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 vs 창조

by 근아

어제의 글 <날 것 vs 익힌 것>에서 이어집니다.



익힌다는 것은 곧 master하는 일이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진짜 익혔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저 반복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익혀지는 건 아니다.


‘배우다’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다시 살펴보면,
"남의 행동, 태도를 본받아 따르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즉, 처음의 배움은 대부분 모방으로 시작된다.


책을 읽고, 누군가의 설명을 듣고, 영상을 통해 배우는 일.
우리가 새로운 지식이나 기술을 접하는 모든 출발점에는
본보기—role model—가 있다.


하지만, 무언가를 새롭게 배운다는 것은
단지 정보를 아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배운 것을 진짜 익히기 위해선,
반복적인 연습이 필요하고,
그것을 나의 것으로 가져가기 위해
‘나를 위한 이해’—공부—가 필요하다.


연습(훈련), 반복, 그리고 공부.


이 과정은 생각보다 길고 지루할 수 있다.
처음엔 따라 하기 벅차고,
조금 익숙해질 무렵엔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조차 헷갈릴 때가 있다.
때로는 뒷걸음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이 반복의 시간을 통해,
조금씩 ‘자기화’의 경지에 다가서게 된다.
익힌다는 건 단순히 몸에 익히는 걸 넘어서,
그 안에 담긴 원리와 흐름을 이해하고,
필요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게 바로 공부다.


모방의 단계를 넘어서,
그 앎이 내 안에 스며들고,
손과 발로 움직여지고,
마침내 내 언어와 행동이 되었을 때.


그러니까,
이제는 나만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내 삶의 문맥 속에 적용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때 비로소 말할 수 있다.


“나는 이것을 익혔다.”


그리고 그 다음엔,
배운 것을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익혔기에,

내 언어로 표현할 수 있고,
내 맥락 속에서 다시 창조해낼 수 있게 된다.


그저 모방해서 따라 한다고,
모방한 것을 조금 변형한다고 해서
그게 곧 창조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만이 창조도 아니다.


익히는 과정을 통과하며,
모든 것을 내 안으로 흡수하고,
자기화를 통해
내 안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


그것이 창조다.
그렇게 master가 되는 것이다.





Fulfill

수행하다, 이행하다

달성하다, 성취하다, 실현하다

충족하다


이 한 단어에 ‘익힌다’의 과정과 결과가 모두 담겨 있다.


수행하고 이행하면, 달성되고 실현된다.

달성되고 실현되면, 충족하게 된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충족감(Self-fulfillment)
그리고 충만함(Fullness)이다.





어제와 오늘, 내가 홀로 공부하고, 나의 표현으로 글을 쓰는 이 시간은 1년 전 내가 배운 ‘배움의 단계’를 되짚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때 나는 이 과정을 이해했고, 그 흐름을 도식으로 정리해, 4개월 전, 특강 시간에 나누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내 언어가 아닌, 배운 그대로를 전달할 뿐이었다. 그 안에는 ‘나’의 이야기가 없었고, 그래서 그 전달 속엔 ‘창조’가 없었다. 지금은 다르다. 같은 배움의 단계를 다시 공부하고, 이제는 나만의 언어로, 나의 이야기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글에 담긴 문장들뿐 아니라, 내 노트 속엔 내가 느낀 생각들과 질문들, 실패와 실천의 기록들이 빼곡히 적혀 있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 실천했고,
마침내 실현해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충만함을 느낀다.


하지만, 충만함은 끝이 아니다. 오히려 또 다른 시작이 된다. 익숙해졌다고 느끼는 바로 그 순간, 나는 다시 낯선 것을 마주하게 된다. 어제 익혔던 것을, 오늘은 전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고, 오늘의 실천은, 내일 또 다른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배움은 원을 그리는 일이 아니다.

점점 나선을 그리며 깊어지는 여정,
나만의 회오리를 돌리는 일이다.


이제는 안다. ‘익혔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나는 여전히 배우고 있고, 표현하고 있다고 믿는 그 자리에서도, 또다시 날 것을 만나게 된다는 걸. 충만함은 나를 멈추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를 다시 갈증 나게 하고, 더 깊은 의미를 찾고 싶게 만들며, 더 나다운 표현을 찾아 나서게 한다.


어쩌면, 이게 진짜 공부다. 모방에서 출발해, 자기화를 거쳐, 창조에 이르고, 다시 모르는 것으로 돌아가는 순환. 그 안에서 나는 계속 살아 있고, 계속 자라고 있다. 그리고, 나는 지금 나만의 ‘배움단계’를 다시 그려본다. 남의 말이 아닌, 책 속 문장이 아닌, 경험으로 꺼내 쓴 나의 언어로. 익숙한 틀을 벗고, 나만의 문장과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비로소 창조에 이른다.


그리고 그 창조조차 또다시 모르는 것과 마주하는 시작점이 된다. 이 순환이 나를 살아 있게 하고, 멈추지 않게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새로운 질문을 품고, 또 한 번, 나만의 배움을 시작한다.


이제 창조의 의미를 알았으니 말이다.


그것은 결국,
‘모르는 나’에서 출발해
‘나만의 앎’으로 돌아오는 여정.
그리고 다시,
그 앎을 넘어서는 나를 만나게 되는 일.


그렇게 나는,
오늘도 조용히 나를 익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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