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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욜 MaYol Jul 11. 2024

한알의 씨, 1971

mayol@행화촌 7. 스승과 아내, 1971 이전의 추억

 [박XX 선생님께 1971. 5. 5 을미 철이 드림]


 깡통시장을 한 바퀴 돌면서 뚫어진 양말을 교체할 새 양말을 한 켤레 사고 족발골목 내에서 돼지국밥 한 그릇으로 끼니를 때운 후 보수동 책방골목엘 들어섰다. 돌아가신 선친 대신으로 헌책방을 운영하게 되었다는 책방집 아들이 오래된 일제 라디오를 꺼내 보이며, '싸게 드릴 테니 가져가세요.' 했다. 내 주머니 사정으로는 책 한 권도 벅찬데 골동품 라디오는 언감생심. 얼른 오른발을 디뎌 골목길로 더 깊숙이 들어갔다. 헌 책들이 습기를 품은 마른 나뭇잎 처럼 진한 냄새를 풍겼다. 눈에 핏발이 설 정도로 책방들을 드나드는데 골목길에 내놓은 책장에 정정화의 유시집이 숨은 듯이 꽂혀 있었다. 책의 내지 첫 장에 위의 글과 같은 증정표식이 있었다. 시인 정정화의 자녀들이 쓴 게 분명했다. 서울과 부산을 왕복할 기름값으로 책값을 지불하고 주머니의 먼지를 털었다.


 향파 이주홍은 제자 정정화를 몹시 아껴했었다. 성질머리가 남달랐던 제자 곁에서 늘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시인 김억이 제자 소월의 시집을 자비로 충당한 것처럼 주홍은 제자의 직업까지 구해주며 그의 창작을 기대했지만 스승의 바람은 이 유고시집 한 권으로 끝이 났다.

스승을 쫓아 학업을 옮기는 일이 쉬운 일이 쉬운 일일까. 정화는 그런 무모한 시인이었다. 애제자를 떠나보낸 스승 향파와 그의 아내의 마음에는 두고두고 미련만이 남았다


 시인 정정화는 1928년 경남 양산에서 태어났다. 1949년에 부산 동래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연세대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스승 향파 이주홍이 교편을 잡고 있던 부산수산대학에 다시 입학했다. 스승이 그립다는 이유 하나였다. 향파는 졸업하고 룸펜 생활을 하던 정화의 손을 잡고 부산 국제신보를 찾았다. 그 덕으로 문화부에 들어가 기자생활을 시작했으나 1970년 11월에 짧은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한알의 씨⎦는 3부 31편의 시로 구성이 되어있다.

 스승 이주홍의 서문과 아내 추진순의 후기가 또 하나의 작품이다.



 차례


 1. 詩


 시 / 무념 / 백지 같은 생명이 남았다 / 고향에서 / 종鍾 / 죽덕송竹德頌 / 대지 / 비 내리는 밤 / 석교石橋 / 무제 / 젊음이 / 눈은 내려라 / 푸른 하늘이 부끄럽구료 / 향수鄕愁 / NEGRO처럼 / 경주 들판에서 / 달은 간다 / 십자가 뒤에서 / 오월 푸른 하늘이 / 현실 가운데 / 전지戰地


 2. 無題

 하늘 / 순順아 / 가을은 오고 / 어느 형태形態의 오후일시午後一時 / 항구港口에서 / 무제 1 / 무제 2 / 무제 3 / 무제 4


 3. 한 알의 씨

 한 알의 씨


 서序


 정화는 상식에서 살 수 없는 사람이었다. 차세기此世紀(이승)에서 전세기前世紀세기를 살다 둔 사람이다. 그의 생애가 그랬고, 그의 죽음이 또한 그랬다. 어쩌면 남 다 갖는 무덤까지도 못갖게 됐는지 고루고루 상식을 벗어난 일뿐이다. 해방 후 내가 동고東高에 부임해 갔을 때 제일 먼저 나를 찾아준 학생이 정화였다. 학ㄱ엔 출석도 잘 안하면서 교우지를 내게 되니까 거진 저 혼자서 시를 쓰고, 소설을 스고, 번역을 하고 해 다 채워버리는 다재형多才型이었다. 그 뒤 연세대에 삼년째 다니는가만 알고 있었더니, 중간에 불쑥 내가 옮겨 와 있는 수산대학에 1학년으로 입학해 왔다. 내가 수업을 하고 있으면 곧잘 교실에 뛰어들어와서 버스값이 없느니 어쩌니 하고 십원 이십원의 돈을 얻어가는 때가 있었다. 내가 주선해 준 어느 신문사에 있으면서 출근 성적이 나빠 말썽일 때 충고를 하면, 결근을 하든가 지각을 하든가 내 맡은 일만 다 해 놓으면 그만이 아니냐고 되려 큰소리로 항변도 했다. 정화란 바로 그러한 사람이었다. 학생 때 ⎡한알의 씨⎦란 장시를 발표한 뒤 별로 계속하는 빛이 안보이기로 애닯아하는 일문一文을 신문에다 썼더니, 그는 그 답으로서 같은 신문에 이렇게 썼다.


