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것 vs 익힌 것

by 근아

글을 쓰며, 생각을 하며, 요즘 자주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글뿐 아니라 생각과 사유도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 숙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 문득 두 단어가 떠올랐다.
날 것과 익힌 것.

그리고 궁금해졌다.

‘익히다’는 정확히 어떤 의미일까?

사전을 펼쳐보았다.


익히다 1

1. 열매나 씨를 여물게 하다.

2. 고기나, 채소, 곡식 따위 날 것에 뜨거운 열을 가하여 그 성질과 맛을 달라지게 하다.

3. 김치 술 장 따위를 맛이 들게 하다.


익히다 2

1. 자주 경험하여 능숙하게 하다.

2. 여러 번 겪어 설지 않게 익히다.

3. 눈을 어둡거나 밝은 곳에 적응시키다.


표면적으로는 물리적인 변화와 경험을 통한 적응이 다르게 보이지만,
공통점은 분명했다.

익힌다는 것은, ‘날 것’을 시간과 반복을 통해 변화시키는 일이라는 점이다.




그 순간, 자연스럽게 하나의 연결이 떠올랐다.

‘공부’할 때도 우리는 익히다는 표현을 쓴다는 사실이다.


- 배우다: 새로운 지식이나 교양을 얻다. 새로운 기술을 익히다. 남의 행동, 태도를 본받아 따르다.

- 연습: 학문이나 기예 따위를 익숙하도록 되풀이 하여 익히다.

- 공부 :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히다.


여기서 내 호기심은 더 깊어졌다.

예전에 들었던 설명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국어에서의 ‘공부-stduy’와 영어에서의 ‘study’는 뉘앙스가 다르다는 말이었다.


- 배우다 : Learn, Emulate : 지식을 얻거나 남의 행동을 본받다

- 연습하다 : Practice, Exercise : 반복 훈련

- 공부하다 : Study : 스스로의 이해를 위해 하는 것. 이해를 위해 검토(조사)하는 것, 연구.


이 단어들을 엮어보면 다음과 같은 흐름이 나온다.

- 배우면 알게 되고 (know),

- 연습하면 체화되고 (internalize),

- 공부하면 나의 것이 된다 (make it mine).


그렇게 날 것이 익어간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공부는 날 것을 익히는 일이다.


글도 마찬가지다.
날 생각 그대로 써서는 부족하다.
배우고, 연습하고, 공부한 것, 즉 익힌 생각으로 써야 한다.

그래야 나의 글이다.


나의 생각도, 날 것 그대로 두어선 안 된다.
단순히 떠오른 감정이나 인상에 머무르지 않고,
그것을 곱씹고, 되새기고, 때론 말로 표현해 보며 익혀야 한다.


'날 생각'은 직관일 수 있지만,
그 직관이 깊은 사유로 이어지지 않으면
그저 스쳐가는 감각일 뿐이다.


생각 역시
배우고(Learn), 연습하고(Practice),

그리고 공부(Study)해야
비로소 나의 언어가 되고,
내가 살아낸 이야기로 익어간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날 생각'을 익히는 일이다.

말로는 다 표현되지 않는
내면의 '날 생각'들이
시간이라는 불에서 천천히 익고,
내 안에서 무르익어
한 문장, 한 단어로 완성되는 것.


그러니 나는 오늘도

나의 삶을 공부하고 글을 쓴다.

배운 것을 그대로 전달하지 않고,

충분히 소화해 나의 것으로 만든 뒤에,

비로소 나의 생각으로 써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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