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ol@골계전 37. 마음도 몸도 곯지 않고 사는 법
어떤 날 문득, 나와는 아무도 상관없는 어떤 이를 만나기 위해 신발을 신어 본 적이 있나.
사진을 정리하다가, 내 평생 몇 번 없었던, 그런 날이 생각난다.
오래전, 아침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펼쳐 들었는데 사회면에 작은 기사 하나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밥 퍼주는 스님]
한 스님이 십수 년간 공원에서 노인들을 위해 밥을 퍼주고 있다는 짤막한 소식이었다. 요일을 보니 내일이었다.
별 일도 아닌데 마음이 설레어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눈만 꿈뻑였다. 필름 수십 통과 카메라를 가방에 챙겨놓고 다시 누웠지만 여전히 편하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어차피 놓쳐버린 잠, 차에 시동을 걸었다. 초가을의 습기가 새벽공기를 가득 채워서 스산했다. 유리창에 맺힌 이슬을 와이퍼로 걷어내고 시내를 빠져나와 고속도로에 올라탔다.
대전을 지날 때는 안개가 자욱하게 껴서 앞이 보이지 않았다. 드문드문 차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한결같이 비상깜빡이를 켜고 달렸다. 마치 나비들이 구름 속을 펄럭펄럭 날아다니는 것처럼 아름답고 몽환적인 장면이었다. 그렇게 네 시간을 넘게 달려 도착한 곳은 대구의 달성공원이었다.
누군가를 위해 매주 한 번씩 밥을 퍼주고 있다는 스님을 만나보기 위해 그 먼 길을 달려가다니, 지금으로서는 쉽지 않은 청춘이었다. 스님을 보러 왔다는 사람이 어디 한 두 명일까. 그저 먼발치에서 보고 돌아올 수도 있고 문전박대를 당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런 난처함을 견딜 수 있을 만큼 건강한 심장을 가지고 있었달밖에.
공원에 도착해 주차를 하고는 카메라를 챙겨 공원으로 들어갔다.
그때가 늦봄이었나 초가을이었나 헷갈렸었는데 사진을 찾고 보니 초가을이 분명하다. 카메라도 35미리가 아닌 중형카메라를 가지고 갔었고. 아무튼, 낙엽이 조금씩 흩어지고 있었고 이른 시간이라 노인 몇몇은 바닥이나 벤치에 신문지를 덮은 채 자고 있었다. 나는 노인들이 자고 있는 언덕을 올라 마당이 잘 내려 보이는 전망 좋은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배가 고파왔다. 점심때가 되려면 아직도 두어 시간이 더 남아있었다. 식곤증도 아니고 춘곤증도 아닌데 따가운 가을 햇살에 눈이 자꾸만 아렸다.
"어허, 이제 일나라, 고마. 해가 중천이다 아이가."
할아버지 한 분이 나를 깨우며 덮고 있던 겉옷을 확 걷어냈다.
"어머머머, 할아버지. 왜 제 옷을 가져가세욧!!"
화들짝 놀라 일어나 손을 뻗자 할아버지는 낚아챈 옷을 둘둘 말며 정색을 하셨다.
"아이고마야. 이거 내 옷 아이가. 추블까봐 덮어두띠만 고맙단 소리는 안하고. 대따 마. 이 문디자슥. 밥 안 처묵끼가."
할아버지는 옷을 들고 언덕아래 마당으로 내려가셨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공원마당에 빙 둘러 줄을 선 노인들과 노숙자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마당 한가운데에서는 커다란 가마솥에서 밥을 퍼주는 불자와 그 옆에서 국을 퍼주는 불자 그리고 반찬을 담아주는 불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그 사이를 오가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까까중이 한 분 있었다. 지면에 소개된 그분이었다.
"거, 그케 스면 안된다고 몇 번을 말해요. 이케! 그래, 이케 서야 오래 안 기달고 묵을끼라고 몇 번을 말해!"
봉사를 하시는 분인지 협박을 하시는 분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카랑카랑한 목소리였다. 목청에 효과가 있었는지 노인들과 노숙자들이 스님의 명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줄을 섰다.
내가 들고 간 카메라는 80미리 고정 렌즈여서 멀리 있는 스님과 불자들 그리고 줄을 선 노인들을 제대로 담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가까이 다가서기도 어려웠다. 스님에게 욕이나 먹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언덕 주변을 서성이며 밥과 국을 받아와 자리를 틀고 앉은 노인들을 찍기 시작했다.
어떤 노인들은 여러 명이 모여 먹었고 또 어떤 노인들은 혼자서 밥을 먹었다. 대부분이 홀로 된 노인 들이었겠지만 그들 사이에도 외톨이들이 눈에 띄었다. 개중에는 부부로 보이는 노인들도 있었다.
사진을 찍느라 배고픔을 잊고 있다가 필름을 갈아 끼울 때는 손이 떨렸다. 어느새 밥줄이 없어지고 불자들은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어이~ 여보소, 이리 내리와봐요!"
밥 퍼주는 스님이 내가 앉은 벤치를 향해 손을 흔드는데 나를 부르리라고는 생각지 못하고 필름만 끼우고 있었다. 계속해서 스님의 목소리가 들려와 검지를 들어 내 얼굴을 가리키며 복화술을 했다.
'저요?'
내 입모양을 본 스님이 웃으며 대답을 했다.
"끄래. 당신!"
엉덩이를 털며 마당으로 내려갔다.
"밥 묵으러 왔으면 밥을 묵어야지 거기 왜 글고 있는건데!"
내 몰골이 영 시원찮아 보인모양이었다. 하긴 세수도 안 하고 새벽 세시 경에 출발해 아침 7시쯤 도착해서 낙엽과 함께 벤치에서 자고 일어났으니 그게 노숙자 아니면 뭐겠나. 더구나 배가 고파서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돌도 씹어 먹을 나이에 한 끼나 굶었으니.
"불자님, 뭐 남는 거 좀 주이소. 이 젊은이 곧 쓰러지게 생겼어. 하하."
노인들 사이에 앉아 허겁지겁 밥을 먹고 잔반을 처리하고 나자 스님이 다가오셨다. 이곳에 온 이야기를 듣더니 다시 한번 크게 웃으셨다.
"참 희한한 젊은이네. 이름하고 태어난 시랑 여기에 적어주소. 전화번호랑."
스님과 헤어져 다시 서울로 돌아올 때는 주말이라 고속도로가 주차장이나 다름없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지만 여전히 차 안에 갇혀있었다. 그리고 다시 배가 고팠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스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어, 마욜씨. 뭐 하고 있음 그냥 하고 살아도 대꾸마. 역마살이 쫌 낏는데 별 일 아니고, 밥 걱정은 없네. 다음에 내려올 거면 미리 줄 서서 먹고 기왕 묵을꺼 때 놓치지 말고 묵어야 곯지 않는데이."
밥 퍼주는 스님과의 인연은 여기까지다.
다시 찾아온 주말, 엄마를 모시고 잠실 제2 롯데월드를 지나 성북동 길상사까지 드라이브를 했다. 절정에 달한 단풍을 보시던 엄마는 뒷좌석에 앉아 콧노래를 부르셨다.
"헤어지지 말자고 굳은 약속을 했건만... 그리워 내가 왔단다..."
무슨 노래인지는 모르겠지만 엄마의 노래소리를 듣고 있으니 복잡한 생각에 짙은 선글라스 안으로 습기가 차오르며 달성공원의 스님 말씀이 떠 올랐다.
'때 놓치지 말고 먹어야 곯지 않는데이'
때 놓치지 말아야 할 게 밥 뿐은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