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컵 이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오월 Mar 04. 2018

헬싱키 공항에서 온 컵


내가 머그컵을 모으기 시작한 건 여행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기념품 상점에서 파는 자석이나 엽서는 대부분 너무 촌스러웠고 못생긴 것을 억지로 모으는 것보다 원래 좋아하던 컵을 모으자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여행기념품이라는 그럴싸한 핑계로 컵을 신나게 사재 끼기 시작했다. 


우리 엄마는 내가 컵을 모은다는 것을 알지만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모으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그냥 내가 모은다니까 외국에서 온 것 같은 예쁜 컵이 보이면 나를 갖다 주고 싶어 한다. 엄마의 친척집에 갔었는데 그 집도 너처럼 잔뜩 컵을 쌓아놓더라며 "우리 딸도 이런 거 모으는데"하면서 똑같았던 것들 중 하나를 얻어서 갖고 오기도 했다. (엄마가 갖다 준 건 스타벅스 독일컵. 아무래도 스타벅스 시티 머그를 모았던 분이었나보다) 내가 잔뜩 쌓아놓은 컵을 보면서 왜 이렇게 널부려 놓냐고 잔소리를 하면서도, 딸의 수집품을 추가해주려는 엄마의 마음은 늘 이해가 될 듯 말 듯하다. 


이 컵은 환갑 기념으로 보내드렸던 유럽 여행에서 엄마가 사다준 컵이다. 엄마의 여행지는 이탈리아와 스위스였는데 이 컵은 환승지인 헬싱키 공항에서 샀다고 했다. 딸내미가 좋아하는 파란색+컵을 사다 주려고 꼼꼼히 매장을 둘러봤을 엄마 모습이 그려져서 이 컵을 좋아한다. 여행지의 이야기가 담겨 있진 않지만 엄마의 마음이 느껴져서 이 컵은 선반에 놓지 않고 매일매일 잘 쓰는 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포르투에서 온 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