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
나는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다.
이 두 문장은 서로 다른 영역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 안에서는 같은 지점에서 시작된다. 세상에 없던 것을 세상 밖으로 꺼내놓는 일. 아직 형태를 갖지 않은 생각과 감각,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를 손을 통해 드러내는 일이다. 그래서 나에게 그림과 디자인은 직업의 구분이라기보다, 창조라는 하나의 흐름안에 놓인 서로 다른 언어에 가깝다.
하지만 내가 이 일들을 하며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언제나 결과물 그 자체보다 앞선 지점에 있다. 완성된 그림이 무엇을 보여주는지보다, 그 그림이 어떤 질문에서 출발했는지. 얼마나 멋지게 보이는 디자인인가보다, 왜 이 방식이어야 했는지. 나에게 창작은 '무엇을 만들었는가'보다 '어떤 태도로 만들었는가'에 더 가깝다.
그래서 작업을 시작할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그림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야 하는가.
왜 이 재료여야 하는가.
왜 이 방식으로 그려야 하는가.
이 질문들은 작업을 빠르게 만들지는 않지만, 작업을 흔들리지 않게 만든다.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내려놓을지, 어디까지 나아가고 어디에서 멈출지를 결정하게 해주는 기준이 된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그 작품을 가능하게 하는 나만의 철학을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철학이 실제의 손과 몸으로 구현될 때, 비로소 수단과 방법은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생각만으로는 아무것도 완성되지 않는다. 결국 모든 것은 '실천'으로 돌아온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 디자인을 만드는 과정. 매일 손으로 움직이고 선택을 반복하는 일.
하지만, 실천의 과정은 언제나 일정하지 않다. UP & DOWN이 반복되고, 앞으로 나아가는 듯하다가도 제자리로 돌아온 것 같은 감각이 찾아온다. 머릿속에서는 정리되어 있던 생각도 막상 실천의 자리에 서면 쉽게 흐트러진다. 어떤 날은 손이 자연스럽게 움직이지만, 어떤 날은 한 선을 긋는 일조차 버겁다. 그 사이에서 나는 종종 대혼란의 시간을 홀로 보낸다. 이 시간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도, 설명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다만 견디며 지나야 하는 시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혼란의시간을 충분히 통과하고나면 결과물은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 애써 완성하려 하지 않아도,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놓여 있다. 그래서 나는 점점 결과를 밀어붙이기보다, 과정 속에 머무는 법을 배워간다. 흔들리는 시간마저도 작업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오늘 할 수 있는 만큼만 실천의 자리에 다시 선다.
결국 내가 믿는 것은 하나.
좋은 결과는 통제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사유하고, 충분히 흔들이고,
그럼에도 손을 놓지 않았을 때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는 것.
그래서 오늘도 나는
완성보다 질문을,
속도보다 방향을,
결과보다 실천을 선택한다.
그림이 완성되기 전부터
이미 그림이 시작되고 있는
그 자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