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 & 보이지 않는 것

by 근아

석고상 하나가 놓여 있다.

한쪽에서 강한 빛을 비추면,
반대쪽에는 뚜렷한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아트 클래스에서의 경험이다.
소묘 시간 한 달 동안 우리가 다룬 주제는 ‘빛’이었다.
그리고, 빛에 따라 변화하는 그림자의 ‘톤’이었다.


빛에 의해 드러난 그림자.
빛에 의해 보이는 인물의 왼쪽 얼굴.
빛에 가려 보이지 않는 인물의 오른쪽 얼굴.


보이는 면은 '눈'으로 보고 그린다.
보이지 않는 면은 '가늠'으로 그려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빛의 방향을 반대로 바꿔 놓고 나서야
그림자에 숨겨져 있던 형체가 드러난다.
그때 비로소, 내가 잘못 그린 부분들을 수정하게 된다.


그 순간, 나에게 다가온 것은
인물의 '보이는 면'도, '보이지 않는 면'도 아니었다.
그것은 인물, 그 존재 자체였다.



andy-bodemer-fagPUNE8Pj4-unsplash.jpg





나는 깨달았다.

내가 그동안 진짜로 본 것은

‘사물’이 아니라,

‘빛에 의해 규정된 모습’이었다는 사실을.


그래서 다시 묻게 된다.
사물의 본질이란 무엇일까.


빛이 있어야 보이고,
어둠이 있어야 입체가 생긴다지만,
그 모든 조건들을 지우고 나면
남는 건 오직 ‘있는 그대로의 존재’다.


어쩌면 본질을 본다는 건
밝음과 어둠, 해석과 판단, 평가와 이해—
그 모든 층위를 걷어낸 뒤에도
그 앞에 그저 ‘존재하는 것’을
담담하게 바라보는 태도일 것이다.


빛을 받지 않아도 여전히 존재하는 너.
어둠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나.
나는 그렇게
조금씩 사물의 본질을 배워가고 있다.




그러던 중, 문득 다시 깨달았다.
나 자신조차,
한쪽에는 ‘밝음’이라는 이름의 빛을,
다른 한쪽에는 ‘어둠’이라는 이름의 빛을 비추어 놓고,
그 양극 사이에서 나를 재단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내가 직접 비추지 못한 어둠의 모습을
보지 않았다는 이유로 왜곡하고,
그림자 속 모습에 의미를 부여하고,
어느 한쪽만을 보고 평가해 온 건 아닐까.


밝게 빛나는 면만 보고
‘좋은 사람’이라 말하고,
그림자 진 면만 보고
‘부족한 사람’이라 말하며,
심지어는 두 면을 모두 보았다며
모든 걸 아는 듯 말하는 것조차—
결국은 모두 진실이 아닐지도 모른다.


빛이 모두 걷힌 그 자리에서,
그 사물, 그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밝은 면만 보고 내게 던져지는 칭찬도 거부하고,
어두운 면만 보고 내리는 평가도 거부한다.
밝음과 어둠을 모두 아는 듯한 이해조차도

거부한다.


나는 다만,
빛이 있든 없든,

그저 ‘나’로서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빛에 기대지 않고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표현할 수 있을 때,
그것이 내가 믿는 ‘나의 진짜 아름다움’이다.











clay-banks-kXGyLxVW0Bw-unsplash.jpg
clay-banks-kXGyLxVW0Bw-unsplash.jpg


keyword
이전 07화탐험, 나의 사명으로 가지고 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