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한국에 돌아온 일주일 남짓, 나는 마치 시간이 멈춘 자리 안에 한참을 서 있는 기분이었다. 처리해야 할 일들은 한꺼번에 밀려들었고, 이것저것 하라고 재촉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끊이지 않았다. 정신없이 움직이면서도, 정작 그 움직임 속에 나는 보이지 않았다. 어느새 나는 또다시 누군가의 이름표를 달고, ‘나 없이’ 타인의 역할로 살고 있었다. 그때부터 마음 안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불만이 차곡차곡 쌓였고, 작은 일에도 충돌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한 순간에 떠오른 단어가 ‘사유’였다.
나의 일상에서 사유가 사라진 모습이 선명히 보였기 때문이다.
생각이 멎자, 삶의 방향도 함께 흐려지고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게는 생각을 고를 여백이 없었다. 여유가 사라지자 나는 마치 노예처럼 남의 판단을 그대로 빌려 행동하고 있었다. 호주에서 지내며 익숙해졌던 사유하는 평온을, 이제는 한국의 일상 속으로 옮겨 올 차례였다. 2년간 배우고 실천하며 얻은 지혜를 실제의 장면과 공간에서 시험해 볼 시간이었다.
나는 가장 먼저 하루에 한 번,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을 나만의 시간을 만들었다. 겉으로는 조용한 명상과 비슷했지만, 그 중심은 오직 나를 향한 시간이었다. 매일 '나'와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돌아보고, 내 리듬을 다시 맞추는 시간. 며칠이 지나자 몸과 마음에 분명한 변화가 느껴졌다. ‘내가 나로서 살아가고 있구나’라는 확실한 감각이 천천히 찾아왔고, 멈춰 있던 일상도 다시 굴러가기 시작했다.
사유가 나를 살려 냈고, 삶을 다시 움직이게 했다.
돌아보면 내 안의 가장 큰 원동력은 언제나 사유였다. 2023년부터 이어온 깊은 생각의 습관은 1년 후 ‘사유의 힘’이라는 글의 씨앗이 되었고, 그 글들을 위해 한 달간 더욱더 집중했던 사유의 시간들은 내가 나로 머무는 중심의 원천이 되었다. 그렇게 내 몫의 삶은 결국 사유하는 자리에서 시작되었다.
사유는 숨을 고르는 동작에 가까웠다. 생각을 붙들 자리를 마련하자 신기하게도 일상의 표정이 먼저 달라졌다. 나는 더 빨라지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었고, 누군가의 기준에 나를 끼워 맞추지 않아도 괜찮았다. 해야 할 일들은 여전히 존재했지만, 그 일들을 바라보는 내가 다시 내 삶의 중심에 서 있었다.
삶을 움직이는 힘은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려는 태도에서 생겨난다.
호주에서 배운 여러 실천들도 결국 이 한 가지로 모였다. 자연처럼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나만의 속도를 알아차리는 일. 그 감각이 나를 다시 나에게 연결하고 있었다.
이제 한국의 공간에서 나는 나만의 지혜의 큐브(주)를 던진다. 사유하는 자리 위에 관찰을 올리고, 그 위에 실천을 얹고, 다시 성찰로 건너가는 순환. 시작과 끝이 구분되지 않는 이 움직임 속에서 사유는 나만의 지도가 되고, 내가 발 딛고 걷는 땅이 된다.
나는 오늘도 자연의 오래된 질서에 기대어, 나의 몫을 스스로 굴린다.
사유하는 한, 나는 길을 잃지 않는다.
(주) 나의 문화가 있는 삶 : 20화 <지혜의 큐브> https://brunch.co.kr/@maypaperkunah/888
https://www.geconomy.co.kr/mobile/article.html?no=3132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