 [선생님은 연전에 이러한 말씀을 하셨읍니다. ⎡그런 것이 <현실과의 대결문제> 장애가 되어 글을 못쓰겠다면 그 못쓰겠다는 심경을 써보라⎦고 하셨읍니다. 저는 그 말씀을 듣고 커다란 충격을 받았읍니다. 그렇다, 쓰지 못하는 이유, 그것이 쓰는 재료가 되는, 그 정신이 문학을 하는 정신일 게다. 결국 안쓴다는 것과 못쓰겠다는 것과는 별개문제인 것이다. 나는 결국 문학 이전에 사로잡혀 문학하는 정신을 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수표手票를 끊어놓고서도 끝내 작품발표가 없고 말았다. 고작 한다는 것이 직업적인 영화평 정도이었으니, 결국 문학창작의 공약에 대해서는 부도를 내고 만 셈이었다. 신기한 일에 탐혹耽惑하는 한편의 게으름이 끈기를 둔화시킨 것이었을 것이다. 죽음 직전 한시漢詩 번역한 원고가 한 책분쯤 있었으니 그거나 문학적 근업近業의 하나로 계산할 수 있을까. 여하간에 얼마든지 기대를 걸어도 좋을 인재 하나가 이 세상에서 멀어져 갔다. 간 저도 불행하고 잃은 나도 불행하다. 그 중에서나마 단 하나 다행을 찾는다면 그의 유족의 정성에 의해 이 한 권의 유시집遺詩集이 세상에 남게 된 일일 것이다. 참으로 물거품 같은 인생인데, 정화 떠난 자리에 정화의 입김 시가 남아 있게 됐다는 사실은 만번, 만번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1971년 4월 이주홍



    ▶︎ 詩


    약속도 예언도 미련도 아니다

    통곡도 저주도 신음도 아니다

    권태에 못이긴 허무가

    서러워 되돌아가는 체념도 아니다


    뜻없이 무겁고 넓은

    무색한 현실의 하늘에다

    내어 던진

    아하 -

    새빨간 핏덩어리다

    태양이다.


    ▶︎ 無題


    돈이 없어서

    단지  이 한가지 이유 때문에

    나는 인간이 아니올시다

    인간 이하의 그 무엇으로 취급하는지

    나도 모르는 사이

    인간 아닌 인간이 되어 버렸읍니다


    돈이 없어

    처자妻子를 굶게 한 못난 녀석이

    돈을 뒤히 여기지 않는 까닭을

    나도 모릅니다


    다만 돈을 벌어야겠는데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바보라 일컬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돈 없이 어떻게 돈을 버는지

    이 신기한 테마 앞에서

    나는 기적을 체득합니다.


    ▶︎ 한 알의 씨 1 (1/6)


    존재를 부인 못한 곳에서

    현실은 탄생하고

    현실은 미래의 장엄한 형상을

    꿈꾼다

    이것은 이미

    한 줄기의 숙명을 시인한

    슬픈 긍정의 형태다


    이것은

    나와 씨알이 지니는 마찬가지

    숙명이다

    어떠한 양식을 표현해야만 할

    어쩔 수 없는 체제 속에 구속당한

    바로 어쩔 수 없는 삶인 것이다

    신비한 가지가지 약속 속에

    그 성벽을 쌓은 과거의 역사만큼

    이 씨알의 형태는 크다


    판도라의 상자 안에서 나온

    그러한 것들이 자신의 세포 속에

    얽매여져 있는 목숨의 한 상징일

    어떤 신화의 낙과落果에서 온 존재이다

    거기에는

    생명의 신비스런 호흡의

    향취香趣가 있다

    존재를 채색하는

    존재의 표정인 색채가 있다

    은밀히 자기의 내부를

    그 누구에게 말하고자 한

    형이상학적인 표현 방법을 포기한

    솔직하고도 대담한 색채가 있다


    물질을 궁극에까지 그리하여

    존재를 실재란 허무에까지

    고백시키려는

    이 참혹慘酷한 나의 손바닥 위에서도

    탈색된 영혼의 나체 앞에서도

    무한한 부끄러움의 역사 끝에

    내뒹굴어 떨어진 한 인간의

    손바닥 위에서도


    자연이 대자연임에 틀림 없는

    창조의 꿈을 간직한 한 알의 씨는

    ⌜있다⌟는 거다

    모순과 더불어 화려한 이 연옥鍊獄

    속에 핀 사유 안에 숨은 적막과

    더불어

    스스로의 숙명을 비웃는

    이 인종忍從의 삶에서 헤엄쳐 나오지

    못한 이 인간의 손바닥 위에서도

    무서울 만치 정확한 미래의

    찬란한 꿈을 지향해 있다는 거다.    



 후기後記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아주 어릴 적의 일이지만,

⎡나에게 묻은 때를 씻어다오.⎦

 그는 나에게 속삭이었다.

 들짐승처럼 거칠고 소박하면서 마음만은 병아리처럼 연약했었다.

 나는 사랑이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순간 그를 에워싸고 있는 숙명 같은 것, 그것도 몹시 슬프고 외로운 그의 운명에 그 순간부터 흐느껴 울었다. 그러나 그의 외로움을 달래어 주지 못했고, 그는 매양 야조野鳥처럼 푸른 하늘, 산들을 마음껏 날으고 싶어 했었다. 그러다가 급기야 사랑하는 철이ᆞ을미를 두고 어디론가 멀리 날아가 버렸지만.

 애초 나는 그이 가슴속에 살고자 원하질 않았었다. 그저 내 속 깊은 곳에 그가 살아 외롭지 않았음이 고마워, 내 청춘을 그와 같이 그의 숙명에 흐느끼며 살아 왔었다.

 내 어느날, 우리가 뿌린 씨 열매 맺으면, 이 조촐한 책자를 안고 낯설지 아니할 그곳으로 찾아가리라.

 그리고 이 자리를 빌어 스승 이주홍 선생님과 그의 벗 김동규씨게 깊은 감사의 뜻을 올린다.


 - 1971년 4월 秋進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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