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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이 Aug 30. 2024

친절하고 따뜻한 나의 친구 K

aMAYzing Life in Hawaii ep.21 친애하는 카오리상께

6월의 어느 날, 인스타로 메시지 한통과 몇 장의 사진들이 도착했다.
태평양을 건너 우리집까지 하와이 K의 따뜻한 마음이 전달되었다.  


K의 메시지를 받고 한동안 기쁘고 찡하고 그랬다.


작년 어학원에서 만난 K는 하와이에 10년 넘게 거주 중인 일본인 친구이다. 하와이로 오기 전엔 뉴요커로 오랜 기간 살았다고 한다. 20대 초반부터 뉴욕에서 일을 하며 결혼과 출산까지 한, 생애 중요한 시기를 미국에서 보낸 거의 30년 차 일본계 미국인이기도 하다. 관광객 필수 맛집이기도 한 하와이의 아주 유명한 일본식 돈가스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그녀, 이번주 가게 공사로 인해 한 주 휴가를 보내게 되어 잠깐이나마 영어 공부가 하고 싶어 어학원에 등록하게 되었다고 했다.


맨 왼쪽의 찢어진 청바지에 워커 차림을 즐겨하는 K의 졸업식 풍경


참고로 그녀는 일본 오사카 출신으로 도쿄 출신인 남편과 뉴욕에서 일을 하다 만났다고 한다. 둘 다 뉴욕의 같은 헤어숍에서 동료 간의 우정으로 시작해 결혼까지 골인한 케이스라고. 슬하에 아들 둘은 이미 성인이 되어 큰아들은 일본에서 공부를, 둘째는 하와이에서 몇 년 전 홀로서기를 하여 이제는 부부 둘만의 오붓한 생활을 즐기는 중인데 남편은 하와이에서도 여전히 헤어디자이너로 활동하는 중이라고... 그러고 보니 K의 헤어가 범상치 않긴 했다. 그린 컬러의 브릿지며 개성 있는 헤어컷도 모두 남편의 작품인 듯했다.


그녀의 첫인상은 꽤 큰 키에 시크한 차림으로 쿨하면서도 매너가 좋고 배려가 돋보였는데 나보다 한참 언니임에도 전혀 어렵거나 부담스럽지 않은 은근한 매력의 소유자였다. 미국에서 오래 살았지만 문법에 대한 이해가 너무 부족해 틈틈이 이런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공부에 대한 끈을 놓지 않으려 한다고. 일상 회화는 전혀 고민할 것이 없는 아주 유창한 실력자임에도 이렇게 오픈 마인드로 본인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학교에 온다는 것이 참 멋졌다.


어학원 룰대로 그녀 역시 월요일 레벨 테스트 후 화요일부터 단 나흘간의 일정으로 우리 반에서 짤막한 학교생활을 공유했다. 우린 한 반이 되어서부터 내가 하와이를 떠날 때까지 참 많은 교류를 하고 우정을 나눈 것 같다. 늘 나보다 더 날 살뜰하게 챙기고 생각해 준 그녀의 마음에 나는 항상 감동의 연속이었다.


K의 소개로 방문한 아기자기한 샵들이 모여있는 카카아코의 쇼핑센터에선 하와이에서 처음으로 지름신이 강림한 나와 아주 긴 시간 쇼핑을 함께 해주어 감사했고, 그녀의 휴무엔 우리집으로 초대해 함께 떡볶이, 불고기를 비롯한 한식을 함께 즐기며 유쾌한 수다를 떨기도 했다. 그때도 K는 먹기가 아까울 정도로 예쁜 디저트들을 준비해 오는 센스만점 게스트였다.


첫 잔은 시원한 생맥주로 시작하는 건, 전 세계 어디나 국룰인가 보다.


어떤 날은 술을 즐기는 나에게 맛드러진 선술집을 소개하며 살얼음 낀 생맥주로 시작을 해 일본식 꼬치와 사케로 근사한 저녁자리도 마련해 주었고, 남편이 다시 하와이를 방문했을 때에도 비밀이긴 하지만 K는 그녀가 일하는 그 유명 돈가스 레스토랑에 따로 예약을 해주어 대기 없이 바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사실 여긴 1~2시간 웨이팅이 기본인 곳으로 유명하다.


