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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아 Jul 18. 2024

호주에서 만난 중국, 인도영어

호주에 온 지 5년 6개월이 되는 날이다.


그동안을 돌아보며,

나에게 가장 힘겨웠던 일이지만,

가장 잘한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중국인, 인도인 친구들을 만든 것이라 대답할 것이다.





디자인 대학원을 진학하기로 결정하곤, 같은 대학교에서 운영하는 어학원에 등록을 했다. 유학원에서는 그곳에 중국인들이 많음을 미리 경고했었다. 하지만, 수백 명의 학생 중 나만 한국인일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가끔 중동에서 온 친구들이 있었지만, 그들이 중간에 낙오되면서 결국 우리 반엔 나를 빼곤 모두가 중국인들이었다.


그들과 대화를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내가 그동안 배워왔던 영어가 미국영어였다는 것도 그제야 알게 되었다. 중국인들의 영어는 중국 특유의 발음과 중국어의 악센트가 섞이면서 나에게는 중국어처럼 들렸다. 내가 그들을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그들 역시 나의 한국식 영어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대화는 항상 서로 물음표만 가득한 대화들로 이어졌고, 그때의 궁금증은 끝내 풀지 못하고 대화는 허무하게 끝나곤 했었다.


그렇게 궁금증 속의 대화를 몇 달 동안 하게 되면서, 나는 그들의 악센트에 익숙해졌고 그들의 영어가 조금씩 들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도저히 알아듣지 못하는 단어는 채팅창으로 소통하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러면서 우리는 우정이라는 것을 쌓게 되었고,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며 대화하는 것을 즐기기 시작했다.  


나는 나보다 20살 어린 친구들과 친구가 되었고, 그들끼리 돌려보는 족보들도 건네받을 수 있었다. 아니, 나 혼자 족보를 못 보는 것이 안타까웠는지 그들이 먼저 보내줬다. 거기엔 정말 많은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그렇게 9개월의 과정을 마치고, 아이엘츠 아카데믹 6.5 점수를 대체하는 영어점수를 어학원 졸업시험에서 받고, 대학원에 진학할 수 있는 패스권을 받았다.





디자인 대학원이 시작될 때는 코비드 락다운으로 집에 꼼짝없이 갇혀있어야 했을 때였다. 모든 수업은 온라인으로 바뀌었고, 모든 학생들은 화면 속으로 숨어버렸다. 그들이 서양인들인지, 중국인들인지, 중동인들인지는 그들의 이름으로만 확인할 수 있었다. 가끔은 중국인들이 영어이름을 사용했기에, 그들이 오디오를 켜고 말을 하지 않는 이상 그들이 어디 나라에서 온 친구들인지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대학원 수업을 듣는 학생 중, 한국인은 여전히 나 혼자. 그곳에서 만난 새로운 중국인 친구들은 나와 대화하기를 꺼려했다. 나와 토론상대가 되거나 과제 파트너가 되면 영어를 써야 하니, 나와 파트너가 되면 스크린뿐만 아니라 오디오를 켜지 않는 친구들도 많았다. 3시간 수업동안 4명의 참여자가 있는 소그룹에서 아무도 말하는 이가 없었다. 내가 Hello로 인사를 건네면, 채팅창으로 hello 대답이 돌아오곤 다시 침묵 속으로 들어갔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결정한 건 인도인들과 파트너가 되자. 4명의 그룹과제를 해야 할 때, 나는 인도인들 두 명이 모인 그룹에 나도 조인해도 되겠냐고 물어봤다. 그리고 처음 맞이한 그들과의 첫 토론은 정말 대혼란 그 자체였다. 어학원에서 듣던 중국인들의 영어와는 또 다른 차원이었다. 인도식 발음은 난생처음 듣는 데다가, 그들은 속사포로 영어를 말할 수 있는 원어민들이었다.


인도인들의 영어에 익숙해지는 데는 2년이 걸렸다. 인도인 친구들이 많이 있지 않았을뿐더러, 일단 그들의 발음은 듣고 바로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2년 동안 꾸준하게 듣다 보니, 나의 인도영어 리스닝 실력이 나아진 듯했다. 이는 그들이 사용하는 발음들의 특징들을 이해하면서부터였다.





호주에서, 매일의 일상에서 가장 많이 듣는 영어는 중국인들의 영어이다. 어딜 가든 웬만한 상점들은 중국인들이 있었기에, 그들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가끔 고객센터에 전화를 하면, 특히 인터넷이나 핸드폰 문제가 생겨서 전화를 걸면 90% 이상이 인도인들이다. 처음 인도인과 전화로 통화를 하게 되었을 때, 나는 그때 알아차렸다. 내가 인도인들의 영어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이제 듣고 있구나. 이 또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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