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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아 Jan 05. 2024

브런치 함정에 빠졌다.

메이페이퍼 ㅣ 나의 삶은 동화다 ㅣ 08

글이 안 써진다!

하얀 백지를 보며 멍~

글감도 떠오르지 않고,

시간만 재깍재깍 흘러간다. 

마음이 급해져 불안하다. 

어쩌지. 

어제 놀러 다니지 말걸, 

뒤늦은 후회를 한다.


새해를 맞이해서, 1월 1일에 쓴 글. 용띠가 용의 해를 만났으니 도약하겠다고, 그런 다짐글을 썼는데, 도약은커녕 그다음 날부터 몰락 중이다. 급몰락이다. 아니 그 당일날부터였을 것이다. 그날 난 새벽 5시에 글을 발행하고, 새벽독서모임을 마친 후, 홀가분한 마음으로 가족들과 새해 첫날 첫 여행을 시도했다. 국립공원에 가서 신나게 자연을 느끼며 놀다 왔다. 


그리고 피곤해서 글을 쓰지 않고 잠들었다. 물론 밤 2시에 일어나 글을 완성했지만, 멍하니 책상 앞에 몇 분을 앉아 있었다. 각 잡고 앉아만 있다. 모니터를 바라보며, 자판에 손을 얹고, 한 글자도 쓰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예전에 써오던 글을 하나 찾아 글을 겨우 이어갔다. 끙끙끙. 힘겨웠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사실 나는 신나서 글을 쓰던 사람이었다. 하루종일 글 쓰는 게 재미나서 아이들 밥 주는 시간도 잊고, 빨래도 깜박하고, 일상이 뒷전이 되던 그런 날도 있었다. 


모든 순간순간이 글감이었다. 내 눈앞에 보이는 것이면 무엇이든 바로바로 글을 쓸 수 있을 만큼 쉽게 글소재를 찾았었다. 아니 소재가 나에게 와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영감을 받으면, 엉터리 글솜씨로 휘리릭휘리릭 일단 생각을 기록했다. 하루종일 떠오르는 글감으로 글을 쓰고 또 쓰고… 신나서 글을 썼다. 


5년 동안 하지 못한 이야기를 쏟아내느라, 매일매일 받는 영감들을 기록하느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하는 글감들을 써놓느라 모니터 앞을 떠나지 못했었다. 밥 달라고 애원하는 아들에게 “잠깐만~ 조금만~ 조금만 더~” 결국 “배고파~~” 엉엉 우는 아들을 안아주며, 아들밥을 하기 위해 글쓰기를 멈췄던 적도 있다. 주객전도였다.  


불과. 몇 주 전까지 그랬다. 

브런치 작가가 되기 전까지 그랬다.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한 번에 통과했다는 기쁨에 첫 성장일기를 신나게 쓰고, 다음날 오랫동안 정성 들여 썼던 글을 첫 발행글로 올리고, 그때부터 새로 쓰기 시작한 글은 나에겐 도전이었다. 부담감이 가장 먼저 찾아왔고, 시간제약이라는 것이 자리 잡았고, 발행날짜가 정해지니 의무감이 보태졌다. 


그리고 요즘엔 … 매일매일 나를 꼬시는 작은 악마가 자꾸 찾아온다. 


잠깐 외출하는 건 괜찮아~. 

애들 방학이니까 애들이랑 같이 놀아야지. 

집에만 있으면 오락만 하고 유튜브만 보는데, 

밖에 다녀와도 되지 않을까? 

너도 매일 집에서 밥 하기 힘드니까,

오늘은 외식하고 올래? 

피곤하겠다. 낮잠이라도 자고 해. 


지금의 악마는 조그마하지만 점점 커가는 게 느껴진다. 


또한 요즘 나는 부끄럽다. 사실 내 모습을 남에게 보이는 것이 부끄러워 SNS도 하지 않는데, 글을 써서 대중에게 공개한다는 것은 진짜, 내 생각까지 보이는 것이기에 더 신경이 많이 쓰인다. 그러니 나 스스로 내 글을 검열하여 내보내기 시작했다. 


