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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Aug 25. 2020

인연 질량 보존의 법칙

한 사람이 가면, 한 사람이 온다.

사람에게 지치는 날들이 있다.


나는 어떤 관계든 기대치를 어떻게 정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보통은 내가 100을 주면 상대방이 100을 돌려 주기를 바라게 된다. 내가 이 정도 했으니, 너도 이 정도는 하겠지, 하고 바라는 기브 앤 테이크가 사회의 룰이기도 하고, 그만큼을 준 사람이 가질 수밖에 없는 기대치니까. 그런데 그 기대치를 상대방이 맞춰주지 않게 되면 지치고 또 실망하게 되는 것이다.


어렸을 때 나는 아주 운이 좋았다. 내가 100을 주지 않아도, 100보다 더 넘치게 나에게 무언가를 주는 사람들 속에서 자랐다. 3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지만, 부모님은 넘치는 사랑과 관심을 주셨다. 노력하지 않아도 친구들이 늘 곁에 있었다. 그런데 살다 보니 100을 주고도 100을 받지 못하는 관계가 있다. 내가 아주 열심히 노력해도 인연이 끝나기도 한다. 내가 100이라는 관심과 사랑을 줘도, 10밖에 돌아오지 않는 관계도 있다. 항상 넘치게 받아왔던 것들과 다른 인연의 모습에 적응하지 못했던 때가 있다. 기대한 만큼이 돌아오지 않았을 때의 실망감과 허탈함이 남는다. 무엇보다, 삶에서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나를 힘들게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언젠가 연극에서 들었던 대사를 생각한다.



"Somebody leaves my life, but somebody comes to my life"

나와 전혀 다른 상황의 전혀 다른 내용의 연극이었는데, 이 대사만은 또렷이 남았다. 책 속의 한 구절이 마음에 콕 박힌 것처럼, 그 대사가 나에게 와서 콕 박혔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누군가는 늘 내 삶을 떠나고 있었지만, 누군가는 늘 내 삶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누군가가 떠난 자리를 늘 다른 누군가가 채워주었다. 우정이든 사랑이든, 존경의 대상이든 그게 무엇이든 간에, 누군가에게 실망했던 그만큼을, 누군가는 아낌없이 다가와 채워주고 있었다.


어쩌면 세상에 내가 준 만큼을 온전히 돌려받는 관계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누군가에게 제대로 받지 못한 그만큼을 다른 누군가가 나에게 넘치게 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누군가에게 서글플 만큼 돌려받지 못하는 무언가를 주고 있는데, 그 사람은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내 마음을 쏟기도 한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받았던 상처를 나도 누군가에게 주고 있었음을, 누군가에게 받았던 노력을 나도 누군가에게 다른 방식으로 되돌려 주고 있었음을, 나는 어느 순간 알게 된 것 같다. 


그 때의 깨달음을 나는 "인연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고 어느 팀에나, 어느 조직에나 또라이는 동량으로 존재한다는 그 모두가 아는 법칙처럼. 나의 삶을 채워주는 인연들은 언제나 같은 무게로 나를 지켜주고 받쳐 준다. 하나의 인연이 떠나갔다고, 나의 노력이 인연으로 보상받지 못했다고 좌절하지 않을 수 있는 나만의 법칙이다.


물론 이 법칙이 있다고 인연의 끝이 슬프지 않은 건 아니다. 여전히 나는 끝나버린 인연에 슬퍼하고, 응답받지 못하는 나의 노력에 좌절한다. 하지만, 이 슬픔과 좌절의 끝에는 더 좋은 인연이 기다리고 있음을 안다. 내가 지치지 않아도 될 만큼의 소중한 인연들이 내 삶을 채우고 있다는 것이 나를 든든하게 지켜 준다. 아무리 상처 줘봐라. 나는 잘 이겨낼 테니. 하고 버틸 수 있는 힘이 되는 것. 그 것이 내가 발견한 나만의 인연 질량 보존의 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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