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호텔 밖 처음으로 묶게 된 한인민박집, 다이아몬드헤드 이모집에서의 3주를 추억하면 정말 따뜻함뿐이다.
하와이 이민 1세대인 이모는 이곳으로 이주해 정착한 지 50년이 다되어 간다고 하셨다. 큰오빠의 소개로 당시 하와이에서 한국으로 잠시 방문한 남편분을 만나 그 길로 결혼을 약속하고 하와이행을 택했다고.
열쇠공인 남편을 도와 하와이의 웬만한 건물들의 열쇠는 다 만지셨을 거란 엄청난 가족의 역사도 듣고, 무엇보다 사람 좋아하는 나와 정말 비슷한 점이 있었으니 이모댁엔 가족부터 친구, 교회분들 등등 지인들의 방문이 끊이질 않는다는 것.
하숙집도 아닌데 스윗한 이모님 덕분에 날마다 입이 호강
심지어 과거 이 집에 숙박했던 게스트들과 아직까지 친분이 이어져 꾸준히 왕래하는 분들도 있을만큼 밝고 사랑스러운 에너지를 가지신 집주인 이셨다. 난 참 복도 많지!
특히 이모의 친언니와 사촌언니인 E이모, 그리고 이모친구 Y이모는 유독 자주 뵐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밤마다 열리는 그들만의 은밀한(?) 유희 때문이랄까.
저도 왕년에 할머니께 고스톱 쫌 배웠던 사람입니다만
참고로 난 이모가 지내시는 메인 공간에 함께 위치한 화장실 딸린 아담한 방하나를 썼는데 저녁상을 치운 후 주방 테이블에서 들리는 찰진 화투장 패대기 소리에 난 얼른 책을 접어두고 수줍게 한마디 하며 조인을 청했다.
“이모, 저도 어릴적 할머니한테 한 고스톱 좀 배웠던 사람입니다만 ㅎㅎㅎ”
“음… 공부하러 온 친구가 이래도 돼… 나?”
“뭐, 어때~ 어디 한번 실력 좀 볼까?”
아직 입주한지 얼마되지 않은 약간의 수줍음이 채 가시지 않았을 때라, 나의 이런 갑작스러운 청에 이모님들도 자리를 내어 주시며 금세 깔깔깔 웃으셨다.
1달러의 행복
로마에 오면 로마에 법을 따르라고 했다지. 나름 명확한 룰이 존재하는 그들만의 리그에 들어가기 위해 몇 장의 달러와 페니들을 깔고 (가장 중요!!) 그 수량도 꼼꼼히 체크했다. 왜냐하면 나중에 누가 얼마를 따던 자신이 원래 가진 돈에 단 “1달러만 1등에게 더하고 나머진 몽땅 제 주인에게 돌려주는” 아주 철저한 룰을 가진 고스톱 멤버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쎈쓰 있는 이모는 술 좋아하는 내게 “맥주 한잔 곁들겠니?”라며 아주 맛있게 구워낸 오징어와 땅콩 같은 스낵들을 하사하시며 늘 밤이 기다려지게 하는 마력을 뿜어내셨다.
살면서 달러로 고스톱 쳐 볼일이 또 있을까. 20여 년의 직장인 생활을 멈추고 하와이로 떠날 결심을 할 때만 해도 내 상상 속엔 없었던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매일 생긴다. 역시 알 수 없는 세상! 재밌다! 정말이지 유쾌한 밤이었다.
역시 사람은 오래 봐서가 아니라 얼마나 잘 통하느냐의 문제도 분명 중요한 것 같다. 이모는 우리 엄마보다 한두 살 많으신 정말 말 그대로 이모이신데 활동하시는 에너지나 센스가 그냥 너무 좋으셔서 “역시 하와이 공기가 좋긴 좋나 보다" 하는 생각도 했다.
생각이 많아질 법도 한 이국에서의 밤. 이방인이었지만 이젠 하와이안이 된 여자들의 오고 가는 화투장 속엔 가슴 한 켠에 사라지지 않고 묻어 둔 그리운 고향에 대한 마음이 있었다. 하루의 끝 잠시 동안 오고 가는 웃음 속에서 나도 한국에서 가져온 불안들이 조금씩 사라져 갔다.
by Poor Lydia
마치 어린아이가 알록달록 그림을 그려놓은 듯한 이 그림의 작가는 노년의 여인 리디아이다. 오아후섬 곳곳에 숨겨진 리디아의 그림을 발견하는 건 내게 일종의 보물찾기같은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