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그의 말은 심플했다.
호기심을 가져라
무엇이든 대처할 수 있다.
너무나도 단순해서 곧바로 '이해했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짧은 문장이 품고 있는 깊이를 알아가고, 직접 실천하고, 경험하며, 그 속에서 나만의 의미를 발견하기까지 꼭 1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돌이켜보면 그의 말은 조언처럼 들렸지만, 사실은 경고에 가까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진심이었다.
이 모든 의미를 품고, 다시 살아낸 6개월.
호기심이라는 단어와 대처라는 단어가 내 삶 안으로 들어오면서, 그 원인과 결과 그리고 그 사이 모든 과정까지 어떻게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는지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한순간에 궤를 이루며 이해되던 순간. 아하! 하고 숨이 트이는 감각이 몰려왔다.
그것은 두 단어의 '참의미'를 알게 된 순간이었다.
'참의미'란 무엇일까.
말로 설명되는 뜻이 아니라 그 의미가 내 삶 속에서 실제로 작동하고 있는 상태.
그저
이해하고 있는 의미가 아니라,
외워서 말할 수 있는 의미가 아니라,
누구나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의미가 아니라,
선택과 태도,
그리고 방향으로
전체가 드러나는 의미.
참의미는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닿게 되는 것'이었다.
어떤 말이나 가치가 머리에서 맴돌고 있을 때는 아직 참의미가 아니다.
시간과 경험을 통과해 어느 순간, 몸과 감각으로 고개를 끄덕이게 될 때.
그때
비로소
참의미가 된다.
그래서 참의미는 시간이 필요하다.
서두를 수 없지만, 그만큼 깊어진다.
그 시간과 깊이 속에서, 깨닮음을 넘어선 참의미를 만나게 된다.
그 참의미를 알게 되면서, 자연스레 침묵으로 이어진 시간들, 하지만 방향은 분명해졌다.
무엇을 하지 않을지 듣게 되고
무엇에 휘둘리지 않을지 보게 되고
어떤 속도로 가야 하는지도 느끼게 된다.
이때의 변화는 크지 않아도 되돌릴 수 없을 만큼 확실했다.
왜냐하면 살아가는 시간과 정직하게 만나는 지점에서 생기기 때문이다.
참의미는 이해한 의미가 아니라
나로서 살아내고 있는 의미이다
의미를 '소유'하려는 단계가 아니라
의미와 함께 살아가는 단계.
그곳에
참의미가 있었다.
내가 발견한 호기심과 대처의 참의미는 다른 이들이 만나는 참의미와 같지 않을 것이다.
같은 문장을 읽어도, 같은 자연을 바라보아도, 각자가 만나는 참의미는 다르다.
그것은
각자의 삶 속에서,
각자의 시간과 리듬 안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각자의 삶에서 피어나는
참의미.
분명 '참의미'는 '본질'과는 다르다.
나는
호기심의 본질을 정의하는 중이 아니라,
호기심이 사랑으로 작동하는 사람의 언어를 쓰고 있고,
대처의 본질을 분석하는 사람이 아니라
대처가 지혜가 된 시간을 살아낸 사람의 자리에 있다.
본질이 의미의 뿌리라면,
참의미는 그 뿌리가 삶에서 피워낸 열매이다.
본질이 '있음'이라면,
참의미는 '살아 있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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