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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이 Jul 02. 2024

어느 날 불쑥, 문을 열고 들어갔다고?

aMAYzing Life in Hawaii ep.09

하와이를 떠나기 , 운명처럼 20  그때의 기억들이 소환됐다. 


나의 역마살은 아마 스무 살이 되고 대학을 다니면서부터 꿈틀대기 시작했던  같다. 워낙 엄격하고 보수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라다 보니 , 학교 외에 세상밖을 스스로 경험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특히 어릴  , 조용하고 부끄럼쟁이에 특히 밖에선 소심한 내숭쟁이  자체였다.


하지만  속에 꿈틀대는 애살과 욕망은 대학생이란 타이틀이 부여되는 순간   날개를 달고 싶었나 보다. 생각에만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려는 시도들.


그중 바야흐로 대학 3학년 시절, 여름방학이 시작될 무렵 휴학을 고민하게 되었고 휴학 후엔 열심히 돈을 벌어 어학연수를 가겠단 포부가 커져 결국   년의 휴학을 선택했다.


때마침 주변 소개로  머리 있는 모교 후배를 찾는다는 분을 만나게 되었는데, 하와이만 전문으로 하는 프리미엄 여행사였고 상담  업무 전반을 돌봐  직원을 구한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면접에 통과  그곳에서   남짓 일을   있었다.


사장님께서는 두어  정도 업무를 전수하고는 바깥일을 보시느라 사무실을 비우기 일쑤였기에, 당시 '나 홀로 직원'이었던  하루에도  번씩 하와이 현지 여행사 담당자와 연락을 나누며 업무를 진행했었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까랑까랑하고 야무진  목소리. 초짜 신입 여행사 직원인 내게 항상 나이스하게 대해 주시고 파트너로서 신뢰와 존중, 무엇보다 어리다고 내려보지 않고 힘을 실어주신 하와이 여행사의 부사장님.


이렇게 프로  프로로 인연을 맺게  우리는 함께 일한  10개월쯤  무렵 출장차 방문하신 서울에서 차를   나누었다. 그때 뜻밖에 선물로 ‘지금 나이에 한참 외모 신경  텐데…’ 하며 세련된 컬러의 립스틱까지 전해주시니 너무 감사할 따름. 더불어 “우리 회사에서 함께 일해보지 않을래요? 하와이로 와서 말이야!”라는 부사장님의 제안.

 

 오래전이지만 우리나라와 하와이의 거리차이로 인해 국제전화와 이메일이란 통신수단으로 20여 년 전 당시에도 비대면 업무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던 환경. 얼굴을 직접 마주하지 않더라도  느낌이 좋았던 분이었기에 “?   인정받은 건가! 열심히   알아주신  같아!” 하는 기분 좋은 설렘과 동시에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이 높아진 멋진 순간이었다.  

 

참고로 이렇게 휴학하고 모은 돈은, 어학연수는커녕 ‘ 딸은 역시 살림 밑천이란 말답게 당시 집에 필요했던 여러 가지에 보탬이 되며 좋은 사회경험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래서일까 살면서 가끔  순간이 생각이 났다. ‘만약 그때 졸업이고 취업이고 모르겠고 나를 알아봐  이곳 하와이로 건너갔더라면 정말 다른 인생을 살지 않았을까?’하는 막연하고 재미난 상상.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 말이다.

 


그런데 이제부턴 상상이 아니다. 이미  하와이에 살고 있다. 더 이상 미련 따윈 없었다. 그리하여 하와이에 머문   달이  지나도록 운명 같은 재회의 순간을 고민만 하다, 문득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

 

 좁디좁은 하와이에서 별다른 방법이 뭐가 필요 있겠어!”


참 다행히도 부사장님 내외가 운영하시는 이 여행사는 여전히 하와이 넘버원 한인여행사로서 굳건히 자리매김을 하고 있었기에 난 어렵지 않게 이곳을 찾을 수 있었다.


여행사 사무실이 매일 학교 집을 오가는 길목에 있으니, 날을 잡아 한번 찾아가 보자. 이보다  극적인 재회가 있을까?”

 

Umm… 혹시 저를 알아보시겠어요?


사무실을 열고 그분의 성함 석자를 여쭈며   있을까를 묻는데, 한쪽에서 익숙한  하이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필 직원들에게 호통을 치고 있는 순간에 말이다. 타이밍이 

잠시 기다리니 그분께서 어찌 오셨냐 하며 나를 본다.

 

… 20   기억하시겠어요?”

아주 잠깐의 정적 어머! 어머! 기억하고 말고!”

 

다행이다. 당돌하게 입장은 했지만 마음 한편에 걱정이 있었던 터라 부사장님께 감사했다. 나조차 파릇한 대학생에서 곱절의 나이를 먹고 나니 오래된 기억  얼굴이 흐릿한데, 그분은 나를 마치 어제 만난 사람처럼 어찌나 반겨주시며  찾아왔노라 격려까지 해주시니,  며칠 동안 찾아뵐까 어쩔까 고민했던 마음에  위로가 되었다.

 

오늘  왔으면  만났을 거야. 이틀  한국에 출장 가서 한참 있다  거거든. 어떻게 이렇게  맞춰서 왔어?”

 

우리가 인연이었을까, 아니면   맺은 인연도  인연으로 만드는 그분의 매직일까. ‘한국 다녀와서  다시 보자 말씀이 빈말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어른이란 변치 않는 따스함을 지닌다는 걸까.

 

'다시 만날 날이 기대된다. 하와이 참말로 잘 왔다. 또 한 번 용기 내길 정말 잘한 것 같아.



가끔 걱정이 앞서는 일이라도 과감히 실천해 볼 만한  같다. 그래야 후회가 없지! 40대가 되어서도 여전히 훗날  분과의 만남을 통해 하와이에서 지내는 동안  선물을 발견했듯 말이다.





이인성 '노란옷을 입은 여인상'(1934) - 대구미술관

May’s Gallary

작년 2월, 회사일로 머리 복잡하던 그때 남편의 제안으로 대구맛집기행을 갔었다. 여행 중 이건희컬렉션이 대구미술관에서 전시 중이란 걸 알고 황급히 달려간 우리 부부. 트렌드를 앞서가진 못해도 따라는 가자란 마음으로 다녀온 전시였지만 기대를 넘어 아주 만족스러웠다. 근현대 중요한 작가들의 주요 작품을 이렇게 한자리에서 만나다니. 이때 눈에 들어온 이 작품 속 여인은 현대 여성이라 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코디 센스며 분위기며, 내 눈엔 너무나 세련된 모습이었다. 마치 20여 년 전 기억 저 너머의 오늘 이야기 속 주인공처럼! 이 노란 옷을 입은 여인 역시 그분처럼 안목이 높았을 것 같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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