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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욜 MaYol Jul 25. 2024

人生, 4288

mayol@행화촌 9. 결혼은 행복에의 미신이다. 연애는 종교다.

언젠가 최귀동이 와서 내 앞에 앉아 속옷을 풀며 속삭였다.

'내가 당신을 끌어 안으면 당신도 나를 끌어 안으려오?'

하도 반갑기도 하고 밉기도 해서, '그럼, 내가 당신을 끌어 안고 자면 당신은 그 자식을 잊을 수 있겠소?' 했다.

귀동이 사랑한 그 남자놈이 부럽기도 하고 질투가 생기기도 해서 한 말이었다.

그 말에 최귀동은 아무 대답이 없다가 홀연히 사라졌다.

목이 바싹 마르게 답답한 꿈이었다.

최귀동은 내가 한 때 무척이나 사랑했던 여자다.

비록 나이차이가 무진장 난다고 해도 그게 무슨 대순가.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단 말이다.

하지만 죽고 없는 마당에는 그 숫자가 많이 중요하다.

이미 가고 없는 그녀를 사랑한 죄로 독자들께 소개하고 그만 놔줘야겠다.


최귀동은 1927년 서울생이다.

그녀의 초기시집부터 제 3 시집까지 읽어보면 아현동 인근을 자주 배회한 게 아닌가 싶다.

1945년 일본 도쿄여중을 졸업한 후 귀국해서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그 후에 벨기에 루뱅대학교 종교철학과를 수료하고 독일 퀠른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독 비교문학을 연구했다.

1967년 파리 제4대학교 불문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배재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를 엮임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로서도 보기드문 상당한 재원이었다.

그녀가 1946년 <서울>지誌에 ⎡젤뚜르다의 사랑⎦을 발표하면서 등단했으니 오늘 소개하는 제 2 시집 ⎡인생⎦이 발행된 단기 4288년(1955년)을 계산해보면 그녀가 대충 인생의 어느지점에 서 있을지 유추해 볼 수 있겠다.

그녀의 시는 온통 어떤 이에 대한 사랑으로 채워져 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그래서 더 애절한지 모르겠다.

그녀의 시는 수제비를 떼듯이 뚝뚝 떼어낸 시어들이 정갈하고 편하다.

하지만 절규하듯이 치받는 감정이 물에 뿌린 소금처럼 아주 천천히 녹아 내려 떫기도 하다.

이 시집의 첫 페이지에는 평소 존경하는 은사님에게 드린다는 인삿말이 적혀있고 본문이 시작되자마자 이런 문구가 시선을 사로 잡는다.


결혼結婚은 행복幸福에의 미신迷信이다.연애戀愛는 종교宗敎이다.



목차>


낙화 / 축원 / 천국 / 봄비 / 밤 / 할미꽃 / 새 / 아침 / 곡성 / 낙엽 / 단풍 / 나는 너를 말하려 밤길에 나섰다 / 사랑의 거리 / 별 / 촛불 / 독서 / 님의 무덤을 찾어서 / 연애 / 인생 / 바다 / 가을 / 담배철학 / 비 / 밤가는 행인 / 나의 서재 / 이른봄 / 탄식 / 진달래 / ㅅ갱 / 잘있거라 나의 벗이어 / 뱃사공 / 신의 인형 / 호수 / 나는 돌을 던집니다



        ▶︎ 落花낙화


        곱게 피여난 한가닥의 꽃

        나는 幸福행복이 싫지는 않었읍니다


        戀愛연애는 오래도록 살기를 싫어합니다

        꿈같은 人生이 똑 똑 떠러집니다


        한잎 한잎 지는 이의 시름

        花紋화문이 내 靈魂영혼의 뜰아래 기여이 곱다


      오고 가는 아침 저녁

      당신의 발자욱에 밟혀

      꽃잎 그대로

      지는대로 부스러집니다


      외로움이 울지못해

      소리없이 집니다


   ▶︎ 나는 너를 말하러 밤길에 나섰다


      미러도 아니 밀리는

      너 안에 끌려

        

      오-직 사랑 위해

      밤에 터지는

      인생의 울음 소리

      나는 너를 말하려

      밤길에 나섰다


      가 없이

      밤길에

      그 시간을 물고

      기다리는 별을 잃어가며

      다가오는 어둠 벽에

      나를 읏께고 간다


      이길에 서서

      흐르는 나의 눈물

      자리를 고르고 비켜스며

      누렁 잎 위에

      쉬는 몸부림


      꺼지기 까지

      달레기 까지

      나는 너를 말하려

      밤길에 나섰다


   ▶︎ 인생人生


      멋 모르고

      찾으러 나섰다가

      온 하루를

      찾다만 해가 저물다



후기後記>


당신의 시는 언제부터 어떻게되서

써 놓은 것입니까?

또한 시의 습작은 얼마 동안이나 하셨는지요......

X X X

호... 호...

물으시는 당신의 말과는 너무나 거리가 있읍니다만......

당신은 남을 괴롭히는 사랑의 거지였군요.

남의 사랑만을 받어 먹기만 하는

뻔뻔스런 거지였군요.

원래 거지는 구속을 싫여하니까요.

기다리기도 싫여 하고요.

X X X

나는 시를 쓰지 않읍니다.

오직 사랑의 지주地主의 고용인으로써 노동勞動한 만큼의

시를 밥 먹으며 시속에 사는 나의 생활과 개성을 삶에 겨워 나타낸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읍니다.

그러므로 시시 각각으로 기분이 좋으면 노동이 불어 시를 잘 먹고 불안하면 그만큼 나의 생활력도 불안하여 입맛이 쓰고 시맛도 쓰고하기 때문에 이 불안을 없에고는 다 시겠읍니다.

그런데 나는 시보다 불안이 더 많은 것이 나의 생활과 개성의 불안이 올시다.

사람들이 먹고 싶고 입고 싶은 것을 찾어 다니듯이 나는 시 먹거리가 다 떨어지면 나의 사는 자리를 또 뜨고 뜨고 합니다.

나는 시를 먹어야만 나의 삶이 건강하기에

이러한 나의 살림사리므로 짐을 싫여하거니와 또한 필ㅇ조차 따질 필요가 없드군요.

시 먹거리가 짐이 될만하게 귀찮을 때는 세상에 하늘에 땅에 날리며 뿌려 버립니다.

이상하게도

만사 설명적인 것이 싫여질때는 무척 불행 했읍니다.

일일이 설명을 해 갈만하게 누긋한 개성도 못 되거니와 소설거리 만한 오랜 안전적인 환경도 못 가지기에...


나의 시 습작기와 습작은

일생 연애戀愛하는 동안

연애 편지 올시다......


나의 귀가 멀고 눈이 감기고 심장이 차지도록까지 습작은 계속됩니다.

지금도 그 계속의 도중이 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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