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보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여행지에 도착해서는 지도를 웬만해서는 펼치지 않는 편이다. 이미 내 머릿속에 한 장의 지도가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큰길을 따라 걸으며 지도 속 건물들의 위치를 눈으로 확인하고, 그 다움부터는 구석구석 뒷골목을 내 마음대로 돌아다닌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내 안에 또 다른 지도가 만들어진다. 종이 위의 지도가 아니라 발걸음과 감각으로 완성되는 나만의 지도이다.
호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새로운 곳을 자주가게 되는 일이 생기면, 첫날은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길로 가면서 전체의 윤관을 익혀둔다. 그 후, 왔다 갔다 왕복 운전을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면 새로운 골목길을 탐험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우연히 이미 내가 알고 있던 길과 맞닿는 순간이 온다. 그때의 기분은 마치 보물 하나를 발견한 듯하다. 그때가 나만의 지도가 저절로, 하지만 분명하게 확장되는 순간이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 좀 더 다양한 경로를 발견하게 되면, 나는 그중에서 나에게 가장 적합한 하나의 경로를 선택하면 된다.
이러한 행동이 습관처럼 배어 있는 이유는 탐험을 좋아하는 타고난 본성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이렇게 확장된 나만의 지도 안에서는 내가 길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실수로 잘못 들어선 골목에서도 당황하지 않는다. 내비게이션에 의지하지 않고도 스스로 길을 다시 찾아 나올 수 있다. 생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대신 평온과 자신감이 여유롭게 다가온다.
이 감각은 하나의 문화처럼 내 삶 전체에 스며들어 있다. 배움의 과정에서도 그러하고, 내가 살아가는 삶의 방향에서도 그러하다. 먼저 큰 윤곽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직접 부딪히며 확장한다. 그리고 마침내 나에게 맞는 길을 고른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나만의 지도를 그리며 살아간다.
인생을 마무리하는 순간에 내가 가장 기대하는 것은, 얼마나 잘 살아왔는가를 평가받는 일이 아니다. 얼마나 많은 성취를 이루었는지, 얼마나 높이 올라갔는지를 증명하는 일도 아니다. 대신, 얼마나 멋진 나만의 지도를 완성했는가. 남의 길을 베껴 그린 지도가 아니라, 수없이 걷고, 헤매고, 돌아 나오며 스스로 확장해 온 단 하나의 지도. 그 지도를 조용히 펼쳐보는 순간, 나는 내가 어디를 지나왔는지, 어디에서 방향을 틀었는지, 어디서 두려움을 넘어섰는지를 한눈에 알아볼 것이다.
그리고 그때, 잘 살았는지에 대한 답은 이미 그 지도 안에 담겨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