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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아 Nov 27. 2024

새벽, 그림과 글이 만나는 시간

요 며칠은 글쓰기가 유난히도 힘들다. 평소처럼 새벽에 앉아 글을 쓰려 하면, 새로운 영감들이 떠오르지 않는다. 특히 글 소재는 머릿속을 비워둔 듯 찾아오지 않고, 오히려 그림 소재만 선명하게 스쳐 지나간다. 붓을 잡고 싶다는 충동이 강렬하게 다가오면서도, 일부러 글에 집중하려 하니, 그 순간조차 이내 희미해지는 것 같다. 이렇게 애매한 경계에서 하루를 시작하다 보면, 결국 글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그림에도 온전히 몰입하지 못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 감각은 마치 어디로도 닿지 못하고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다. 내가 분명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그것을 잡아채지 못하는 이 아득함이 내 마음을 매일매일 더 무겁게 만든다.


이 갈림길에서 몇 날 며칠 고민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하나의 결론에 다다랐다. ‘새벽에 그림을 그리자.’ 사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도 그림과 무관하지 않았다. 처음 그림을 그렸을 때, 그림 작품에 담긴 나의 이야기를 단순히 시각적 표현으로만 끝내고 싶지 않았다. 선과 색채로 전달할 수 없는 내면의 깊은 감정을 글로 풀어내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그 바람이 나를 글 쓰는 자리로 데려왔고, 깊이 있는 동화책을 완성하고 싶다는 열망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지금, 나는 다시 깨닫는다. 글과 그림은 내 안에서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요소라는 것을.


물론, 내 글이 현재로서 충분히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내 감정을 모두 담아내기에 아직은 역부족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글과 그림 모두 나를 표현하는 도구로서 서로를 채워줄 수 있다는 확신이 든다. 글은 그림이 닿지 못한 감정을 전하고, 그림은 글이 표현하지 못한 이야기를 보완한다. 이 두 가지는 내가 세상과 소통하는 가장 진실된 방식이며, 동시에 나를 표현하는 유일무이한 도구다.



ㅡㅡ

요즘 나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관한 책을 읽고 있다. 그의 이야기는 단순한 전기가 아니라, 마치 내 마음 깊은 곳을 일깨우는 목소리처럼 다가온다. 그는 호기심과 열정을 삶의 원동력으로 삼으며, 자신의 주변 세계를 끊임없이 탐구했다. 모든 사소한 것에도 질문을 던지고, 그로부터 얻은 깨달음을 자신의 세계로 흡수해 새로운 가능성으로 확장해 나가는 그의 모습은 경이로움 그 자체다. 레오나르도의 삶을 따라 읽다 보면, 그가 살던 시대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나조차도 그와 비슷한 호기심과 열정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의 이야기는 마치 내 안에 잔잔히 흐르던 자신감의 불씨를 더 강렬히 타오르게 하는 바람 같다.


특히 그의 소개글에서 발견한 한 문장이 나를 깊이 흔들었다. 그는 자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림도 마찬가지로, 저는 뭐든 다 그릴 수 있습니다." 이 문장은 바로, 내가 몇 주 전 나의 글 속에 남겨 두었던 한 문장과 동일했다. "나는 뭐든지 잘 그리는 사람이구나." ( '나를 인정하게 되었다' 참고).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지만, 내가 느꼈던 감정이 그와 맞닿아 있음을 깨달았을 때의 감동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나의 생각과 그의 생각이 우연히 같은 궤도 위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은 나에게 큰 메시지를 던졌다.


그 메시지는 단순했다. 내가 가는 길은 결코 외로운 길이 아니라는 것. 내가 그림과 글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려는 여정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이미 여러 이들이 걸어왔던 길임을 알게 되었다. 동시에, 나의 길은 여전히 독창적이고, 나만의 방식으로 완성될 수 있다는 믿음도 생겼다. 마치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나의 곁에 함께 서서 그 길을 걸으며, 무언의 응원을 보내고 있는 듯한 든든함이 느껴졌다.



ㅡㅡ

1년간 새벽 5시에 브런치 글을 발행하던 새벽루틴을 어떻게 변화시킬지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새벽의 고요함과 어둠을 뚫고 떠오르는 태양의 기운, 그리고 오전의 활기를 온전히 그림에 담아보고 싶다는 것이다. 새벽은 나를 만들어가는 가장 귀중한 시간임을 알기에, 그 시간 속에서 어떤 새로운 형태의 창작이 탄생할지, 어떤 나만의 이야기가 그려질지 매일의 새벽, 나의 진실된 마음을 담담히 마주한다.


지금 내가 느끼는 것은 또 하나의 변화, 새로운 시작을 넘어선 진화의 단계라는 확신이 있다. 그리고 그 시작은 더 이상 그림과 글 중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겠다는 다짐위에 서 있다. 이제는 두 가지가 하나로 어우러져, 나를 가장 나답게 표현할 수 있는 통로가 될 것이다.



2024년 11월 27일 새벽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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