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주 가는 카페는 실내와 실외 공간이 함께 있는 곳이다. 나는 가능하면 바깥을 바라볼 수 있는 자리에 앉는다. 그곳에는 토토로 만화에 나오는 거대한 나무를 연상시키는 동그란 나무가 있어, 나 스스로를 순식간에 토토로의 상상의 세계로 데려갈 수도 있고, 옆 테이블의 대화가 잘 들려오면 나를 다시 현실 세계, 호주로 돌려놓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 햇빛과 햇살에 대한 글을 읽은 날에는 유난히도 햇빛이 강했다. 내 속눈썹 위에도 햇살이 내려앉은 듯 '눈부시게' 반짝거려서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가끔은 눈을 감고 있기도 했고, 가끔은 인상을 쓰고 앉아 글을 쓰기도 했다. 점점 이마가 뜨거워짐을 느꼈지만 참기로 했다.
그러다가 내 눈에 띈 그림자. 이 또한 책 속에 나왔던 내용인데, 이 날따라 그림자가 유난히 크고 진하게 보였다. 나는 호기심에 이끌려 이리저리 컵을 돌려보고, 포크를 돌려보며 그림자의 변화를 관찰했다. 빵 부스러기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지만, 그것마저도 흥미롭게 느껴졌다. 나는 한참을 햇빛과 그림자, 도자기들과 나의 마음과 놀고 있었다.
잠시 구름속에 숨어있던 햇빛이 나타나면 컵의 그림자도 순식간에 나타났다. 내가 컵을 돌릴때마다 그림자는 다른 모양으로 변했고, 그 변화를 지켜보며 나는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주변의 소음은 점차 사라지고, 오직 나와 햇빛, 그림자만이 존재하는 듯한 순간이었다. 이 작은 놀이 속에서 나는 현실과 상상의 경계에서 자유롭게 떠돌며,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어린아이의 호기심.
그런 내모습이 쓸쓸해 보였을까? 내 앞자리 의자 위에 작은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살포시 앉았다. 나는 그 새가 신기해서 쳐다봤고, 바로 새와 눈이 마주쳤다. 새도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고개를 두세 번 갸우뚱거렸다. 마치 "너 지금 뭐 하는 중이야?"라고 묻는 듯한 표정이었다.
내가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을 시간까지 여유롭게 나에게 주고는, 바닥으로 내려가 흩어진 빵 부스러기들을 부리로 쪼아 먹기 시작했다. 부스러기를 다 먹고 나서 어딘가로 날아갔다가,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않는 틈을 타 다시 나타났다. 그렇게 여러 번 먹이를 먹고 날아가기를 반복하며, 한참 동안 내 주위를 돌며 나와 함께해 주었다.
사실, 나는 원래 새를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 아들이 어릴 때 스쿠터를 타다가 아기를 보호하는 어미 새가 갑자기 쫓아오는 바람에 큰 공포를 느낀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 아들은 새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되었고, 나 역시 새를 가까이하는 것이 편치 않았다. 나는 공포까지는 아니지만, 새를 그리 예쁘게 보지 않았다.《월든》에 나오는 새 이야기를 읽으면서 새와 가까워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만, 그저 막연한 바람일 뿐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새가 직접 나를 찾아와 주니 더 신기하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우연의 일치일 수 있지만, 그 순간은 나에게 매우 소중한 경험으로 남았다. 새가 나를 찾아와 준 덕분에 나는 잠시나마 새와 교감을 나눌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새를 좋아하게 되었다. 사람의 마음이 한순간에 이렇게도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이제 나는 새를 보며 미소 지을 수 있게 되었고, 그 작은 생명체와의 만남이 내 일상에 큰 변화를 가져다줄 것 같다.
이제 이 카페에 오면,
토토로도 만날 수 있고,
마르쿠스 아울렐리우스가 이야기하는 햇빛과 햇살도 만날 수 있고,
《월든》속의 새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책을 읽으며, 나의 삶이 이렇게 바뀌고 있다.
이날을 기록해놓고 싶었다.
2024년 7월 17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햇빛은 쏟아져 내리는 것으로 보이고, 실제로 사방으로 쏟아지기는 하지만, 쏟아져서 없어져 버리는 것은 아니다. 그 쏟아짐은 확장이기 때문이다. 햇빛은 햇살이라 불리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즉, 햇빛은 공간 속에서 확장되어 나가는 선이다. 햇빛이 좁은 틈새를 통해 어두운 방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면, 햇살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햇살은 직선으로 나아가며 확장되다가, 공기가 뚫고 지나가는 것을 가로막는 단단한 물체를 만나는 경우에는 굴절되는데, 이때에는 그 지점에서 멈춰 서서 방향을 트는 것일 뿐이고, 억지로 뚫고 나아가려다가 미끄러지거나 추락하는 것이 아니다.
데이비드 헨리 소로 <월든>
녀석들(자고새 새끼들)의 크고 맑고 차분한 눈동자에 담긴 조숙하면서도 천진한 표정은 무척 인상적이다. 그 눈동자에는 세상의 모든 지혜가 어려 있는 것 같다. 유년기의 순수함뿐 아니라 경험을 통해 명료해진 지혜까지 담긴 듯하다. 그런 눈동자는 태어날 때 생겨난 것이 아니다. 눈동자에 비친 하늘과 함께 시작되었다. 숲은 그런 보석을 두 번 다시 잉태하지 않는다. 나그네는 흔히 그처럼 맑은 샘을 주의 깊게 살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