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
남들과 다름을 견주어
나를 재단하는 말로,
우리는 이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SNS가 생긴 이후,
의도하지 않아도 비교의 장 한가운데에 서게 된다.
누군가의 속도, 결과, 표정, 삶의 표정들이
나의 현재와 나란히 놓이게 된다.
그래서 비교는
언젠가부터인가
나를 작아지게 만드는 도구가 되었다.
하지만,
비교. 사전적 의미를 들여다보면,
"둘 이상의 사물을 견주어 서로 간의 유사점, 차이점, 일반 법칙 따위를 고찰하는 일."
여기에는
우열도, 판단도, 평가도 없다.
오직
바라보고,
구분하고,
이해하려는 태도만이 있다.
관찰이다.
비교는 본래
나를 깎아내리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나 자신을
더 정확히 이해하기 위한 사유의 과정인 것이다.
현재 나의 삶에서 비교는 꽤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관찰을 하려면 하나의 대상만을 보는 것보다 두 가지 이상의 것을 나란히 놓고 살펴보는 일이 필요하다. 비교를 통해 드러나는 차이는 오히려 관찰의 대상을 더 선명하게 만든다.
다만, 그 비교 대상 안에 '나'라는 존재가 포함될 때에는,
한 가지 전제가 깔려 있어야 한다.
바로
인정과 시인이다.
그래야 비교라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것은 관찰의 과정에 불필요한 감정을 끼워 넣지 않는 방식이기도 하다.
비교는 판단이 아니라
이해로 남겨두는 태도.
하지만
나 자신을 관찰의 대상 안으로 끌어들이고, 그것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관찰하며,
더 나아가 그 과정을 즐거운 활동이자, 내 삶의 태도로 가져오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다.
관찰의 범위는
겉으로 드러난 모습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결과의 과정이 아닌,
빛과 그림자를 함께 놓고 전체를 바라보는 일이다.
운이 좋게도 나는
어린 시절부터 천재적인 예술적 재능을 가진 아이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환경에 있었다. 예술 중고등학교를 다니며 특출난 재능을 가진 친구들을 매일같이 마주했다. 만약 내가 그들의 겉모습, 즉 결과만을 바라보았다면 그 감정은 분명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노력하는지, 왜 명성 높은 콩쿠르에서 1등을 할 수밖에 없는지를 과정 속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은 단순한 인정을 넘어선 것이다. 비교 끝에 남은 것은 열등감이 아니라 리스펙이었다.
친구였지만, 나는 그들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었다.
그 이후, 나의 비교는 결과만을 바라보는 비교에서
과정까지 함께 들여다보는 비교로 바뀌었다.
그러면 답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그들과 내가 닮은 지점,
그들과 내가 다른 지점,
어디까지가 나의 몫이고,
어디부터가 그들의 고유한 영역인지,
나를 알게 된다.
비교는 더 이상
나를 흔드는 도구가 아니라,
나의 위치를 정확히 짚어주는 하나의 좌표가 된다.
그리고 거기에서 시작한다.
나의 삶은, 나의 방향을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