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 없는 성장

by 근아

릴케의 <말테의 수기>를 몇 장 넘기지도 못한 채, 나는 아래의 문장들 앞에 오래 머물렀다.


"나는 보는 법을 배우고 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것이 내 안으로 깊숙이 파고 들어와 여느 때 같으면 멈추었던 곳에 이르러서도 좀처럼 멈추지 않는다. 나는 전에는 몰랐던 내면을 갖고 있다. 이제는 모든 것이 그곳을 향해 간다.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나는 모른다.


오늘 나는 편지를 쓰다가 내가 이곳에 온 지 겨우 3주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른 곳에서의 3주라면, 이를테면 시골에서라면 하루 정도로 여겨졌을 터이지만 이곳에서는 몇 년처럼 느껴졌다. 이제 앞으로는 편지도 쓰지 않겠다. 변해가고 있는 내 모습을 뭣 하러 남에게 말한단 말인가? 내가 변하면 나는 이제 과거의 내가 아니다. 그리고 내가 예전의 내가 아니라면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것 또한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요즘 나는 꼭 이 문장 속에 머물러 있는 사람 같다.


나는 지금 '보는 법'을 배우고 있다.


세상이 달리 보이기 시작하면서, 나의 성장에는 분명한 가속도가 붙었다.

변화의 과정을 정리하여 글로 옮기는 사이에도, 나는 이미 또 다른 내가 되어 있다.

그래서 이 글에 적힌 나의 성장이야기는, 쓰는 순간부터 이미 과거의 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2025년을 마무리하며 2년 동안의 나의 성장을 뒤돌아보았다.

첫 1년은 깨지느라 하루하루 정신이 없었고,

그다음 1년은 나의 세계를 세우고, 나의 자유를 찾고, 나의 삶을 바로 세워 그 안에 나의 문화를 담는 시간이었다.


돌이켜보면,

매일매일 내가 한 일이라곤,

'오늘의 나'를 성장시켜 '내일의 나'에게 보내는 일뿐이었다.


그렇게 1년 동안 365번의 성장을 거듭한 나는,

단순한 누적이 아닌, 가속이 붙은, 복리의 법칙으로 자랐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2025년의 나'를 '2026년의 내'가 이어받는 지금, 솔직히 나는 내가 조금 감당이 되지 않는다. 릴케의 말처럼, 올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나 역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후를 상상하는 것조차 어쩌면 오만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더 이상 나를 붙잡고 있지 않다.

변화가 나를 지나가고, 나는 그 자리에 머물 뿐이다.


확실한 것은,

나는 지금, 나 자신이 되어가는 중이다.


확실한 것은,

나는 지금 하려 하지 않으면서도 이미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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