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AYzing Life in Hawaii ep.13
하와이에서 나의 첫 집이자 따뜻했던 한인민박집인 다이아몬드헤드 이모댁에서 이모님들과 나는 고스톱만 잘 통한 게 아니다.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는 코드까지, 나이와 세대를 떠나 최고의 친구였다. 1달러만 남기고 모두 돌려주는 룰을 철저하게 지키는 멤버들이라 내가 이름 붙인 <1달러 클럽>. 그중 비주얼 멤버인 이모의 이니셜은 A. 칠십 대 중반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7cm는 족히 되는 웨지힐을 가볍게 신고, 유창한 영어실력에 딱 맞는 당당하고 멋진 애티튜드는 이 구역 쾌녀 중의 쾌녀였다.
- 1달러 클럽 이야기 바로가기 ► 그녀들이 이국에서의 밤을 잊는 법, 1달러에 웃고 울고
A 이모 덕분에 하와이 부촌을 밟다.
미국대사였던 남편을 따라 싱가포르에서 주재할 때가 가장 좋았다는 A이모. 당시 사교댄스클럽에서의 무용담을 들려주실 때면 이모의 전성기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런 A이모가 이제 다른 곳으로 이사할 나를 위해 식사 초대를 해주신다니, 초대받는 날부터 가슴이 기대로 두근두근했다.
역시나!! 동네에 들어서면서부터 느껴지는 부티의 기운. 그랬다. 이곳은 오아후섬의 대표 부촌인 하와이카이의 고급주택가였다.
빨갛게 익은 묵은지에 삼겹살.
그리고 살얼음이 낀, 딱 알맞게 차가워진 참이슬
담장 너머론 보트가, 마당엔 높다란 야자수와 풀장이 있는 하와이의 부촌. 그 한가운데 1달러 클럽의 삼총사와 난 풀장 옆 야외테이블에서 신나는 삼겹살 파티를 벌이고 있다. 이곳이 하와이란 것도, 이모들이 내 곱절 가까운 나이란 것도 다 잊고 우리는 술잔을 부딪히며 해가 질 때까지 그저 하하호호 행복하기만 했다.
이사 전날, 다이아몬드헤드 민박집 주인이모는 나에게 맛있는 걸 사주고 싶다며 평소에 애정하는 한 식당으로 이끄셨다. 그곳은 이후로도 나의 페이보릿이 되는데 곧 소개할 하와이 찐 로컬 맛집 리스트 중 하나다.
깜깜한 밤, 달고 달고 다디단 약밥
또 한 번의 송별회인 저녁 식사를 마친 야심한 시각, 방문객이 찾아왔다. 우리 1달러 클럽 멤버 중 마지막 한 분인 Y이모였다. 과일 러버인 Y이모는 (조금 보태서) 하루 한 광주리의 과일을 드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지난 편에서 나에게 "담장 너머 매달린 망고는 누구나 따먹을 수 있다"는 솔깃한 정보도 귀띔해주신 분이다. 깜짝 놀랐던 사실은 민박집 이모와는 동서지간으로 10여 년간 가족의 연을 맺었던 사이라는 것. 되려 법적 가족이 아니게 된 뒤 더 편하게 동갑내기 친구로 지내는 사이가 되셨단다.
- 망고 이야기 바로가기 ► 노포 감지기에 포착! 와이키키맛 오키나와 가정식
Y이모는 현재 종교적 신념으로 상당히 헌신적이고 검소한 생활을 추구하시지만 과거엔 명동의 큰 손 이셨다고... 왕년의 큰 손답게 이모는 탐스런 약밥을 손수 한아름 지어오셨다. 내일이면 떠날 나를 혹여 얼굴도 못 보고 보낼까 싶어 수고로움이 곱절이 되는 야심한 시각에 와주신 것이다.
아... 내가 뭐라고...
이모가 하루 종일 정성껏 만드신 약밥.
대추, 호박씨, 해바라기씨, 잣, 호두, 건포도가 오색찬란한 자태를 뽐내는.
유난히 윤이 나고 고왔던 약밥과 Y이모의 얼굴이 지금도 손에 닿는 듯하다.
정말 이 순수하고 정 많은 우리 이모들을 내가 어찌 사랑하지 않으며, 또 이 감사함을 살면서 어찌 갚을까… 황송하고 감동스러운 마음으로 마지막 밤을 청했다.
