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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아 Jan 12. 2024

빛, 에머슨, 나

메이페이퍼 ㅣ 나의 삶은 동화다 ㅣ 10

꿈, 빛, 칸딘스키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Copyright 2024. 정근아 all rights reserved.


전날 읽었던 책의 문구 하나가 떠올랐다. 


“광선은 화가 중의 제일가는 화가이다”


에머슨의 수상록에 나오는 문구다. Ebook으로 다운을 받아놓고서는, 어렵다 하니 언젠가 읽을 수 있을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목차라도 살펴볼 목적으로 책을 보다가 눈에 띈, 미에 대한 챕터를 읽고 잠들었었다. 그런데 그다음 날 새벽에 천장에서 삼각형의 빛을 발견하다니! 그것도 칸딘스키의 그림과 비슷한!


다시 책을 펼쳐 자세히 읽어봤다. 좀 더 이해해보려 했다. 


“(중략) 눈은 예술가중의 예술가이다. 그 구조와 광선의 법칙의 상호작용에 의해 원근법이 만들어진다. (중략) 이 때문에 개개의 물건은 미천하고 감동을 줄 만한 것이 못 되는 경우에도, 이들 물건이 구성하는 풍경은 혼연히 균제를 이루는 것이다. 


그리고 눈이 가장 우수한 구성자인 것과 같이 광선은 화가 중의 제일가는 화가이다.


아무리 초라한 물상이라도 강렬한 빛을 받아서 아름다워지지 않는 것은 없다. 그리고 강렬한 광선이 오관에 주는 자극과, 그것이 공간과 시간만큼이나 갖고 있는 일종의 무한성은 모든 물상을 화려하게 만든다. 시체에조차 그 독자적인 미가 있는 것이다”

에머슨(주1)


책을 읽고 잤기에 새벽에 발견한 삼각형의 빛이 나에게 더 특별했는지, 아니면, 삼각형의 빛을 발견해서 그전에 읽은 에머슨의 책이 특별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삼각형의 빛과 에머슨의 글은 나에게 진짜 하나의 광선과도 같았다. 오글거리는 표현일 수도 있지만, 아무것도 아닌 나에게 강력한 의미가 담긴 빛이 나를 비추면서 내 안의 무엇인가가 조금씩 빛을 발화하고 있는 느낌을 며칠째 받고 있다. 나만의 빛이 내 안에서 성장하고 아름다워지는 것이 느껴진다. 


마치 내가 그렸던 그림과도 같다. 

Copyright 2024. 정근아 all rights reserved.


오랫동안 식어있던 그림에 대한 관심, 열정이 다시 자극을 받은 듯하다. 단순한 그림이나, 끄적거리며 그리는 일러스트가 아닌, 좀 더 의미가 있고, 좀 더 장기적인 계획을 가진 화가로서 자리 잡고 싶은 마음이 자라고 있는 듯하다.


좀 더 에머슨의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


첫째, 단순히 자연의 물상을 지각하는 것만도 기쁨이다. 

주의 깊은 사람의 눈으로 보면, 1년의 모든 순간이 각각 특유의 미를 지니고 있다. (중략) 예민한 관찰자에게 있어서는 하루의 시간시간을 그것으로 알아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주1)


맞다. 사실 나는 섬세한 관찰자라 할 수 있다. 오랫동안 그림 그리는 법을 배우고 익히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 나의 눈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시시각각 다양한 시각으로 관찰할 수 있도록 잘 발달된 듯하다. 


소묘를 통해, 평면 입체를 배우고, 

수채화를 통해 색상을 배우고, 

한국화를 통해 여백을 배우고, 

의상디자인을 통해 텍스쳐(질감)를 배우고, 

패션쇼를 통해 빛을 배우고, 

북디자인을 통해 부분과 전체를 배우고, 

디자인을 통해 이 모든 것을 어떻게 표현하는지도 배웠다. 


이 모든 것을 지식으로, 책으로 배운 것이 아니라 나의 눈을 통해 직접 배우고, 내 눈으로 익혔다는 이야기다. 각각의 배움은 제각각인 것 같았지만, 모두 이어지는 예술의 영역이었고, 나의 눈을 다양한 방법으로 자극시키고, 적응시키고, 발달시킨 것이라 볼 수 있다. 


한편, 호주에 와서, 글을 쓰면서 더욱더 자연에 집중하다 보니, 하루하루 자연의 변화까지 눈으로 익히고 있는 중이다. 