다녀온 지 일 년이 다 되어 가지만 지금도 여전히 하와이를 생각하면 따뜻하고 소중하다. 바로 이런 인연들 때문이겠지!


내가 하와이를 떠나기 며칠 전엔 알라모아나센터의 팬시한 레스토랑으로 나를 초대해 둘만의 송별회를 해주었다. 이렇게 늘 내가 무언가가 필요하고 관심 있다 느낄만한 것들을 참 세심하게 챙겨주는 K는, 말 그대로 나의 수호천사 또는 대모 같은 존재였다.


사실 부끄럽지만 내 영어 실력으로 그녀와의 대화를 원활히 이어가기엔 참 많이 무리였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봐도 K는 본인 이야기보다는 내가 더 많은 대화지분을 가져갈 수 있게끔 항상 경쳥했다. 이런 친구의 배려로 부끄러움도 잊고 참 열심히 내 얘길 했던 것 같다. K는 비단 나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도 배려가 깊고 이타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본받을 점이 참 많은 분이었다.  


누구나 나를 좋아해 주고 배려해 주고 아껴주는 사람에겐 자연스럽게 끌리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지만 유난히 하와이에서 이런 특별한 인연을 많이 만나게 되어 더없이 감사할 따름이다. 이런 인연들로 인해 이제 하와이는 단지 큰 맘먹고 여행계획을 세워야 하는 물가 비싼 프리미엄 관광지가 아닌, 자주 가진 못해도 특별한 나의 인연들로 추억하고 또다시 교류할 수 있는 곳으로 평생 남을 것 같다.


지난 6월, 그녀의 메시지를 받고 난 후 곧이어 걸려온 K의 음성통화. 너무 간만의 영어라 엄청 당황스럽고 고장 난 듯 버벅대긴 했지만 그래도 정말 반갑게 안부를 나눴었다. 그때 내가 하와이에서도 나의 이야기를 종종 나눌 수 있도록 곧 소식 전하겠다고 한 약속을 이제야 지킬 수 있게 되어 너무 다행이다.


이 글을 읽으며 K 역시 잔잔한 미소로 우리의 즐거웠던 시간들을 추억해 볼 수 있기를...  


    


Mickalene Thomas, Le Déjeuner sur l'herbe les Trois Femmes Noires d'aprés Picasso, 2022. @thebroadmu


이 강렬한 작품은 LA의 더브로드에서 만날 수 있는데 보자마자 내 눈길을 사로잡았었다. 이 대담하고 멋진 세 명의 흑인 여성이 피크닉을 즐기는 모습이 어딘가 익숙하지 않은가?


Édouard Manet, Le Déjeuner sur l'herbe, 1863 @Musée d’Orsay, Paris


이것은 바로 에두아르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식사》를 현대적인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오마쥬한 작품으로서 토마스는 전통적 서양 미술에서 소외된 흑인 여성의 위치를 부각하고자 했다. 전통적인 서양 미술사 속의 주제를 현재의 인종적, 성적 정체성에 대한 논의로 끌어올림으로써, 기존의 미술사적 틀을 확장시키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LA 더브로드에서 해설사의 설명이 너무 흥미로웠던 터라 챗GPT의 힘을 좀 보태보았다.)



다시 우리의 이야기로 돌아와, K는 일본에서 스무 살이 갓 넘어 홀로 뉴욕으로 넘어간 용감한 여성이었다. 나 역시 그 나이 즈음에 미국이란 나라, 그곳의 생활을 참 많이 동경했던 것 같다. 그런데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있던 것이 없었다. 하지만 K는 같은 나이에 내가 행하지 못한 결심을 해 낸 것이 부럽고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아마 우리는 이 지점에서부터 잘 통하지 않았을까? 그녀의 지나온 인생에서 내가 가보지 못한 다른 세상이 보였을 것 같기도 하고, 그녀는 아마 내게서 그녀가 가지 못한 또 다른 양면을 보았을 수도 있다.


그런 둘이 우연히 영어를 배우고자 하와이 어느 어학원의 한 클래스에서 만나 서로를 알아보고 짧지만 깊은 교류와 공감을 나누며 이제는 먼 타국에서 그렇게 조금씩 여전히 친구가 되어가는 중이다.


용감하고 멋진 K에게
늘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기를
Maha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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