알라모아나의 신축콘도로 이사를 했다. 24시간 안전하게 건물을 지키는 가드들, 카드키 없이는 출입이 불가능한 철통 보안, 그리고 건물 안으로 들어오면 입주민들을 위해 제공되는 최신식 헬스클럽과 빌딩숲 사이 오션뷰가 펼쳐진 야외 풀장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곳이었다.
비싼 렌트비는 애써 잊고 '그래! 하와이에 왔으니 이런 곳에서도 지내봐야지!'
집에서 바라보는 창밖 하와이의 풍경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휘황찬란했다. 특히 온 도시가 붉게 물드는 선셋 타임엔 그 값어치를 하고도 남았다. 나보다 7살 위의 쿨한 집주인 언니와의 생활도 앞으로 기대되는 바였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이 집의 혹독한 텃세가 있었으니 바로 내 방 한편에 자리 잡은 심술쟁이 에어컨.
하와이 첫 집인 다이아몬드헤드 이모집에선 천장에 매달린 실링팬을 켜고 큰 창을 열고 잠이 들면 더위와 씨름 한번 한 적 없이 깊은 숙면에 들었는데, 그게 습관이 됐는지 에어컨과의 첫 만남은 순조롭지 않았다. 오자마자 에어컨을 켜고 잠든 것이 화근이 될 줄이야. 감기몸살로 2주일이나 크게 앓으며 이모집을 떠난 첫날부터 호되게 신고식을 치르고야 말았다.
이곳이 태평양 한가운데 위치한 섬나라임을 일깨워주었던, 다이아몬드헤드의 살랑살랑 따뜻한 바람과 새벽녘이면 약간은 짓궂기도 한 귀여운 새소리가 한동안 그리웠다.
더 이상 학교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엔 탐스런 망고나무도 없고, 나를 보고 왕왕 짖어대는 충실한 멍멍이도 없었다. 여긴 또 다른 하와이였다.
May's Gallary
하와이 다이어리를 펼치며 요즘 브런치 스토리 때문에 배꼽 잡는 나를 고백한다
이젠 꿈까지 꾸는 걸 보니 기록하는 즐거움에 푹 빠진 게 맞는 것 같다. 엊그제는 잠깐 낮잠이 들었는데 그 잠깐새 꿈속에서도 과연 사람들이 내 글을 읽어 줄까 싶어 브런치 통계를 계속 들여다보고 있었다. (꿈이라는 게 참 재밌다) 그러다 슬롯머신을 해본 적도 없는 내가 마치 잭팟이 터진 것처럼 갑자기 조회수가 눈앞에서 끝없이 올라가는 걸 보고 놀라서 폴짝폴짝 뛰며 남편에게 달려가 자랑을 늘어놓고 있었다. 화들짝 꿈에서 깬 뒤, 어찌나 머쓱하고 웃기던지…
브런치를 시작한 지 정확히 만으로 한 달째
감사하게도 다음 포털에 세 번이나 등재되며 꿈이야 생시야를 외쳤던 것이 이렇게 꿈에까지 나올 줄이야. (이건 실제 이야기다 ㅎ) 기록하기 전까지는 나만의 이야기였다가 세상 밖으로 나올 때엔 누군가에게도 의미가 있어지는 쾌감을 몸소 느끼는 요즘. 하와이 생활을 추억하며 방긋방긋 혼자서도 이렇게 행복할 수 없다.
글 쓰는 것을 평소 내가 이리도 즐겼던가
한 자, 한 자, 꾹꾹 키보드를 눌러 쓸 때마다 다이어리 속 주인공등과 더욱 생생하게 연결되는 소중한 경험. 어떤 때는 그 순간이 너무나 입체적이어서 마치 VR을 체험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내 머릿속 해마가 춤을 추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지금까지 글에 등장한 민박집 이모며 여행사 부사장님, 또 러블리K 등 하와이에서 함께한 분들에게 부끄럽지만 주인공이 되어 주셔서 감사하단 의미로 글을 보내드렸다. 한결같이 예상하지 못한 선물을 받은 것처럼 정말 좋아하시고 특히 다이아몬드헤드 이모는 내가 마치 옆에서 “이모~” 하고 부르는 것 같이 실감 난다는 말씀도 해주셨다. 어쩜 그리 따뜻하신지…
덕분에 오늘도 참 유쾌하고 황송했던 한 페이지로 시프트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