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멍, 하늘 멍,

by 근아

어제는 자연의 빛을 담고 오겠다고 했지만,
결국 멀리 나갈 수는 없었다.


아들의 생일파티에 친구들이 놀러 와 거실에서 캠핑하듯 자고 있었고,
북디자인 작업도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아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자연은 바로 우리 집 앞마당.


해가 떠오르며 어둠이 천천히 물러나고,
밝음이 세상을 물들이기 시작할 때,
문을 나서자마자,

우리 집의 봄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꽃이 피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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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보는 꽃이지만, 볼 때마다 처음 보는 것처럼 낯설고 새롭다.


분명 지난주만 해도 땅 위에 솟지도 않았던 건데, 어느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 자리에서 활짝 피어 있다.

계절은 말없이 제 할 일을 해내고, 꽃은 때가 되면 망설임 없이 핀다. 그 당연한 흐름 앞에서 나는 늘 놀라고, 또 마음을 다잡게 된다.


그 꽃을 보자 괜스레 마음이 움직였다.
그래, 잠깐이라도 걸어보자.
동네 한 바퀴를 돌며 봄꽃을 구경하기로 했다.


특별한 목적도 없이,
그저 피어 있는 것들을 바라보기 위해 걷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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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운, 아름다운 꽃.
그러나 아름다움 뒤에 어딘가 날카로운 기운이 숨어 있는—
악마처럼 화려한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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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인 크기지만
형태는 놀랍도록 단순한 꽃.
눈에 잘 띄지 않을 만큼 작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교하고 섬세한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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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나무인 줄 알았는데,
어느새 꽃나무가 되어 있었고,
밋밋한 선인장이라 믿었던 그것도
기어코 꽃을 피워냈다.


하늘을 배경 삼아 피어난 나무꽃들은
꽃인지, 나무인지, 구름인지 모를 만큼
그 존재의 경계를 흐리고 있었다.





꽃멍.


그리고 하늘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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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연한 출발>에서 일부 발췌. (주)

"어딜 가시나이까? 주인 나리." "모른다." 내가 대답했다. "그냥 여기를 떠난다. 그냥 여기를 떠난다. 그냥 여기를 떠나 내처 간다. 그래야만 나의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노라." "그렇다면 나리의 목적지를 알고 계시는 거지요? 그가 물었다.
"그렇다" 내가 대답했다.
"내가 '여기를 떠난다'라고 했으렸다. 그것이 나의 목적지이니라."







(주) 프란츠 카프카 단편선, 인음사,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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