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잠들기 전, 핸드폰 속의 10여 년 전 사진첩을 우연히 펼쳤다. 거기에는 내가 지나온 시간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중에서도 매일 찍어두었던 얼굴 사진들은 마치 오래된 일기장이 나에게 말을 건네는 듯했다. 그 사진 속의 나는 내가 잊고 있었던 시간들과 표정을 담고 있었다. 나는 한참 동안 그 얼굴들을 바라보며 10년 전의 나와 조용히 마주했다.
그 사진들은 산후우울증이라는 깊은 어둠 속에서 헤매던 시절,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시작했던 작은 실천의 흔적이었다. 그 시절, 내 감정을 보듬어주신 분은 매일 아침 내 얼굴 사진을 찍어 감정 상태와 함께 보내달라고 하셨다. 그러면 그분은 메시지 속에서 긍정의 씨앗을 발견하고, 그것을 따뜻한 말로 꽃 피우며 내 어두운 생각들을 조금씩 덜어주셨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그런 활동의 의미를 전혀 알지 못했다. 그것은 단지 지시에 따라 이루어지는 기계적인 일로 여겨졌고, 수동적인 자세로 하루를 버티는 방편일 뿐이었다. 매일 반복되는 사진 촬영이 과연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어쩌면 이런 회의적인 태도는 내 내면이 얼마나 굳어 있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제 와서 돌아보니, 그 단순한 일상이 실은 깊고도 특별한 의미를 품고 있었다. 매일 아침 내 얼굴을 들여다보는 행위는 단순히 나 자신을 외면적으로 바라보는 것을 넘어, 내 안에 자리한 어둠과 빛을 모두 응시하는 일이었다. 카메라 속에 비친 무표정한 얼굴이 시간이 지나며 점차 미소를 띠는 과정을 지켜보는 동안, 나는 나도 모르게 내 안에 묻혀 있던 부정적 감정을 긍정적으로 재구성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었다. 그것은 나의 무너진 내면을 천천히 복원해 나가는 과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나는 이런 변화의 본질을 알지 못했다. 하루하루를 타인의 도움에 기대어 간신히 버티며, 내 안의 어두운 목소리들은 여전히 나를 지배했다. 1년이 지나면서 상태는 조금씩 나아졌고, 새로운 취미와 활동으로 내 삶의 영역을 넓히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나는 "행복하지 않다"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웃고 있는 내 사진을 보면서도 그것이 진심인지 의심했고, 나 자신을 향한 시선은 차갑고 무정했다.
그러나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다시 마주한 사진 속의 나는, 내가 기억하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기억 속에서는 불안과 우울로 가득했던 내가, 사진 속에서는 분명히 웃고 있었다. 그 미소는 나조차 놓치고 있던 희망의 흔적이었다. 그 당시 내가 알아채지 못했던, 삶이 나에게 건네고 있던 미세한 위로와 메시지였다. 결국, 그 사진들은 과거를 통해 현재의 나를 이해하게 해주는 중요한 열쇠가 되었다.
이제 나는 매일 새벽 4시 30분, 하루의 시작과 함께 나 자신을 마주한다. 독서모임이 시작되기 전, 고요한 방 안에서 줌 화면을 켜고 글을 쓰기 시작하면, 화면 속의 나를 10년 전과는 완전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흰머리가 늘고, 주름이 짙어졌으며, 몸도 예전보다 무거워졌지만, 지금의 나는 그 모든 것을 사랑스럽게 받아들인다. 시간은 나의 외모뿐 아니라 내 내면에도 흔적을 남겼지만, 그 흔적은 나를 더 풍요롭고 단단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나를 바라보는 방식이다. 감정을 객관적으로 마주하며,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적으로 재해석하는 힘은 내 삶을 새롭게 이끌어가고 있다. 무엇보다, 이제 나는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과거의 나는 내가 가진 미소의 의미를 몰랐지만, 지금의 나는 그것을 알아보고 소중히 여긴다. 나를 향한 시선이 달라진 순간, 나는 비로소 내가 지나온 시간들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것들이 가진 가치를 깨닫고 있다. 그 깨달음 속에서, 나는 다시금 자연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다. 시간은 흘렀지만, 그 미소는 나에게 여전히 새로운 희망을 속삭여준다.
자기 자신을 하찮은 사람으로 깎아내리지 말라. 그런 태도는 자신의 행동과 사고를 꽁꽁 옭아매게 한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라. 지금까지 살면서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을지라도 자신을 향한 존귀한 인간으로 사랑하고 존경하라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면 결코 악행을 저지르지 않고 누구로부터 지탄받을 일도 저지르지 않는다. 그런 태도가 미래를 꿈꾸는 데 있어 가장 강력한 힘으로 작용하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말라.
- 니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