이건 솔직하지 않아. 

삭제. 

이건 너무 솔직해. 

삭제. 

이건 너무 가식적이야. 

삭제. 

이건 너무 무식해 보여. 

삭제. 

이건 너무 재미없어.

삭제. 

이건 너무 도를 넘어섰어. 

삭제. 


내 앞에 남겨진 글은 없다.

그래서 계속해서 하얀 백지만을 마주하고 앉아 있는 거다.  


이제 브런치에 글 쓰고, 발행하는 것은 조금씩 습관이 잡히고 있다. 하지만, 겨우겨우 써놓은 글들이, 수많은 검열로 내 솔직함이 삭제된 글이, 이제는 왠지 낯설게 느껴진다. 내 글 같지 않다. 그래서 다시 내 글이 부끄러워졌다.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브런치 작가”의 대가는 혹독했다. 

글 쓰는 재미를 뺏어갔다. 


그러다 마주한 글. 


“ 우리가 아름다운 나날을 보내지 못하고 있다고 자신을 비난하며 스스로 기쁨을 망쳐놓고 있다면 이런 아름다운 오후, 천상의 오후는 생겨나지 않는다. 자신의 가련한 처지나 잘못한 행동 따위를 생각한다면 나를 찾아온 이런 영예로운 나날에서 기쁨을 누리기 어려워진다. 젊음의 시절이 지나고 나면 나 자신에 대한 지식이 나의 만족을 망쳐놓는 불순물이 되기 쉽다. 나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온전히 끊을 수만 있다면, 나의 나날들이 훨씬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어떤 한적한 시골집에서 즐거운 나날들을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은 지금 이 시절이 내가 그런 삶을 선택하기에 가장 좋은 기회일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나의 평범한 사고, 지루한 습관을 그곳으로 가져가 그곳 풍경을 망쳐놓고 싶지는 않다. 내면에서 아름다운 풍경이 실현되지 못한다면 밖의 풍경이 아무리 아름다운들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

소로의 일기 (주1)



그래서 난 이제 부끄러운 감정을 끊으려 한다. 

부끄러움엔 부끄러움으로 맞설 것이다. 


다시 옛날, 엉터리 글솜씨가 묻어난 글로 돌아가려 한다. 

거기엔 내가 있었으니, 그게 내 글이다. 

글솜씨는 쓰다 보면 나아지겠지. 

쓰다 보면 부끄러움은 사라지겠지. 

악마! 너도 사라지겠지. 


시간제약도 이제 없다. 

내가 쓰고 싶을 때 마구 쓰려한다. 

아주 짧은 메모더라도 발행하려 한다. 


브런치! 너!! 

이젠 너는 날 가둘 수 없어! 

내가 널 이용할 거야. 

날 이렇게 부끄럽게 만들다니 가만두지 않겠어.

(이건 내 말투가 아니다. 오글거린다. 삭제하려다 그냥 놔둔다.)


브런치! 너!!

날 가두지 마!!

이제 내가 너 위에 올라설 거야!

(이것도 내 말투가 아닌데...) 


하여튼. 난 내 맘대로 아무 때나 글을 쓸 거다! 

그것만 알아주면 좋겠어. 




...


호주시간으로 새벽 4시에 일어나, 지금 7시. 

이 글을 쓰다가, 저글을 쓰다가. 세 시간이 지났다. 

발행시간 5시를 3분 앞두고 이 글을 완성했다. 

발행 후 수정할 부분이 항상 나타난다. 

오늘은 발행 후, 수정을 해보지 않으려 한다. 

(발행후, 오타수정 4개 했습니다 ^^)


...






주1) 소로의 일기/ 헨리 데이비드 소로, 갈라파고스


(이 책은 도대체 언제까지 읽을건데? 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철학책을 읽기 시작했다. 새벽독서모임에서 추천받은 책. 이 책이 내가 처음 읽는 철학책이다. 하지만 재미나니 오랫동안 느리게 읽는 중이다. 나의 첫 철학책으로 소로를 만나서 기쁘다. 앞으로 자주 등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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