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와 가해자

by 김서정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웠다. 날카로운 말들을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상처를 남겼다. 감정의 골은 깊어졌고 좀처럼 좁혀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일상은 점점 고단해졌다. 관계를 회복하고자 다시 마주 앉았지만, 이번에도 바닥까지 드러나는 말들이 오갔다. 언어폭력도 범죄라며 목소리를 높이자, 상대는 정작 가해자는 너라며 피해자 코스프레하지 말라고 한다.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일까. 어쩌면 피해자라는 자리는 생각보다 안전하다. 그곳에 서 있으면 나는 이해받을 수 있고, 부당함을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더 상처받았다고 믿는 순간, 쉽게 자기 연민에 빠져든다. 나는 결코 가해자가 아니라는 확신은 스스로가 옳다는 믿음을 지켜주고, 내 행동의 정당성을 부여한다.
또한 싸움이 길어질수록 서로 누가 더 아픈지 겨루려 든다. 상처의 깊이에 우열을 가리려는 다소 유치한 경쟁이다. 하지만 관계 안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는 고정된 이름이 아니다. 우리는 번갈아 그 자리에 선다. 각자가 자신의 상처는 또렷하게 기억하면서도, 내가 남긴 상처의 깊이는 쉽게 가늠하지 못한다.

이쯤에서 한 번 물어보고 싶다. 나는 정말 피해자이기만 한 걸까. 내가 가해자일 수도 있음을 인정한다는 것은, 내가 늘 옳다는 믿음과 그 위에 세워둔 정당성을 잠시 내려놓는 일이다. 만약 내가 상대의 입장이 되어 같은 말을 들었다면 어땠을까. 상대가 “나 역시 가해자일 수 있다”라고 말하며 사과해 온다면, 그 한마디는 어떤 무게로 다가올까. 내가 옳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며들 때, 비로소 상대의 고통이 내 안으로 들어올 자리가 생긴다. 그 질문을 피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기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이해하기 위한 대화를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작은 변화에서부터 관계는 천천히 다른 방향으로 기울기 시작할 것이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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