총 4개의 장章에 50편의 시로 이루어져 있다.


    차례


1.


우리 우리 어린이 / 싸움 / 가을밤 이야기 / 겨울밤 / 여름밤 공부 / 내 고무신 / 감사기도 / 엄마야 나도 / 엄마가 저자가신 동안 / 감나무에 올라가 / 지금 창밖엔 / 대신동 종점


2.


발자욱(1) / 바위 / 바다에 와서 / 바다가 말하기를 / 바다야 / 저녁바다 / 발자욱(2) / 아기신 한 짝 / 썰물 나가고


3. 우리 어머니를 위한 동시집


소원 / 엄마 주름살 / 엄마 얼굴 / 꼬옥 붙들고 / 밤중에 밤중에 / 가위 바위 보 / 엄마 성 / 어머니는 해종일 / 울엄마 보고 / 엄마 목소리 / 어머니가 손수 / 어머니 몰래 / 늙지 마소서 / 엄마가 젤 미울 때 / 종종걸음 / 엄마 말 믿다간 / 누구네 엄만지는 몰라도 / 우리 어머니 / 우리집 어머니


4. 소년시편


고양일 안고 있을 때 / 강물이 오뚝 / 바다에 비 내리고 / 가을이 오고 / 산대신동 / 물수레 / 혜화동전차 / 해조음海潮音 / 바다엘 나가지 않겠나 / 들판에 서서



    ▷ 내 고무신


    찢어진 사이로

    쏘옥

    엄지 발가락이

    삐져나온다


    노란 내 고무신


    청마루에 오르면

    동그란 흙자욱이

    도장을 찍어놓은 듯......


    하지만 아직 보름은 더

    견딜 게다


    엄마랑 보시기 전에

    몰래 흙자욱을 지우자


    찢어진 고무신은

    섬돌 아래 내려놓고......



    ▷ 어머니가 손수


    어머니가 손수

    밥을 지으신 날 아침이면


    어머니가 손수

    밥을 푸시는 날 아침이면


    괜스레 어머닌

    부엌에서 꾸무적거려요


    어머니 밥은

    반 그릇만 퍼 놓고

    반 그릇만 퍼 놓고 ……



김영순의 삽화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선善하고 아름답고 침착하다.

  

    ▷ 어머니 몰래 - 이종택


    잠이 든 어머니

    베개 머리에


    동생과 둘이서

    어머니 몰래


    어머니 주름살

    세어 봅니다


    동생도 잠이 든

    베개 머리에


    나 혼자 남아서

    어머니 몰래


    어머니 흰머리

    뽑았습니다.



    ▷ 젊어지는 엄마 - 이종택


    엄마의 꿈 속에는

    가볍고 오목한

    구름같은 내손이

    가슴을 더듬다가

    얼굴을 말랑거리다가

    머리카락 사이로

    손가락을 넣고는

    주물주물 주물주물

    옹알이처럼

    하루 더

    젊어지는

    우리엄마



어쩌면 시를 이렇게 아름답게 쓸 수 있는 건지 볏짚에 머리를 파묻은 꿩 대가리 같은 내 머리로는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 우리집 어머니


    누나가 공장에 가고 큰언니가 신문배달 나가는

    아직도 까맣게 어둔 새벽 다섯시 -

    이때야말로 우리 어머니는 부엌에서 참말 바쁘시다


    찬물을 데우시고 쌀을 일으시고 물을 다시 길어 오시고 언니 누나 신발을 불에 쬐어 주시고, 작은언니와 내가 뒷동산에 운동하러 가는 새벽 여섯시 반쯤, 어머니는 새벽 이맘때면 으례 보고 계시던 성경책을 고이 덮으시며 가만한 목소리로 우리를 일깨워 주시곤 다시 부엌으로 내려 가신다.


    다시 물을 끓이시고 된장찌개를 데우시고 이불 속에 따끈히 감싸두었던 밥을 꺼내다가 밥상을 보시고 그리고 무연탄을 갈아 넣으신다.


    예순이 넘은 어머니 먼 눈에 고 쪼맨한 무연탄 구멍이 제대로 들어맞지를 않아 끙끙 애를 태우고 계실 무렵, 우리가 돌아와 나는 무연탄 일을 돕고 언니가 방쓰레질을 할 때 어머니 설겆이도 이윽고 끝이 난다.


    어머니 하루내 부엌에 계시는 시간이 아침만 해도 약 네 시간 -

    그런데 어머니가 새벽 몇시에 일어나시는지는 누나도 큰언니도 작은언니도 나도 모른다.


    어머니가 낮에는 무엇하고 계시는지도 언니 누나는 일터에서, 작은언니와 나는 학교에서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다만 저넥 때 우리가 모두들 집으로 돌아왔을 적엔 어느새 저녁밥이 다 지어놓여 있고 새 반찬이 한 두가지 늘어 있고 언니들 속빤쓰랑 내 런닝샤쓰가 말끔히 빯아져 있고 양말이 새로 기워져 있고......


    참말 이상하리만큼 신기하신 우리 어머니 -

    양말쪽 기우신 데가 감쪽 같고 된장찌개랑 젖김치맛이 그만이고 그리고도 한번 않(앉)지 않으시는 우리 어머니 건강이 무엇보다도 희안하다.


    온 저녁엔 유난히 일찍 설겆일 마치신 어머니가 빈 밥상을 갖다 놓으시고 토막연필과 돋보기 안경을 찾으신다.

    먼 데 시집 간 젤 큰 누나께 편지를 쓰실 모양이시다.


    "아가야 잘 있느냐, 애들은 잘 자라느냐, 지난 장마철에는 어찌했으며 올 김장은 어찌했는냐..."


    한쪽 밤삿 머리엔 필통 대신 안경집을 놓으시고 참고서 대신 성경책을 놓으시고......

    실은 오늘 밤에는 어머니께서 몇시가 돼야 주무시게 될는지 그것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숙제를 하는둥 마는둥 책을 보는둥 마는둥 맨 먼저 잠이 드는 나도 작은 언니도 요즘 바짝 늦도록 영어자습에 골몰하는 큰언니도 뜨개질하다가 맨 나중에사 잠자리에 든다는 누나도 어머니 잠이 드시는 시간을 모른다고 한다.


    낮에는 내가 학교에서 어머니가 하루내 부엌에 계시는 시간을 속으로 셈쳐보고 오늘 밤에는 어머니가 요즘 잠을 몇시간쯤 주무시는지 가만히 혼자 속으로 따져보며 마악 나는 잠이 드는 것이다.



    ▷ 해조음海潮音


    외로움

    서러움

    서글픔


    이 셋을 한데 합친 것을


    짠 소금물에다 씻고, 또 씻고

    다시 뜨거운 햇살에

    가루가 되도록 말리었을 때


    그때 비로서 억센 파도가

    부닥쳐와서


    몸부림치며

    거품을 물고

    흐느끼는 소리


    내 이름 해조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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