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정오 북클럽

by 근아

호주에 살면서 가장 신기하게 바라본 것 중 하나는 사람들의 대화 방식이다.


카페에서 처음 만난 사람과,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다 우연히 마주친 지인과,

도서관의 조용한 공간에서도 친구들과

가볍게 시작되는 스몰토크는


하던 일을 잠시 멈추게 만들고, 종종 20-30분에 이르는 긴 토론식 대화로 이어지기도 한다. 대화는 쉽게 끝나지 않고, 질문은 또 다른 질문을 부르며 깊어진다.


내가 경험한 호주의 진정한 '토론'은 아트수업 때에 있었다.

2시간 동안 그림을 그리고 있지만, 그 시간의 중심은 언제나 대화다. 아트튜터와 나누는 대화는 일방적인 피드백이나 정보전달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더 나은, 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지금의 선택이 왜 나왔는지,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으며 함께 고민한다.


때로는 미술재료에 대한 아주 기초적인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때로는 작업 앞에서 흔들리는 자신감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아트 수업에 그림을 그리러 간다기보다, 그 시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아트에 대한 진짜 이야기'를 만나러 간다고 느낀다.






이런 호주식 토론이 나에게도 어느새 스며들었을까. 요즘 들어 문득 깨닫게 된 사실이 있다. 내가 진행하고 있는 정오 북클럽에서 오가는 대화들이 이미 이런 토론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것이다.


가끔은 스몰토크처럼 가볍게 시작되지만, 그 안에는 언제나 깊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정오,

하루가 기울지도, 아직 새로 시작되지도 않은 시간.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가장 평형에 가까운 순간이다.


이 시간의 대화는 결론을 서두르지 않는다

각자의 생각은

정답을 향해 모이지 않고,

서로의 방향을 비추며 잠시 머문다.


그래서 한 시간이라는 틀은

이 자리에서는 자주 의미를 잃는다.

정오의 대화는 길어지는 것이 아니라,

깊어지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대화의 방식은

내가 호주에서 오랫동안 관찰하고,

몸으로 경험해 온

그 토론의 풍경과 닮아 있었다.




이 브런치 북 <나의 문화가 있는 삶>을 쓰기 위해

내가 떠올린 하나의 주제. 토론.


그 방식은 더 이상 '관찰한 문화'가 아니라

이미 나의 대화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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