둘째, 한층 고상한 요소, 즉 영적 요소의 존재가 미의 완성에는 불가결하다.

우리가 어떠한 나약한 생각 없이 사랑할 수 있는 고상하고 신성한 미는, 인간의 의지와 결합될 때 발견된다. 미란 덕에 붙이는 표딱지이다. 모든 자연스러운 행위는 아름답다. (중략) 자연의 미는 언제나 공기처럼 스며들어 위대한 행동을 감싼다. (중략) 자연은 발을 뻗쳐 인간을 포옹하고자 한다. 다만 그러는 데엔 인간의 사정이 자연과 동등하게 위대할 필요가 있다. (중략) 유덕한 사람은 자연의 작용과 합체하여, 눈에 보이는 세계의 중심인물이 된다.” (주1) 


나는, 나 자신을 돌아봤을 때, 아직 새싹으로도 싹트지 않은 씨앗이기에, 그 씨앗을 더욱 튼실하게 키우기 위해, 현재는 땅의 기운을 받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 내가 자랄 방향을 정하고 땅을 뚫고 나가, 나만의 꽃이 발화될 때까지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용감한 행동을 하고자 한다. 신성한 미는 나의 의지와 결합될 때 발견된다 했으니 말이다.


셋째, 세계의 미를 관찰할 때 또 한 면이 있다. 즉, 그것이 지적 대상이 될 때가 그것이다. (중략) 

미에 대한 이러한 애호심은 곧 취미이다. 남달리 이런 미에 대한 애호심을 극히 과도하게 갖게 되면, 다만 그것을 찬탄하는 데 만족지 않고 그것을 새로운 형식으로 구현코자 하는 사람도 있다. 이 미의 창조가 곧 예술이다.” (주1)


나는, 예술이란 것을 해본 적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있다! 있다! 디자인 대학원에서 작업했던 프로젝트들. 겉으로 보기엔 상업적인 디자인을 만든 것이라 볼 수 있지만, 2년 동안 내가 작업한 디자인들 안에는 내가 있었고, 나의 철학이 들어갔다. 어쩌면, 디자인을 하면서 나의 철학이 생겼다고도 할 수 있다. 


나는 그 당시 과도하게 디자인을 좋아했었고, 나의 생각을 남들과 다른 방법으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었다. 나는 디자인 프로그램으로 제품 자체를 만드는 것보다,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표출하는데 더 매력을 느꼈었다. 아마도 나는 창조라는 것에 더 흥미가 있는 듯하다. 



철학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존재하는 것을 발견하기 위해
자신이 원래 자연스럽게 안람을 누렸던 현상세계를 떠나야 한다.
- 한나 아렌트 -



나는 철학책을 읽기 시작한 지 이제 겨우 한 달이 조금 넘어간다. 이제야 조금씩 이해할 수 있는 초보 독서가라 할 수 있다. 그러하기에 아직 내 그림이나 글에 깊은 철학을 담아내지는 못하지만, 나는 나만의 철학이 있다. 정확하게 말로, 글로 쓰라고 하면 불가능하지만, 내가 살아오면서 다양한 역할을 하며 경험한 것들과 미술, 디자인을 배우는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은 어떠한 철학책만큼이나 깊이 있는 나의 성찰의 과정을 거쳤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과 함께 내가 아름다운 것을 남들보다 잘 캐취 하는 능력은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에머슨의 책 덕분에 알게 되었다, 내가 다른 직업이 아닌 그림을 그리고, 디자인을 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하게 됐다.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이러한 우연의 일치 같은 강력한 자극을 나는 올해 나의 발전을 위한 새로운 도약으로 응용해볼까 한다. 


먼저 나는 실험을 해보려 한다. 내가 읽고 있는 책에서 깨우치는 것들을, 새벽독서모임에서 깨닫는 것들을, 내 그림에 담아보고, 나의 그림은 얼마나 발전해 나가는지 기록해 보기로 했다. 


새벽이 되고, 해가 뜨기 전의 그 오묘함의 밝음을 그림으로 그리고, 에머슨이 말하는 미에 대해 집중해 보기로 했다. 


Day 1

Copyright 2024. 정근아 all rights reserved.


Day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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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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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4







(주1) 에머슨의 수상록/ 서문문고 / 랠프 월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은 미국의 시인이자 사상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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