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 - 꿈은 이루어진다 - 영국 간다 - 에서 이어집니다.
영국에서의 마지막 밤, 1:00 AM.
짐을 모두 싸놓고
조금 늦은 발행 글을 쓰고 있다.
2주 전, 즉흥적으로 정한 영국 여행은
출발을 앞둔 마지막 한 주 동안
체력과 시간을 소모시키는 예상치 못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출발 이틀 전에는 응급으로 철분 주사를 맞아야 했고,
그 다음 날은 주사의 부작용으로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을 견뎌야 했다.
정신없이 병원을 오가느라
가방을 챙길 시간도 부족해,
결국 가을 옷들을 서랍째 통째로 캐리어에 쏟아넣었다.
출발 당일 새벽에는 아들이
샤워실 문에 손을 찧어
개구리손마냥 퉁퉁 부어올랐다.
게다가 예상보다 늦어진 출발 시간 탓에
우버를 불러 공항으로 향했지만,
국내선 터미널에 내려주는 바람에
예상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늦게 도착했다.
그렇게 정신없는 한 주를 보내고,
비행기에 몸을 싣고 나서야
비로소 긴장이 풀리며 긴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진짜 가는구나.”
그제서야 25시간의 비행을 견뎌야 한다는 사실이,
그리고 아무런 계획도 없이 영국 땅에 덩그러니 서 있을
내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지금은,
영국에서의 6박 7일 일정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밤이다.
그동안의 일정을 돌이켜보며,
런던과 옥스퍼드에서 마주한 순간들을 떠올려 본다.
그때의 감정을 불러온다면—
빅벤 앞에 서서 저녁 여섯 시를 알리는 종소리를 들을 때도,
타워브리지 위에서 핑크빛으로 물들어가는 노을을 바라볼 때도,
버킹엄 궁전 앞에서 행진하는 음악 소리를 들을 때도,
옥스퍼드 과학 박물관에서 아인슈타인이 직접 쓴 칠판위의 이론들을 마주할 때도,
나는 잠시 꿈을 꾸는 듯했다.
‘내가 왜 여기 있지?’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주위를 둘러보면,
딸과 아들은 장난을 치며 웃고 있고,
서울에서 떠나 영국에서 다시 만난 신랑과는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모든 것이 현실이 되었다.
나는 진짜로 이곳, 영국에 와 있었다.
돌아보면,
모든 우연과 혼란, 작은 사고와 예기치 못한 지연들조차
결국 나를 이곳으로 데려오기 위한 과정이었을지 모른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리듯,
나는 이곳에서 나의 하루와 나의 시간을 살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목요일 저녁,
나를 영국으로 이끌었던 일러스트 작가와 동화 작가와의 대화에 참석했다.
그렇게 나는,
30년 전 꾸었던 오래된 꿈,
“다시 영국에 와야겠다”는 '20살의 나'와의 약속을
마침내 현실 속에서 만나게 되었다.
너무나도 멋지게.
영국여행 이야기는 새로운 브런치북으로 연재 발행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